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애를 키우던 애

은수 엄마야... 은수 많이 컸겠다.

by 조용해

가끔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편을 따라 유학을 오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이야 해외 연수다 유학이다가 흔한 세상이지만 <유학생>에 약간의 프리미엄이 있던 시절, 유학생이라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막연히 동경스러운 상황만 보고 유학을 따라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어릴수록 어리바리해서 이 유혹에 홀딱 넘어와 버렸다.


그 친구도 그랬다.


유학생활이라는 게 절대 만만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친구들은 부러워했고, 유학생활이 그렇게 고달픈 것만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걱정을 했다. 내 말은 아무도 믿지 않는 듯했다...


" 언니, 제가... 유학생활이 이런 거였으면 여기 이렇게 따라오지도 않았어요."


또래 만나기가 어려웠던 그곳에서 그녀는 나를 언니라 부르며 잘 따랐다.

꽤 오래전에 왔는데도 현지 언어를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더니... 간단한 것은 혼자서 해결했지만 좀 민감한 내용의 통역이 필요한 병원이나 관공서를 갈 때면, 남편이 다른 도시로 가이드 알바를 나갈 때면, 나를 동행해서 갔다.


며칠 전부터 아이의 충치치료 차 병원을 가야 하는데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물어봐서 나는 시간을 쪼개어 그곳에 동행하기로 약속한 참이었다.

그녀의 집에 들러 그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오전 11시 시내에는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돌다 돌다 겨우 한자리가 나서 어렵사리 차를 주차하고 빠듯하게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들어갔다.


" 오늘 충치 뽑는 수술 한다고 들었는데요. 11시 30분..."

" 아 Lee... 그런데 오늘이 아니고 다음 주인데요?"


어른이면 그냥 국소마취만으로 발치가 가능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이를 뽑다가 움직일 수도 있고 지레 겁을 먹고 발버둥을 칠 수도 있어서 전신마취가 예약된 상황이었다. 원래 아이들 수술이 있을 경우 가장 먼저 예약시간을 잡아 주는데 이병원은 잘한다고 소문이 난 병원이라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겨우 그 시간이라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하려면 식사를 하면 안 되니까 아침부터 쫄쫄 굶고 따라오던 아이는 차 안에서 그렇지 않아도 배고프다고 찡찡대며 수술이 끝나면 꼭 맥모닝을 사내라고 졸라댔다. 친구는 난처해하며 마취가 풀리면 이후에도 몇 시간은 족히 굶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게 눈을 끔쩍이며 알았노라고 아이를 달랬었다.


엄마보다 먼저 이 상황을 알아들은 꼬마는 울음을 터트렸고 이 정도 말은 알아듣는 친구도 아이와 함께 이 상황을 황당해하며 울면서 아이를 달랜다. 며칠 전부터 전신마취를 처음 하는 딸아이를 놓고 전신마취를 꼭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여러 번 나에게 상의를 해오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아이에게는 위험할지도 모르는 그것을 고민했었다. 여러 날... 결전의 날이 되어 비장하게 아침까지 굶어 가면서... 그러고 왔는데... 아이가 아침을 못 먹는데 엄마만 아침을 먹었을 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엄마가 걱정 걱정하는 바람에 아이도 함께 긴장에 긴장을 그것도 생으로 굶어가며 이르지도 않은 11시까지... 했을 텐데... 그간의 마음고생과 억울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아이를 보며 엄마도 이심전심 같이 울고 있었다. 딸아이는 조숙했고 엄마는 미숙했다.


이 모녀의 느닷없는 통곡에 '예약 하나 틀어진 게 이렇게 울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병원 관계자들의 의아함을 나만 눈치채고 이들을 빨리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야 했다.


"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를 연신 말하며 어린 엄마는 울고 있는 딸을 자기가 더 심하게 울어가며 달랬다.

" 엄마 울지 마아... 엄마가 그렇게 울면 내가 못 울잖아..."


?! 나는 순간, 그 꼬마숙녀에게 <언니!?>라고 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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