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과 운동화

영화<더티 댄싱>과<워킹걸>

by 조용해

유달리 영화를 좋아했던 저와 친구들은 선생님께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야자시간에 땡땡이치고 극장도 많이 갔었어요. 그때가 더티 댄싱이 개봉하던 때였는데 미성년자였던 우리는 그 영화를 극장에선 볼 수 없었죠. TV 리뷰 채널에서 잠깐 영화를 소개해주는데... 페트릭스 웨이지가 여자의 상체를 훑어 내리며 발사하던 그 영롱했던 섹시한 눈빛... 우리는 저 영화는 우리가 꼭 봐줘야 한다. 얼마나 교육상 안 좋게 야한지 모르겠지만 기필코 보리라! 를 다짐하며 용산으로 갔습니다. 수많은 접선 끝- 용산전자상가 언저리에서 쭈뼛쭈뼛 서있으면 학생인 거 뻔히 보이는 우리들에게까지 비디오 불법 유통자들이 접근을 하거든요. 그러면 정말 엄청난 수위의 포르노 비디오부터 일본 LP판,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영화들 등등 수많은 아이템을 취급하는 아저씨들이 지나가며 낮은 목소리로 000 있어요 이러거든요. 한 아저씨가 모든 아이템을 취급하진 않기 때문에 이 아저씨 저 아저씨를 전전했죠- 에 검은 비닐봉지에 둘둘 말린 비디오테이프를 간첩이 접선하듯 사 와서는 당시 엄마가 직장을 다니시던 친구네 집에서 모였어요.

이미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 친구네 모여 빨간 비디오- 애마부인, 무릎과 무릎 사이 , 뽕 원투쓰리를 모두 떼었던 우리들에겐 그 영화의 야함이란... 껌이더군요. '괜히 걱정했어...'


예상대로 페트릭스웨이지는 멋있어 주셨고, 그런데 여주인공이 기대보다 예쁘지 않아서 페트릭스웨이지를 아까워하며 "내가 쟤보다 났지 않니?"를 서로 우기며 우리가 미쿡에 살지 않는 것을 개탄하며 페트릭스웨이지의 안목을 탓해가며 영화를 봤네요. 우리가 미국에 간다고 페트릭이 우리를 사귀어 줄것도 아닌겠구만...


여주인공은 부잣집 딸내미, 페트릭 아저씨는 리조트에서 일하는 똘마니... 둘의 신분 차이는 어쩌면 서로를 더 끌리게 하는 기폭제가 되어 어찌어찌 춤을 핑계로 사귀다 하룻밤을 보내고 신분 차이를 이유로 남자가 떠나게 되는 대목에선

"아니 어쩌면 저렇게 쉽게 떠나? 미국이면 다야? 여자랑 자놓고 굿바이하고 가면 다야? 나쁜 놈!" 이라며 쏘 쿨하신 죄 없는 페트릭스웨이지를 욕을 욕을 해가며 봤네요. 뭐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어찌어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서 용서해 주긴했지만...


영화를 보고 우리에게 남았던 것은 아까 말했지만, 야함의 수위는 우리들에겐 말할 나위 없이 적당했으니 기억에 남을 것도 없었고... 뭐... 음악 좋았죠... 베이베... 오오오 베이베... 이래 쌌는 노래도 괜찮았고, 우리가 그 욕을 마지않았던 페트릭스 웨이지가 하룻밤을 보내고 줄행랑치던 장면에서 나왔던 그가 불렀던 노래도 soso... 몸을 마구 마구 남사시럽게 비벼대며 추던 살사도 나름 신선했고... 그러나 영화를 보고 우리들 모두에게 정작 감명 깊게 남았던 건 따로 있었어요.


바로 맨발에 운동화. 여주인공이 장착했던 그 아이템



5.JPG 여주인공의 맨발에 하얀 운동화


요거.

그때까지 샌들엔 맨발, 운동화엔 하얀 양말이 거의 국률이었거든요. 아마도 그때부터였을껄요? 하얀 운동화에 맨발 패션이 전국을 강타한 것은... 대학생 언니들은 물론 우리들처럼 발랑 까진 중고등생 모두 그날 부로 맨발에 하얀 운동화가 패션피플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죠. 영화를 보고 그담 주말에 바로 동대문에 집결한 우리들은 모두 다 똑같은 그 하얀천 운동화, 그 여주인공이 신어 주셨던, 그 운동화를 구입했어요. 여름에 운동화를 양말 없이 신는다는 거... 여학생들 교실에서도 발 냄새를 유발하는 바람에 선생님들께서 제발 신발 좀 교실에서 벗지 말라고 부탁에 마지않던 ㅎㅎㅎ그 아이템 덕분에... 그렇게 냄새나는 여름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이 유행은 겨울도 불사하여 그해 겨울 정말 발이 많이 시렸었네요 ㅎㅎ

그시절 우리는 모두 그 신발만 신으면 페트릭의 연인이 되는 양 그걸 신고 거리를 쏘다녔습니다.




그런가 하면 <워킹걸 >이라는 영화는 <정장에 운동화>를 유행시켰어요. 멜라니 그리피스하고 시고니 위버 나왔던 영화인데 이건 전국을 강타한 수준은 아니었고, 일부 발칙한 워킹걸 인척 하는 걸들-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에게 한동안 '원래 자기는 그렇게 신고다닌다는 듯 시크하게'를 가장하며 유행했죠.


교직을 들었던 우리들은 실습기간에 정장을 입어야만 했거든요. 각자의 모교에서 실습을 마친 뒤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강남역 나이트로 출근을 하기 전, 뉴욕제과에서 모이는데 굳이... 구우지 이 정장에 운동화를 챙겨 신고 와서는 결국엔 흰 남방- 나이트엔 흰 남방이죠? 아시죠들? 조명발엔 흰 남방이 필수 아이템이었던 거 ㅎㅎ-에 하이힐로 갈아 신을 거면서 눈에 확 띠게 신고 다녔던 그 아이템. 왠지 일 열심히 하고 다리 아파서 정장구두는 더 이상 못 신고 운동화를 신어야만 하는 커리어우면 같잖아요. ㅎㅎㅎ 그런 여성 코스프레... 영화에서 멜라니 그리피스가 잘 나가는 워킹걸인데 그녀가 그렇게 입고, 신고했었거든요. 그게 매의 눈인 우리들에게 포작 된 거죠.


넷 중 하나만 그렇게 했으면 어쩌면 컨셉이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짠 하고 만나는데 네 명 다 그러고 나타난 거 있죠... 헐... 단체로 똘아이들의 만남이 되었죠. 그 패션이 예사 패션은 아니였거든요 그 당시. 지금이야 정장에 어울리는 운동화도 많이 나오고 정장에 운동화가 패션의 한 스타일로 자리 잡았지만 그때 90년대에는 운동화는 운동만 할 수 있게 투박하게 나오던 때라... 더구나 그 당시는 사람들이 서로의 패션을 얼마나 뚫어져라 쳐다보던 시대였는데... 심지어 다들리게 쯧쯧거리면서 ...전철역에서 그런 차림의 우리들을 각각 본 사람들도 이 생소한 모습에 어리둥절해했었을 텐데 네 명이 그러고 앉아 있으면 얼마나 기괴했겠어요?


'하여튼 이것들과는 영화를 같이 보는 게 아니었어... 얘네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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