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두 편의 잔혹동화

퍽퍽한 세상에서 그래도... 댕댕이와 냥이와 교감할 때는 동화가 펼쳐진다

by 조용해

옆방 언니 말대로 통조림을 놔두었더니 정말 도둑고양이들이 와서 먹고 가곤 했다. 동네에 여러 마리의 도둑고양이들이 있었는데 우리 집에는 유독 회색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자주 들러 통조림을 먹고 갔다. 하도 자주 와서 먹고 가는 통에 우리는 그 고양이를 ‘도둑이씨’라고 이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옆방 언니가 통조림을 놔두지 않은 날에는 그 자리에 엄마가 밥을 섞어 생선뼈나 남은 반찬들을 놓아두었다. 도둑이씨는 거의 매일 밥을 먹으러 우리 집에 들렀다. 그러나 좀 친한 척을 할라치면 하악 대며 곁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깍쟁이였지만 지 나름의 고마움의 표현으로 가끔 쥐를 잡아 밥이 있던 자리에 선물(?)로 놔두고 가서 우리를 경악시키기도 하는 츤데레였다. 덕분에 우리 집 마당에는 쥐가 사라졌다. 쥐를 잡아주어 엄마의 일을 줄여준 도둑이 씨를 엄마는 유난히 이뻐했다. 도둑이씨도 엄마에게 만은 허리를 쓰다듬는 기회도 자기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도 허락했다. 급기야 “아이고, 우리 도둑이씨 또 밥 먹으러 왔어요? 그럼 엄마가 밥을 줘야지요 오구오구” 하면 “야옹”하며 말까지 섞었다. 천하의 곤양이씨가 개냥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김에 나도 가서 좀 친학 척을 할라치면 영락없이 하악 거였다. 정말 눈꼴시었다. 치사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밥 준다 이거지...


