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이 지나가면...

웨딩케익

by 조용해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요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로...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요 알 수 없는 사람에게로...


시집가기 전날 친구는 이 노래를 돌림노래처럼 부르며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고 압구정동에 나가 줄곧 걸어 다녔어요. 자기의 마지막 쏠로 시절을 기념하고 싶다면서...사실 이 노래는 우리 때 유행하던 노래는 아녔거든요. 우리 시대 이미 옛날 옛날 노래 취급을 당하던 노래였는데.


" 나는 이 노래가 왜 이렇게 슬프지? 이걸 듣고 있으면 왠지 내가 시집가기 전날을 맞는 느낌이야."


우리 학창 시절에는 '분신사바'라는 놀이가 있었어요. 일종의 빙의 놀이였는데... 믿거나 말거나 분신사바 분신사바를 볼펜을 들고 종이 위에서 10번을 외치면 어느 순간 귀신이 빙의하여 그 볼펜을 이끌어 남편의 이름을 써준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놀이. 남편의 이름을 물어보고 분신사바를 외치면 이름을, 나이를 물으며 분신사바를 외치면 나이를... 반에서 좀 신기가 있는 아이가 영매로 나서서 당사자와 둘이 볼펜을 맞잡고 주문을 외우면 그 영매친구의 눈속임인지 아니면 정말 귀신이 씌어서 그러는지 지글지글한 글씨로 대충 나왔단 말이죠. 결과가...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지고 다니며 야자를 해야 했던 우리들은 저녁을 먹고 창밖에 어스름이 낮게 드리워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시작될 무렵이면 이 놀이를 하며 긴긴밤을 그렇게 학교에서 보냈어요.


이렇게 분신사바 놀이를 한바탕 하고 남편(?)의 이름과 나이를 받아 들고 친구가 그노래를 부르며 저렇게 말했어요. 그러더니 정말 시집가기 전날 저 노래를 그렇게 불러대며 압구정동을 배회하더라고요. 누가 보면 정말 정략결혼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 사실 친구는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쟁취한 아이거든요. 지가 좋아서하는 결혼이면서... 청승은... 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논리적으로 입방정을 떨려다가... 그날 그녀의 표정이 하두 복잡 미묘해서 그냥 접었네요.


제겐 언니가 둘이나 있었거든요. 덕분에 저 병은 제가 익히 알고 있는 병이었구요.


말하자면 저건 결혼하기 전날 여자들이 겪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거예요. 그냥 내일이면 <유부녀>가 된다는 사실이 자기도 믿어지지 않고, 실감도 안 나고... 겁도 나고...되돌리기 쉽지 않다는걸 알기에...


저희 큰언니는 심지어 결혼 일주일 전에 짐을 싸서 집을 나가기도 했다니까요? 몇 시간의 가출이었지만... 히트는 가족들 중 아무도 그걸 몰랐다는 거... 왜냐... 집 나간 지 5시간 만에 돌아왔거든요. 식구들 모두 예비 형부랑 만나러 나갔나보다 했지 그런 깜찍한 짓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나중에 들어오는데 큰 가방을 메고 들어오길래 그제셔야 저 가방은 뭐냐고 물어보니 사실을 이실직고해서 모두를 기함하게 했죠.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거...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다는 건 두렵죠 무조건. 아찔하고... 뭐 결혼에 대한 확신? 사랑? 이런 거랑은 별개로 그냥 결혼 전날 밤은 심난해요. 여자들한테는...


저요? 저는 예외겠어요? 친구가 그렇게 푸닥꺼리를 해대던 덕에 전염이 되어 저는 내일이면 결혼하는 예비 신랑 앞에서 저 노래를 그렇게 구슬프게 목청 돋궈부르며 주정을 했다네요. 자기가 나랑 오래 연애만 안 했어도 사연 있는 여자인 줄 알 뻔했다고 신랑이 신혼여행 내내 놀렸죠.


저 노래 한번 나지막이 불러보세요... 꽤 멜랑꼴리 해지며 분위기 제대로 산다니까요 결혼식 전날... 결혼식 전날 좋을 거 같죠? 엄청 심란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떨어져 있기 싫어서 한 결혼이었는데도 그렇던걸요? 그냥 살면서 한번쯤은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은 날이 있어요. 그게 그날이구요. 분위기도 적당하고 마침 사람들도 내게 주목을 해주고 있고... 그런날은 뭐 비련의 주인공이 대수더냐? 뭐라도 하고 싶지...


그럴땐 최대한 나직히 천천히 구슬픈 목소리로 읍조리듯 불러봐요. 이 두소절만 계속계속...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요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로...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요 알 수 없는 사람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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