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고...
우리 아랫집에는 유난히 많은 점포가 들락날락거렸다. 경희네 중국집 이후로 한복집 그리고 뽑기 집 아저씨 부부가 들어온 적도 있었고 미장원, 계란장사, 만화방 그 종류도 다양한 온갖 점포들이 들락날락했었다. 그 들락거리는 분주함만큼이나 그 당시 그들의 삶도 분주했었다.
경희네 중국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 자리에는 한복집이 들어섰다. 한복집 아줌마는 근처 시장에서 포목점 운영도 함께하는 꽤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 그러니까 우리 아랫집이 작업장인 샘이고 시장의 포목점은 쇼룸과 매장인 샘이었다. 시장에는 주로 점원들이 있었고 아줌마는 주로 집에서 작업을 했다. 한복집이 이사를 오면서 동네에서 이슈가 된 것은 단연코 아줌마의 눈에 띄는 미모였다. 미모도 미모지만 아줌마에게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기품이 있었다. 바느질을 하는 사람은 직업의 특성상 구부리고 작업을 해서 허리가 굽는다고들 하는데 아줌마의 허리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더 꼿꼿이 세워져 있었다. 그 자세는 바느질을 할 때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는데 비단천에 에워싸여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바느질을 하는 아줌마의 모습은 남자들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아줌마는 청상 과부라고 했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삯바느질로 시작해 딸 둘을 키우며 지금의 한복집과 포목점을 일궈냈다고도 했다. 아줌마의 미모는 비운의 청상과부라는 배경과 시너지를 일으켜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더욱 빛을 바랐다. 아줌마의 미모가 곧 동네에 소문이 났고 동네를 드나드는 홀아비 장사치들이 유난히 한복집을 기웃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채소를 파는 김씨 아저씨, 빈병을 수거하러다니는 엿장수 오씨 아저씨, 개장수 성씨아저씨, 뚫어를 외치고 다니는 방씨 할아버지까지...
엄마는 엄마보다 두 살이 많은 아줌마를 형님이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 친한 덕에 목욕탕도 같이 가는 사이였는데, 한날은 아줌마와 목욕을 다녀오신 후 아줌마의 속살을 보름날 달빛에 비친 선녀의 속살 같다고 예찬하셨다. 우리 엄마도 뽀얀 살결로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분이었는데 아줌마의 그것에는 견줄 바가 아니라고 했다. 엄마의 속살에도 이미 감탄에 마지않던 나는 도대체 보름날 달빛에 비친 선녀의 속살은 어떤 것일까 상상하며 아줌마에 대한 환상을 더더더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줌마는 민망해하며 속살이 하야면 남편 복이 없다고 엄마의 칭찬에 화답했다. 곁에서 아줌마가 주신 천쪼가리를 가지고 놀며 천진한 척 듣고 있던 나는 까만 나의 속살을 처음으로 다행스러워하며 나의 자존감을 조용히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줌마의 깜찍한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어떤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 동네 한가운데서 아줌마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조리돌림 하면서 난리를 피운 사건이었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죽었다던 아줌마의 전남편이자 딸들의 아버지였던 거다.
진실은 이렇다. 아줌마의 남편은 아줌마의 미모와 끼를 불안해한 나머지 의처증에 걸렸고 사사껀껀 아줌마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면서 아줌마를 들들 볶아댔다. 그것을 견디지 못한 아줌마는 급기야 딸들을 데리고 아저씨로부터 도망을 나오고 별거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혼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애당초 이혼을 할 마음이 없었던 아저씨는 억울한 마음에 아줌마를 찾아내 아줌마가 자리를 잡은 동네에 어김없이 나타나 번번이 이런 식의 행패를 부렸고 이런 난리를 겪은 다음 아줌마는 동네 창피하여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빠져나와 다른 동네를 전전했던 것이다. 그동안 짐짓 청상과부의 사업적 성공에 약간의 시샘과 의문을 동시에 품었던 동네 사람들은 “어쩐지...” 해가며 아줌마의 사업적 성공이 다름 아닌 사람을 깜박 속이는 이런 깜찍한 수완에 있었다고 입을 모으며 마치 다행스러워하는 것처럼 떠벌려댔다.