도둑이씨는 한동안 밥을 먹으러 들락거리다가 어느샌가는 아애 눌러사나 싶더니 다시 집을 나가버렸다. 그러고는 한참 만에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밥이 있던 자리에 눈도 제대로 못 뜨던 새끼 두 마리를 던져놓고 사라졌다. 늘 주고 가던 쥐 선물인 줄 알고 치우려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왔던 엄마는 무언지 다른 모습에 그것들을 쓰레기통으로 쓸어버리는 대신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옆방 언니네와 우리 식구는 그때 막 낳은 새끼 고양이를 처음 봤다. 고양이들은 새빨갛고 쭈굴쭈굴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놈들은 헐떡이며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있었다. 언니들을 포함한 어른들은 막상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했다.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알아준다고 언니들에 비해 이제 새끼의 시절을 벗어 난지 얼마 안 된 나와 동생은 그즈음 자연 시간에 배웠던 스포이드를 기억해 내고는 돼지저금통을 털어 문방구에서 스포이드를 사 와서는 그걸로 고양이들에게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베개를 뜯어 솜으로 둥지를 만들어 새끼들을 그 안에 놓고 까만 비닐에 숨구멍을 뚫어 덮어주기도 하였다. 늘 투닥거리던 동생과 나였지만 그 일에서 만큼은 완벽한 팀워크를 이루었다. 새끼 고양이를 돌본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거의 24시간을 지켜봐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다행히 방학이 여서 그것이 가능했다. 동생과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에 당번을 정해가며 새끼들에게 우유를 먹였다. 차가운 우유를 먹인 날이면 물똥을 싸는 바람에 우유를 보온밥통에 넣어가며 먹여야 했다. 처음에는 쥐새끼보다도 작던 애들이 점점 고양이의 모습을 갖춰 갔다. 눈을 뜨고 처음 본 게 우리들이어서였는지 두 새끼 고양이들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따랐다. 이름을 너무 신중히 고민하느라 한동안 고양이 1과 고양이 2로 불렀다. 나중에 털이 자라 서보니 한 마리는 회색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는 갈색 줄무늬 고양이였다. 아빠 고양이의 종류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커서 목에 방울을 달아도 안 넘어질 정도의 크기가 겨우 되었을 때 우리는 고양이들 목에 방울을 달아 주었다. 자기 목에 걸려있는 방울이 딸랑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동생과 나는 그 아이들을 ‘방울이’와 ‘딸랑이’라고 드디어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나와 동생은 마루에 엎드려 얌체공을 밀어 던지며 방울이와 딸랑이랑 하루 종일 놀아줬다. 걔들이 우리와 놀아준 건지 우리가 걔들과 놀아줬는지... 어쨌든 우리 넷은 한동안 그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엄마 도둑이씨와는 달리 방울이와 딸랑이는 개냥이 과였다. 얘들은 우리에게 맘껏 애교를 피우며 그동안 도둑이씨에게 받은 상처를 달래주었다. 뽀뽀도 자주 해주고 기분이 좋으면 자신들의 머리를 우리 볼에 문지르며 한 바퀴 도는 세리머니도 서슴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우리는 각자 한 마리씩 공평하게 데려가 잠들 수 있었다. 그 털의 부드러운 감촉이나 배의 따듯함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양이들은 먼저 일어나 놀아달라고 꾹꾹이로 기분 좋게 아침을 깨웠다. 그즈음 도둑이씨는 새끼들이 잘 크나 확인하는 것처럼 가끔씩 들러 야옹거리다 또 어디론가 사라졌다. 방울이와 딸랑이는 변과 오줌을 잘 가리지 못했다. 어려서는 눈감아 주던 부모님들이 점점 냄새가 고약해 지자 더는 방 안에서 키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눈물로 매달렸지만 안 통했다. 아빠는 남자는 우는 거 아니라면서 동생을 말렸고 엄마는 자꾸 그렇게 울면 슬픈 일이 자꾸 생기게 된다며 맘대로 울지도 못하게 했다.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앞으로 고양이를 광에서 키우는 것에 동의해야 했다. 대신 우리가 아지트를 글루 옮겼다. 우리는 광을 이틀 동안 깨끗이 치우고 방울이와 딸랑이의 방으로 만들었다. 원래 타일 바닥인 그곳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 옆에 장판을 깔고 겨우 같이 누울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그렇게 추워서 더 이상 같이 못 있을 때까지 우리 넷은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 함께 생활했다. 추워서 방으로 돌아가 자러 가던 날 방울이와 딸랑이는 우리들처럼 우는 것 같았다. 밤새 야옹거리며 우리를 따라오겠다고 목 놓아 울었다. 우리는 밤새 잠을 설쳤다.

그즈음 동생과 나에게는 학교를 다녀오면 광부터 들러 애들이 잘 있나부터 확인하는 게 하루에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우리들도 크고 있었고 고양이들도 무럭무럭 자랐다. 밖에 내다 놓고 키우자 고양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불어났다. 자식은 육십이 넘어도 귀엽다고 누군가 그랬는데 그 말이 맞았다. 딸랑이와 방울이가 그랬다. 이젠 어디에도 새끼 고양이의 흔적이 없지만 투실한 엉덩이도 긴 허리도 우리에겐 여전히 귀엽게만 느껴졌다.


