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와 이수만

<이디오피아>와<헤밍웨이>

by 조용해

이외수가 정치색을 갖기 전,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고 나만 알고 있을 때, 착각이겠지만, 나는 그의 식물성 글을 좋아라 했었다. 그때는 <초식남>이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막연히 그의 글들의 기존 남자들의 마초적 세계관과는 거리가 먼 그 느낌을 <식물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들개>라는 작품의 다듬어지지 않은 청춘의 야생성을 좋아했고 <칼>에서의 아마추어의 비장함과 <꿈꾸는 식물>에서의 작가로서 남자로서의 무기력한 비겁함을 담담하고 솔직히 써내려간 그의 문체를 사랑했었다. 그 동경을 바탕으로 그를 만나 한 번쯤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당시 그가 춘천에서 오픈했다는 <이디오피아>라는 찻집을 대학을 가면 꼭 가보리라고 생각했었다. 왠지 <이디오피아>는 <유토피아>와 닮아 있을것이라는 기대와 함께...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행복은 멀리 파도를 넘는다'는 노랫말을 매가리 없이 불러대던 이수만이 운영한다는 월미도의 <헤밍웨이>라는 카페도 대학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았었다. 그 당시 주병진도 한양대 앞에서 <제임스 딘>이라는 카페를 한다고 했었는데 그곳을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춘천과 인천 월미도라는 얼마간의 거리감이 내게 얼마간의 동경으로 치환됐는지도 몰랐다. 한양대앞 주병진의 카페는 집에서 너무 가까워서 환상이 자리할 곳이 없었는지도...


물론(?)-왜 물론?-, 두 곳 모두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 가보지 못했다. 솔직히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혔었다. 대학은 그런 것들을 떠올리기엔 너무도 바쁘고 재미있는 일들도 가득했기 때문이다. 춘천에는 여러 번 닭갈비를 먹으러 갔으며 월미도에는 회를 먹으며 바이킹을 타러 가곤 했다. 그사이 이외수의 작품은 나의 기준에서는 매력을 잃어버릴 만큼 평범해졌고 이수만은 걸그룹의 대부로 여자 친구에게 몇십억의 집을 턱턱 사줄 만큼의 갑부가 되었으며 더 이상 '행복'이라는 너절한 노래 따위는 부르지 않는 CEO가 되어있었다.


<이디오피아>와 <헤밍웨이>는 단지 고등학생의 카페 출입은 그 당시 허용되지 않았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온 ' 나는 소망 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비롯된 나의 소심한 반항의 스핀오프였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그 한쪽에는 아마도 내가 동경에 마지않는 <낭만>이라는 놈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때론 낭만은 현실로 마주하게 되면 금세 김이 새기 마련이므로 나는 애써 외면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해 본다. 변명치고는 좀 미흡한 면이 없진 않다. 하긴...


원래 낭만은 이런데 써먹으라고 있는게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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