한복집 아줌마의 이런 반전 스토리가 전해지자 그동안 아줌마를 칭송하던 동네 사람들의 태도는 급격히 냉각되었으며 기웃거리던 홀아비들도 한동안 흥미를 잃는 듯 보였다. 아줌마의 열성팬이 더 우리 엄마마저 뜸해질 무렵,
그러나 어느 순간 아줌마의 인기가 다시 회복되었는데 사연인 즉 슨 이렇다. 이 전남편의 머리끄덩이 사건이 있은 후 사람들은 짐짓 아줌마의 기죽은 모습을 상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줌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히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서 시원하다는 듯이 ‘ 그래요 나는 이혼녀입니다, 만’ 하는 도도한 모습으로 이전보다 더 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바느질에 매진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나쁜 남자의 마성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특정 사람들에 먹히는 신기술이었으며 역시나 사람들은 그녀의 이런 태도에 마력을 느껴 다시 열광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후에 전남편 습격사건이 몇 번 더 있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것은 그냥 가끔 있는 푸닥거리 정도로 취부 되었고 아줌마의 동네에서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져 갔다. 아줌마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줌마의 한복을 짓는 솜씨도 크게 한몫을 했다. 듣기로는 한복에서의 가장 어려운 기술이 <깨끼>라는 바느질 기술이라는데 아줌마의 깨끼 기술은 가히 감탄에 마지않는 솜씨였다. 그녀가 지어놓은 깨끼 한복의 맵시는 탁월한 솜씨로 다른 한복에서는 볼 수 없는 분명한 한끝의 차이가 있었다. 이후 사람들의 여론은 다시 아줌마의 사업적 성공이 사기성 능수능란한 수완이 아닌 아줌마의 바느질 실력에 있었음을 인정하는 쪽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가볍게 바뀌었다. 참... 어른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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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집이 잘 돼서 아랫집의 권리금은 한때 오를 뻔한 적이 있으나 여름에 큰 홍수로 배수시설의 결함이 드러나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사이 한복집 아줌마는 사업장을 키워 다른 곳으로 이사를 나가게 되었고 이번엔 뽑기 집 부부가 새로 이사를 들어오게 되었다.
이사를 올 당시 아줌마와 아저씨 부부는 겉으로 봐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한창 신혼이었다. 둘 사이에는 혜진이라는 갓난아이가 있었다. 아저씨는 설탕을 녹여서 투명하게 만들어 칼이나 잉어 등을 틀에 찍어 팔았다. 통조림 깡통에 제비뽑기를 채워 뽑는 방식으로 꽝이 나오면 엄지손가락만 한 설탕 붕어를, 운이 좋으면 큰 설탕 칼이나 설탕 잉어를 뽑을 수도 있었다. 전기세를 받아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갈때면 아저씨는 나의 손에 굽다가 실폐한 찌그러진 별 혹은 운이 좋으면 커다란 입이없는 잉어 등을 쥐어줬다. 뭐 맛은 별반 차이가 없었으므로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아줌마는 웃음이 싱그러운 예쁜 새댁이었다. 아침이면 리어카에 전날 만들어 놓은 설탕 뽑기들을 싣고 장사를 하러 나가는 아저씨를 아줌마는 정성껏 배웅하였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원앙 같은 신혼부부였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침의 다정함과는 다르게 저녁에 되면 아저씨가 술에 얼큰하게 취해오는 일이 잦았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우당탕탕 살림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뒤이어 아줌마의 숨죽인 흐느낌이 가냘프가 들려왔다. 다음날 아줌마의 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기가 일쑤였고 그 멍은 전날 밤의 끔찍한 악몽을 증거해 주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되었던 이런 일들은 날이 갈수록 하루 건너 하루씩 잦아졌고 아줌마의 얼굴에는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러면서 아줌마는 점점 싱그런 운 웃음을 잃어갔다.