제법 어른 고양이 티가 나기 시작할 무렵 어미를 닮은 건지 방랑벽이 있었던 두 고양이는 하룻밤씩 집을 나가 돌아다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광이 자기들 집인 건 아는듯했다. 언제든 들어와 잘 수 있게 항상 문을 열어 두었더니 때로는 다른 도둑고양이들이 광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 동생과 나의 일은 두배가 되었다. 광에서 고양이 똥 냄새가 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어디선가 밤새 놀다 들어온 어느 날 방울이와 딸랑이는 어딘지 지친 모습이었다. 우리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내다보지도 않았다. 우리는 광으로 들어가 안부를 전한 후 숙제를 했다. 숙제를 마치고 고양이들이 일어났나 가보고 또 가 보고 했지만 웬일인지 고양이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온 기척이 나면 제일 먼저 뛰어나와 우리들의 다리를 감고 다니며 반가움을 표시했는데 말이다. 다시 고양이들을 보러 갔을 때 놈들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처럼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서로 몸을 맞대고 누워 있었다. 광 입구에서 이름을 부르자 딸랑이만 비척비척 기어 나왔다. 뭔가 이상한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방울이는 축 늘어져 있었다. 뭔가 잘못 먹은 게 틀림없었다. 우리는 엄마를 불러 사태의 위급함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 엄마는 외출을 하셨던 거다. 집에는 어른들이 한분도 안 계셨다. 우리 넷만 동동거리며 안타까운 시간을 보냈다. 가까이에 동물병원이 없었기 때문에 고양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려면 차를 타고 가야만 했다. 핸드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엄마께 연락을 할 길이 없었다. 우리는 급한 대로 물도 먹여보고 토하라고 비눗물도 스포이드로 먹여 봤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저녁 전에 엄마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두 마리 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였다. 너무 큰 슬픔에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던 우리 둘은 집에 돌아온 엄마 품에 안겨 왕 울음을 터뜨렸고 그렇게 방울이와 딸랑이를 보냈어야만 했다. 어제까지 온몸을 우리 다리에 비벼대던 놈들이 이제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이상하고도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


다음날 아빠는 두 마리를 각각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 우리들을 데리고 가서 느티나무 동산에 묻어 주었다. 나와 동생은 잘 가라는 묵념도 하고 나뭇가지를 주워 십자가도 만들어서 무덤에 꽂아 주었다. 광에는 서툰 솜씨로 십자가와 함께 회색 고양이 황색 고양이를 그려 넣은 그림도 벽에 붙였다. 동생과 나는 몇 날 며칠을 그 그림을 어루만지며 고양이들과의 동화 같고 기적 같던 많은 순간들을 떠올렸다.


딸랑이와 방울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생과 나는 광에 들어가서 끌어안고 한참을 울다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연대감이 우리 넷에게는 있었었다. 우리의 슬픔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우리 둘만이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엄마가 광을 치워 다른 용도로 쓰려고 할 때도 한동안 동생과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매달렸다. 그러지 말아 달라고...


한참 만에 들른 도둑이씨는 새끼들을 찾는 듯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아무리 찾아도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자 야옹거리면서 한참을 대꾸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와서 야옹거렸다. 그리고는 고양이들이 없어진 것을 눈치챘는지 자기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묻는 것 같은 눈으로 계속 우리와 눈을 맞췄다. 그 눈빛은 흡사 ‘너희를 믿고 내 새끼를 맡겼는데 어찌 된 것이냐?’라고 힐난하는 듯했다. 우리는 미안해서 도둑이씨를 쳐다볼 수 없었다. 그 후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몇 번인가 찾으러 와서는 원망 가득한 소리로 슬피 야옹거리더니 사라졌다. 그 후론 더 이상 쥐를 잡아다 주지도 밥을 먹으러도 오지 않았다. 도둑이씨 이후로 엄마는 다시는 도둑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지 않았다. 엄마도 방울이와 딸랑이가 생각났을 것이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그 슬픔을 애써 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즈음 와서 해본다.

***


‘우∼리집 강아지 뽀삐. 우∼리집 강아지 뽀삐. 뽀뽀뽀뽀뽀뽀 삐삐삐삐삐삐 뽑삐 뽑삐 ∼∼’라는 휴지 선전이 TV에서 한창 나오던 즈음 아빠는 농장을 한다는 친구 댁에서 셰퍼트종의 조그만 강아지를 한 마리 품에 안고 들어 오셨다. 이름을 지어보라는 아빠의 명에 따라 동생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뽀삐’를 동시에 외쳤다. 그렇게 뽀삐는 우리 집 강아지가 되어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평소에는 대면 대면하던 나와 내 남동생의 연대감은 동물이 생기면 그동안의 대면 대면함이 무색하게 다시 끈끈해 지곤 했다. 녀석은 먹성이 대단히 좋은 강아지였다. 밥을 줘도 줘도 배고파했다. 동생과 나는 급식으로 나오는 빵과 우유를 먹지 않고 모았다가 가져다주기도 했고 우리가 밥을 남기면 녀석의 허기가 좀 달래 질까 싶어 핑계 김에 밥을 남겨 보기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급기야 엄마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면서 덤으로 얻어온 찌꺼기 부산물들을 얻어와 녀석만을 위한 특별 사료를 따로 만들어 밥을 지어 섞어 주고서야 녀석의 허기를 달래 줄 수 있었다. 녀석은 꼬리를 흔들며 와구와구 먹어댔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누가 밤새 몸을 땅겨 놓기라도 한 듯 쑥쑥 자라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아기 뽀삐를 집안에서 길렀는데 엄마가 만들어주는 기름진 사료 덕분에 뽀삐는 털이 동그랗게 빠지는 도장 부스럼을 앓기도 했다. 고놈과 매일 비비적거리며 살다시피 했던 동생과 나는 뽀삐에게 도장 부스럼을 옮아 한동안 개와 연고를 나눠 쓰는 개 같은 인생을 살아야 했다.


