광개토대왕비의 의미 재발견

광개토대왕비의 영원한 외침

by 홍콩 서실

92026/2/6

세계 여러 나라의 대표적인 박물관들을 방문하며 수려한 인류의 유물에 탄성을 지었었는데 이촌동 국립 중앙박물관의 대표 유물로 필적할만한 것은 광개토대왕비이다.


문자와 고서등 기록물에 관심이 많은 이에게 대영박물관에는 4000년 전의 함무라비 법전이 있다면 한국의 중앙박물관에는 400년대의 광개토대왕비가 으뜸이었다.

높이 7미터의 1800여 비문 글씨 또한 빼어난 예서체로서 아주 흥미롭다. 우리 삼국시대에 남아 있는 책이 없고 고려시대에나 와서야 문서 기록이 보전되어 있으니 한국이 남긴 가장 오래된 최고의 문서이다.


선대왕의 치적을 거대한 돌에 정교하게 글자로 남긴 유물을 이집트 로마 페르시아와 중국 그리고 한국 이외에서는 보지 못했다


내가 본 백두산의 산세의 위용은 훗날 미국의 그랜드캐년에 가서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런 거석문화 지역에서 살았던 고구려이니까 당시 세계의 최대 국가였던 중국세력과 당당히 맞섰었으며, 광활한 만주 벌판을 지배할 수 있었던 고구려인의 기상이 박힌 거석문화이다.


금관 족자 그릇 등의 자잘한 유물이 아닌 문자로 된 우리의 거석 유물을 볼 수 있어서 통쾌한 방문이었다.


한반도에 갇힌 방어적 역사관이 아니라 대륙으로 뻗어 나가던 해양세력이 한국의 기본역사임을 더욱 알려야 한다


다행히도 미국 일본 해양 세력과 합력하여 만들어 낸 현재 한국의 GDP 세계 순위 15위, 주식시장 시총 10위의 규모로 한국인이 이스라엘인의 역사처럼 1500년 만에 세계의 역사 순환에서 제자리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고구려는 당시 남쪽의 중국세력 당나라와 함께 북쪽 요동에서 세계문화에 당당히 한몫을 하는 국가였다. 그래서 중국에게는 요동 포함 한반도가 남아있는 천하 통일의 과제였었다. 그 사건이 우리가 아는 을지문덕장군이 활약한 수나라와의 전쟁이다.


문자는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의 총체적 표현이다. 아름답고 호기로운 한자의 예서체가 당시의 한국인의 기본 문자 형태였다..현재의 해서체 한자는 그 뒤에 나오게 된다. 이런 우리의 한자를 두고 한글만을 쓰자고 한 소뇌인들이 한국을 쪼그라들게 하였다. 그럼 그들은 현대의 세계적 학술지 논문 제출 시에 영어 알파벳 병용은 왜 문제 삼지 않고 자랑스럽게 수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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