한날은 혜진이가 경기를 일으켜 아줌마가 혜진이를 안고 울부 짓으며 병원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다행히 아이는 병원에서 별일 없이 돌아왔지만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평소처럼 아저씨를 다정하게 배웅한 아줌마는 혜진이를 데리고 종족을 감췄다.
사라진 그날 아침, 우연히 학교에 가면서 본 아줌마는 아저씨의 리어카가 골목 어귀를 돌아설 때까지 오래도록 아저씨를 바라봤었다. 엄마는 아저씨의 자격지심이 잘 살아보려 했던 아줌마를 떠나보내게 한 것 같다고 후에 다른 아줌마들과 함께 떠난 아줌마를 아쉬워하며 안됐어했다. 아저씨는 한동안 일을 내 팽개치고 아줌마를 찾아다니는 모양이었으나 번번이 술에 취해 돌아오는 것으로 그 실패를 알렸다. 아줌마의 숨죽인 흐느낌이 가늘게 들려오던 방에서는 이제 아저씨의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도 방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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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나는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다. 아래로 남동생을 보아 아빠는 그게 내덕이라며 나를 많이 이뻐해 주셨다. 이렇게 누나가 셋이나 되자 남자 형제가 갖고 싶었던 철없는 동생은 형을 낳아 달라고 때를 썼고 이런 동생을 달래기 위해 어느 날 아빠는 어디서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사 가지고 오셨다. 나를 이뻐했지만 선물은 늘 동생이 받는 이아이러니를 나는 세월이 한참을 지나서야 알아챌수 있었다. 뭐... anyway ...동생의 돌림자를 써서 한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녀석은 밥도 아무거나 잘 먹고 집안의 물건도 물어뜯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굉장히 영리해서 사람 말을 곧잘 알아들었다. 동생을 잘 따르고 말도 잘 들어서 내 남동생은 정말 동생이 생긴 듯이 기뻐했다. 한돌이는 엄마가 시장을 갈 때는 따라나섰다가 육교가 나타나는 큰 길가까지 가서는 엄마가 “집에 가 있어 한돌아. 여기는 계단이 많아서 네가 힘들어... 어서” 하면 신통하게 잘 알아듣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 영특한 녀석이었다.
아랫집 계란 장사 아줌마네 딸은 이런 한돌이를 특히 예뻐했다. 한돌이는 그 집의 동생 역할까지 하고 다녔다. 그 집과도 친해진 한돌이는 계란을 팔러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아줌마를 따라 장사를 나가는 일도 자주 있었다. “계란 사세요.∼∼ 계란!”을 목청껏 뽑는 아줌마 이 특유의 이 울림은 아줌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아줌마가 “계란 사세요.∼∼ 계란!”을 외치면 사람들은 계란을 사러 나와서 아줌마와 수다를 떨기도 하고 따라다니는 한돌이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했단다. 아줌마는 성격 좋은 괄괄한 과부로 아저씨는 딸아이가 두 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계란을 팔러 다니는 심심한 여정에 심심치 않게 애교를 부려주는 이 녀석 때문에 곧 잘 한돌이를 데리고 장사를 다니셨다. 아줌마도 역시 같이 다니다가 “ 한돌아 이제 아줌마 다른 동네로 가야 하니까 너는 집에 가있어” 하고 손짓을 하면 한돌이는 말잘 듣는 아이처럼 혼자 쫄래쫄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한돌이는 이렇게 우리 집에서도 놀다가 아줌마를 따라가서도 놀다가 하며 양쪽 집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줌마가 아랫집으로 이사를 들어오고 좀 더 우리 집과 막역해지자 아줌마는 한돌이를 저녁에 아줌마네 집에서 자게 하면 안 되겠냐고 청했다. 딸이 너무 좋아해서 같이 자고 싶어 한다는 거였다. 한돌이를 포기할 수 없어하던 동생은 자기가 잠든 밤에만 한돌이를 그 집에 보내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한돌이를 양보했다. 아줌마는 동생이 잠든 깊은 밤이 되면 조용히 한돌이를 불러내 아줌마네 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렇게 한돌이의 본격적인 두 집 살림이 시작됐다. 아줌마는 해가 뜨는 어스름한 새벽녘이면 대문에 나있는 개구멍을 통해 한돌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한돌이는 제집에서 마저 새벽잠을 자다가 아침이 되어 동생이 깨어나면 다시 남동생과 만나서 놀아줬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한돌이는 학교 가는 동생을 육교 앞까지 배웅한 후 늦은 아침을 먹고 아줌마와 계란을 팔러 나갔다. 