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 부정 탈라...
골목 초입에 살던 우리 집은 그집은 세를 주고 골목 마지막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거기는 원래 호정이네가 살던 집인데 호정이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우리가 이사를 들어가게 되었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계주였던 호정이 엄마가 1번으로 곗돈을 때먹고 도망가려는걸 우리 엄마가 잡아 냈고 그것을 빌미로 집을 팔아 갚기로 하고 급하게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호정이네는 등나무 집으로 유명했다. 마당 한 켠에 오래된 등나무가 마당의 하늘을 다 덮고 있어서 대문에 들어서면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그 모습은 너무 아름다워서 실로 현실적이지 않았다. 햇빛에 어린잎들이 연두색으로 빛나는 모습도 좋았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줄기가 보이는 빛도 신비로웠다. 꽃이라도 피는 계절이면 조롱조롱 달려있는 꽃들과 향기가 더해져서 그 집 마당은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천상의 그곳이었다. 처음 그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제일 좋아했던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호정이네 처음 놀러 갔을 때의 그 황홀함이란... 거기에 살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그 집으로 이사 가면 친구들을 왕창 초대해서 자랑해야지! 얼마나 감동들을 할 거야 과거의 나처럼.
그러나 그런 나의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등나무가 싹둑 베어져 있었다. 엄마는 곗날이어서 외출 후 돌아와 보니 그 지경이 돼있더라고 했다. 집에 혼자 계시던 아빠가 저질러놓으신 참사였다. 원래 집에 전구도 잘 안 갈아 주셔서 참다못한 엄마가 돈을 들여 전파사 아저씨를 불러서 전구를 갈 정도로 집안일에 소홀하신 분인데.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리고 뭘로 잘랐는지? 혼자 하셨는지? 무슨 생각으로 하셨는지? 여러 가지 미스터리를 남겼지만 다 부질없는 일들이었다. 등나무는 싹둑 잘렸고 그 ‘멋지던 마당’은 ‘그냥 마당‘이 되어 있었다. 말릴 틈도 없이...
아빠만 빼고 우리 식구들은 모두 허탈해했다. 모두들 나름대로의 로망을 가지고 이 집에 입성했을 텐데... 엄마는 너무 기가 막혀서 한동안 말씀을 잇지 못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언니들도 황당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뭐 내 남동생이야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나이였으니 그 아이 의견은 알바 아니었다.
사태를 돌아보고 엄마가 제일 걱정한 것은 다름 아닌 나무의 정령이었다. 샤머니즘에 심취해 있던 엄마는 30년도 넘은 나무를 잘라냈으니 분명히 나무에 정령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고 그걸 건드렸으니 나무의 신이 대로했을 거라고 큰일 났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냥 근사한 나무 한그루가 잘린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정령이니, 대노니, 뭐니를 듣고 나니 덜컥 겁이 나면서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너무 아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즈음 앞 골목의 병원 집 성삼이네 큰형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앞 골목 성삼이네 아버지는 의사였다. 육교 바로 앞에 있는 성삼이네 피부과는 진료과목은 피부과지만 동생과 같은 반이고 부모님들께서 서로 친분이 두터우셔서 우리 집 식구들은 웬만한 병이면 다 성삼이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각별한 사이였다. 성삼이네 집은 이 동네에서 가장 넓은 집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꽤 넓은 정원이 있었고 정원에는 작은 연못도 있었다. 그 연못에서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올봄 성삼이네는 그 연못을 메우고 보도블록을 깔아 정원을 정리했다. 남의 집 정원 정리까지 알게 된 이유는 그 집에 최근에 큰일이 있어서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건강하던 성삼이 큰형이 갑자기 암 선고를 받게 된 건 연못을 메우고 채 한 달이 안돼서였다. 아버지가 의사였으니 그쪽으로 아는 사람도 많고 본인도 얼마나 백방으로 알아봤겠는가? 그러나 그 집 큰아들은 암 선고를 받은 지 두 달 만에 어떻게 손써볼 사이도 없이 허무하게 가버렸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건강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병원 집 열아홉 살 생때같은 큰아들이 말이다. 동네 어른들은 그 연못을 메우면서 동이 티였다고 들 했다. 원래 연못은 함부로 메우는 게 아닌데 아무런 조치 없이 연못을 메웠던 게 큰 사단을 일으킨 거라고들 입을 모았다. 아홉수가 들었을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이런저런 추측과 억측들이 난무했었다. 이후로 성삼이네 어머니는 거의 반 실성을 하다시피 했고 나머지 식구들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채로 살고 있었다. 건너 골목이긴 했지만 그 집과 벽을 사이에 두고 있던 우리 집은 한동안 담장 너머로 웃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하며 지냈었다.
정월이면 며칠씩 치성을 드리러 가고 사월초파일 부천님 오신 날이면 온 식구들마다 하나씩 등을 켜왔던 엄마는 이사를 올 때에도 어떻게 하면 정주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이사를 올 수 있는지 무당 아주머니께 열심히 코치를 받고 그녀가 일러준 프로세스대로 정성을 다하면서 이사를 왔다. 제일 먼저 밥솥이 입장해야 괜한 동이 티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이삿짐이 들어가기 전 밥을 한솥 해서 먼저 거실 중앙에 밥솥을 가져다 놓았었다. 실로 기괴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상상해 보라 텅 빈 집에 전기밥솥이 거실 중앙에 떡 하니 있는 모습을... 물론 손 없는 날도 지켜야 했다. 손 없는 날에 기필코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해서 굳이 이삿짐센터 섭외도 잘 안 되는 수요일-그 당시는 수요일 쉬는 이삿짐센터가 많았다.- 이사를 왔어야만 했다. 이런 엄마가 믿으시는 믿도 끝도 없는 미신들과 성삼이네 큰형의 일 이것들은 엄마를, 그리고 우리들을 한동안 공포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이른바 이제 큰일이 난 것이다. 나무의 정령을 싹둑 베다니! 겁도 없이!!! 그날로 지체 없이 엄마는 점집을 찾았고 점집에서 들은 바로는 등나무의 정령이 할머니 신이신데 온 마음을 다해 치성을 다하면 마음을 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 식구는 모두 다 각자의 베개에, 지갑에 누가 볼까 남사스러운 누런색 부적을 한 장씩 꼬깃꼬깃 넣고 다녀야만 했다.
그 나무에 살던 정령이 그 다지 옹심이 없는 신이었는지 우리 집엔 그 후로 다행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엄마는 무당의 치성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무당들의 얄팍한 상술은 기가 막히게 영악하다. 무사히 지나가면 부적의 효험이요 만일 뭔 일이 있었다면 용하다고 했을 것 아닌가 말이다.
참... 돈을 쉽게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