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양의 슬기로운 IKEA 사용법(?)

네가위너다!

by 조용해

그 친구를 만난 것은 봄이었다. 타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체류 신청을 하기 위해서 변호사를 만나러 이웃 도시에 갔다가 가지고 갔던 모든 자료를 몽땅 지하철에 놓고 내리는 바람에 멘붕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밤 새벽 2시에 의문의 전화 한 통과 함께 그녀와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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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누구누구 씨?”

“아… 네… 그런데요?” 일단 서로의 Young 한 목소리를 확인 한 우리는 바로 말을 놓았다.

“ 남들에게는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 이 서류들이 네게는 아주 중요한 문서인 것 같아서 이렇게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한다. 어때 내일 찾으러 올래? ㅋㅋㅋ”

“ 오! 예! 네가 그걸 갖고 있다고? 정말 정말??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나 진배없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일단 내일 내가 너희 집으로 가마!!!”

이렇게 운명인 듯 운명 아니게 맺어진 우리는 만나보니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고 그녀는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나는 이쪽 문화를 배워야 하는 입장에서 이른바 절친이 되었다.

그녀는 김치, 불고기는 물론 물미역무침까지 아는 한국음식 마니아였고 밝고 쾌활한 전형적인 현지인이었다. 한국음식 타이음식 중국 음식 등 외국인 입장에선 그냥 동양의 음식에 지나지 않는 음식들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별하며 미식가 다운 면모를 뽐냈으며 식욕만큼이나 다양한 남성편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 정기적으로 3-4년에 한 번은 남자 친구를 갈아치우며 왕성한 연애를 이어오고 있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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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둘이 같이 클럽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그곳의 클럽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 나이트와는 사뭇 다른 훵한 교실 같은 공간에 사이키 조명만 덜렁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테크노 뮤직- 이 또한 우리나라 테크노 뮤직과는 약간 다른 계속해서 어떤 짜증을 유발하는 음들만을 반복하는 요상스러운 음악-에 사람들은 거기에 맞추어 거의 걸어 다니는 건지 춤을 추는 건지 알 수 없는 움직임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 클럽이라도 독일에서는 처음 가는 클럽이라 나는 이것저것 구경 중이었고 P는 이미 그 동네에서 초중고를 나온 동네 유지의 입장이라 한걸음 건너 하나씩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 헤이 P ~~~ ”

“ 헤이 L~~~”

“헤이 S~~~”

왓츠 업을 남발하며 춤을 추던 P 앞에 한 남자아이가 멈추더니

“ 헤이 너 오랜만이다.? 근데 니 이름이 뭐지??” 하며 어깨를 툭! 순간 저… 누구신지… 하는 표정으로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는 이네

“ 아~~ 아~~~ 너어~~~ 그런데 너 이름이 뭐였더라??”

“ 나 누구! 누구! 우리 제 작년쯤에 저쪽 동네 클럽에서 만났었잖아! “

“ 아! 그랬지! 그래지! 근데 우리가 그때 잤던가??”

“ Aber Natürlich – 당근이지“

곁에서 하도 시끄럽게 인사를 나누는 바람에 강제로 듣게 된 그들의 스토리에 서울에서 갖 온 순진한 나는 곧장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서로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이, 하도 여러 사람과 원나잇을 해서 본인 포함 모두가 헛갈리는... 잤나 안 잤나를 물어보는 물음에 당근이지로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그들의 문화는 정말 순진했던 나를 한 순간에 멘붕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날 밤 나를 일찍 집에 보내고 뭔 일이 있었는지...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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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 우리 IKEA 가자 “

„ 갑자기 IKEA는 왜? “

„ 어젯밤부로 IKEA 갈 일이 생겼어. 일단 나와 내가 집 앞으로 데리러 갈게 “

„ Ok “

P는 그렇게 집에 멀쩡한 가구들을 내다 버리고 새로운 가구로 개비를 한 후 그 집에 M을 들였다.

이렇게 P는 3-4년에 한 번씩 IKEA가구를 버렸고 IKEA 가구를 바꾸는 날은 어김없이 남자가 바뀌어 있었다.

이로써 가구는 평생 한 번만 사는 줄 알았던 그래서 IKEA가구의 튼튼하지 못함에 분노를 금치 못하던 나는 IKEA가 왜 튼튼할 필요가 없는지 왜 가격이 싸야만 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동한 우리 사이에선 IKEA갈래? 가 나 남자 친구 바뀌었어로 통용되었으며 가구를 바꾸겠다는 그녀를 나는 워워 진정시키며 쓰는 데까지 써보라고 권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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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종종 그녀는 가구를 갈아 치웠고 어느새부터인가는 점점 한 남자에 정착해 가는 듯하더니

„ 작년에 산 IKEA 책장 뒷면이 나갔어. IKEA 갈래? „로 나로 하여금

'이것이 또 병이 도진 거야?‘라는 의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실제로 1년 만에 책장을 바꾸면서 우연치 곤 신박한 바뀐 남자 친구를 보면서... 가구를 바꾸는 김에 남자를 갈아 치운 건지, 남자를 갈아치우는 김에 가구를 바꾼 건지.. 오랜만에 나를 심히 긴가민가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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