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울지마... 근데 너 왜 운거니?

<비커밍 제인>

by 조용해

결혼 초엔 딩크를 자처하며 아이가 없던 나와, 다섯 살의 아이와 한참 시름 중이던 친구는 서로의 공감대가 전혀 없는 생활에서도 그동안 같이 보내온 시간으로 인해 서로에게 인이 배겨 일정 기간에 한 번씩은 꼭 만나줘야 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죽이 척척 맞았다. 서로의 다른 처지가 우리를 아무리 갈라놓으려 해도 그녀의 취향과 내 취향은 늘 같은 방향을 달렸으므로...


우연히 내게 생긴 초대권을 핑계로 친구를 밤 9시에 종로로 불러내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아이를 신랑에게 맡기고 나온 친구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절대 올 수 없었던 영화관 나들이에 심히 달떠 있었다. 오랜만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함께 그렇게.


영문학을 전공한 친구가 하루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안경을 끼고 두꺼운 원서를 들고 나타나서


" 뭐야 이건..."

" 응, 명색이 영문과 생인데 원서 한 권 정도는 읽어주고 졸업해야 들 쪽팔릴 거 같아서..."


친구 덕분에 알게 된 작가가 서머셋 모음이다. 그녀는 원서로 나는 번역본으로 함께 책을 읽었다. 덩달아 나도 전공서적 중 두꺼운 놈으로다가 하나 읽고 졸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돼 같이 좋아하게 된 작가가 제인 오스틴이었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비커밍 제인>이었다. 그날 우리가 보게 된 영화가...


제인 오스틴의 <센스엔 센서빌리티>를 특히 좋아하던 우리는 그녀의 섬세한 감수성에 다시 한번 매료되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제인은 여전히 실망시키지 않고, 팍팍해져 가던 우리의 가슴에 감수성의 수분을 조심스럽게 채워주고 있었다. 영화는 잔잔하고 서글펐다. 안타까웠을 뿐 슬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친구는 옆에서 줄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종래에는 거의 통곡 수준이어서, 여인의 모습이었으나 행동거지만은 절대 여자 다울 수 없었던 나는 발로 툭 툭 차 가며 그녀를 제어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 어떤 지점이 그녀를 그토록 울린 걸까? 영문과 전공생과 비 전공생의 이해의 폭에서 비롯되는 차이였을까? 서로 떨어져 사느라 경험해온 각자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영화가 끝나고 친구가 민망해할까 봐 왜 그렇게 운 거냐고 영화 보는 내내...라고 묻진 않았다. 대신 달달한 커피를 건네가며 그녀를 달랬다. 영문과 전공생으로서 영화에서 주인공을 the라고 지칭하는 부분을 콕찝어 첫째 언니한테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옛날 영국에서는 그렇게 불렀다는 전문가스러운 포스를 내비치며 영화 안에서 내가 놓쳤을 수 있었던 부분들을 큰언니처럼 설명해 주며 밤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첫사랑에게나 보내야 마땅한 홀랑 반한 표정으로 그녀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12시가 넘은 종로는 뭔가 <미드나잇 인 파리> 스럽게 낭만적이었다. 늘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신데렐라 마냥 따따불을 외치며 택시를 잡아타던 그 복작거리던 느낌과는 거리가 있는... 상점들이 다 문을 닫은 시간 네온사인들만 켜져 있는 채로 우리들의 시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거리는 뭔지 포근했다. 각자의 생각들에 빠져 친구와 나는 종로의 이 거리 저거리들을 열심히 쏘다녔다. 우리가 언제 또 이 시간에 이렇게 종로를 걸어 보겠냐며...










사족. 사진 출처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movie&wr_id=247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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