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실망시키지말아 줘
요새 지하철을 타면 누구나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게 자연스럽다. 아마도 시간여행을 하는 자가 있다면 이 모습이 자연스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20대 시절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일본이 쪼그라들기 전이여서 그야말로 강대국이어서 가는 곳마다 감탄을 했었다. 동경의 뒷골목까지 결벽증 환자들처럼 깨끗하던 거, 미친 물가 그러면서도 갬성이 존재하던 신주쿠 거리의 선술집들 하라주쿠에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던 오타쿠들... 이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가장 내 뒤통수를 칠만큼 충격이었던 건 지하철에 빽빽한 사람들이 모두 책을 읽고 있었던 그 현실적이지 않은 장면이었다.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하기 위해 그중에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세어 보았다. 서로 어깨가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틈만 남은 빽빽한 오후 퇴근시간이었는데 그중에 책을 읽고 있지 않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 열 손가락을 다 채울 수 없었다. 믿어지지 않아서 다시 세어봤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을 증오하지도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일본이어서가 아니라 책을 그렇게 좋아하던 나라가 그렇게 쉽게 망해버린다는 것이 나로서는 좀 속상한 부분이다. 그리고 왠지 속으로 그들이 멸망에서 기어라도 나오기를, 그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 책만은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