그러다 아줌마가 다른 동네로 넘어가는 오후가 되면 돌아와야 할 한돌이가 그날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상했지만 오늘은 아줌마가 한돌이를 옆 동네에까지 데리고 갔겠거니 하고 한돌이가 왜 안 돌아오냐고 채근하는 동생을 달랬다. 저녁이 어스름하게 시작될 무렵 옆 동네에서 아주머니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한돌이는 자취가 없었다. 한돌이는 어디 있냐는 우리들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집에 돌아오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그제야 우리는 한돌이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다 같이 찾아 나섰다. 자기 이름을 알아들어서 누가 “한돌아” 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나 꼬리를 흔드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아무리 불러보아도 어디서도 한돌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 동생, 계란 집 딸은 끝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중 가장 서럽게 운 것은 나도 동생도 아닌 계란 집 딸이었다. 그 집 딸은 행여나 한돌이가 돌아올까 대문을 열어 두고 며칠 밤을 문 앞에 나와 기다렸다고 했다. 한돌이가 보고 싶어서 인지 한동안 밤에 계란 집 딸의 칭얼거리는 듯한 기척이 들리곤 했다. 우리 모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한돌이가 긴 마실을 끝내고 어서 빨리 집에 돌아와 주기를 바랐다.
계란 장사 아줌마가 이사를 나가고 나서 미장원 집 미경이 엄마는 그거 아냐며 엄마께 계란 장사 아줌마에 대해 공공연하게 떠돌던 소문을 들려줬다. 깊은 밤, 아줌마네 집 앞에 낯선 남정네가 자전거를 끌고 나타나면 아줌마는 우리 집에서 한돌이를 불러내 딸이 자는 방에 넣어주고는 남자를 따라갔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다시 돌아와 딸방에 잠들어 있는 한돌이를 우리 집 대문 개구멍에 들여놓기를 매일 같이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깐 그동안 한돌이는 아줌마가 남자를 따라 밤마실을 가면 아줌마를 대신해 그 집 딸의 밤을 지켜줬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왠지 나는 자장가 ‘섬집 아이’가 생각나 코끝이 찡했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이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희선이는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었다. 그러나 내게 절대 언니라고 하는 법이 없었다. 그아이는 누구에게도 언니라고 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에게는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 다만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에게는 확실한 언니 노릇을 했다. 아빠가 사우디로 돈을 벌러 가셔서 이곳으로 이사를 올 때 엄마와 동생, 희선이 이렇게 셋만 왔었다. 보통 아이들은 습관처럼 “우리 엄마가....” “ 우리 엄마가...” 이런 화법을 많이 쓰는데 희선이는 좀 달랐다. 희선이는 늘 아빠 얘기를 많이 했다. “ 우리 아빠가...” “ 우리 아빠가...”를 달고 살았다. 누군가 이거 우리 아빠가 사준 거다 하고 집에 있는 인형을 들고 나와 놀면, “우리 아빠가 사우디에서 올 때 그것보다 더 예쁜 인형 많이 사다 준다 그랬다. 우리 아빠가 오면 내가 보여줄게 정말 이쁠 거야 네 것은 댈 것도 아닐걸?”이라며 누가 묻지도 않은 자랑을 했댔으며, 누군가의 아빠가 나와서 아이들과 축구를 하면 자기 아빠가 얼마나 축구를 잘하는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침을 튀어가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희선이는 아이들하고 놀다가도 비행기가 지나가면 “아빠 안녕” 하고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면 같이 놀던 우리들도 하늘을 향해 “안녕” 하며 같이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희선이 아버지?”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희선이 엄마는 갈색 머리, 하얀 얼굴에 볼이 복숭아처럼 핑크색이었고 눈썹이 짙고 숫이 많아서 두 눈썹이 거의 붙어 있는 듯 보이는 이국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프리다 칼로를 몰랐기 때문에 원숭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똑같이 닮은 희선이도 눈썹이 거의 붙어 있었다.
희선이 엄마는 다른 아줌마들처럼 길가 평상에 나와서 수다를 떨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처럼 멋을 내고 외출을 하는 일도 없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내려고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늘 두 살배기 희선이 동생을 업고 종종거리며 집에서 살림만 하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었다. 다만, 희선이를 부를 때는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나는 특유의 악센트를 담아 늘 앙칼지게 불렀다. “희↗쓰나↘” 이렇게...
내가 보기엔 그녀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가장 늦게 잠드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그녀를 잘 아는 이유는 내방 창문을 열면 희선네가 바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희선이 엄마의 빨래 방망이질 소리에 잠을 깼고 밤에 잠을 자려면 꼭 커튼을 쳐야 했다. 그 집에서 세어 나오는 불빛 때문이었다.
드디어 희선이네 아빠가 사우디에서 돌아왔다. 오기 며칠 전부터 희선이가 자랑 자랑을 해서 도저히 모를 수가 없었다.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잠을 깨우는 소란이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마치 마당놀이 공연을 보러 온 것처럼 동그랗게 무대를 비워두고 몰려서 있었다. 한복집 아줌마네 전남편 소동 이후로 처음 있는 싸움이라 구경꾼들은 조금은 흥분해 있는 듯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희선이네 엄마 아빠였다. 열린 대문 안에는 밥상이 엎어져 있었고 희선이 아빠는 희선이 엄마를 끌고 나와 나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가방이며 옷가지들이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서로 악다구니를 쓰는 탓에 들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으로는 희선이 엄마가 희선이 아빠가 사우디에서 벌어다 준 돈을 다 탕진했으며 바람이 났다는 거였다.
‘그럴 리가...’ 내가 아는 한 희선이 엄마는 바람을 피울 시간이 없었다. 외출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을 투명인간이랑 피웠나?’라고 내가 생각하기가 무섭게 마치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바람은 투명인간 하고 피우냐? 그리고 내가 탕진할 돈이나 부쳐 줘 봤고? 남들은 사우디 가면 돈도 많이 보낸다던데 인간아 너는...”라고 대들고 있었다. 한참 동안 악다구니가 오갔다. 내가 듣기론 그 와중에도 희선 엄마의 논리가 희선 아빠의 논리보다 훨씬 논리 정연했다. 희선이 아빠는 우격다짐과 악을 쓸 뿐이었다. 구경꾼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자 싸움도 흐지부지됐다. 구경꾼들이 돌아가서 싸움이 끝난 건지 싸움이 끝나서 구경꾼들이 돌아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길로 희선이 엄마는 집을 나갔고 얼마 후 눈과 눈 사이가 먼 광어처럼 생긴 아줌마가 희선이 남동생보다 조금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희선이네로 들어왔다.
우리들은 끝내 희선이의 예쁜 인형들도 축구를 하는 희선이 아빠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다만 희선이 엄마 등에 업혀있던 희선이 남동생을 이젠 희선이가 매일 업고 다니고 있었다. 희선이는 더 이상 “우리 아빠가...”라고 시작되는 자랑 따위는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