무섭게 쑥쑥 자라던 녀석은 얼마 안가 갓 나은 송아지 만해졌다. 덩치만 산만했지 아직 애기였던 그 녀석은 똥을 아무 데나 한 무대기 씩 싸 놓는 바람에 얼마 후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끄는 힘이 너무 세서 동생과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아빠가 매일 퇴근 후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뽀삐는 데리고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쳐다볼 정도로 멋진 대형견이었다. 녀석의 윤기 나는 검은색 털에 쭉 뻗는 다리며 잘생긴 얼굴은 사람들로 하여금 “ 고놈 차암 자알 생겼다 “라는 찬사를 듣기에 충분했다. 잡종이 아닌 순수한 혈통의 세 퍼트견이었던 뽀삐는 성품도 어딘지 발발거리던 똥개들과는 다른 기품이 있었다. 충직하기가 장군 같고 우리가 너무 신난 나머지 흥분해서 차도로 뛰어들면 얼른 다가와서 인도 쪽으로 몰아주는 신사적인 면도 있었다. 집도 철통같이 지켰는데 누군가 낯선 이 가 집에 들어설라치면 컹컹거리며 짓는 통에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렸다. 짜장면을 시키면 주소 대신 큰 개집이요 하면 알아들을 정도로 동네에서 뽀삐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기 때는 우리를 동생처럼 따르더니 아빠와 산책을 다니면서부터는 지가 아빠인 줄 아는지 우리가 앞에서 아무리 재롱을 떨어도 같이 놀아주는 법이 없었다. 학교를 다녀와서 쓰다듬으러 다가서면 늘 시크하게 ‘어 왔어?’ 하는 듯 한번 쳐다보는 게 다였다. 혹시라도 우리가 자기를 귀잖게 할까 봐 얼른 제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줌도 똥도 늘 있는 힘껏 참았다가 아빠가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밖에 다가만 쌌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여름에도 개 냄새가 별로 안 났다. 그도 그렇 것이 깔끔쟁이 우리 아빠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그 녀석을 씻기는 통에 집에서 개 냄새가 날 틈이 없었다. 덕분에 그 녀석을 씻기는 일은 일주일마다 행해지는 우리 집의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수돗가가 있었던 마당에 녀석을 목욕시키기 위해 큰 다라이에 물을 채우는 소리가 콸콸 나기 시작하면 녀석은 벌써 저쪽에서부터 알아듣고 불만을 토로하는 듯 볼맨 소리로 컹컹 짖어댔다. 그러나 막상 목욕을 시키면 마치 숙명을 견디는 선비처럼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 사례를 견디며 참아내는 모습이 역력했다. 목욕이 끝나면 그동안 당했던걸 복수라도 하듯이 일부러 필요 이상의 요란한 제스처로 물을 털어내던 녀석 덕분에 그날 목욕 당번들은 모두 물 사례를 맞아 홀딱 젓어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뽀삐를 키웠다. 나중에 노견이 되면서는 보름달만 뜨면 늑대처럼 울어댔다. 그런 날이면 나는 영화 ‘나자리노’에서처럼 뽀삐가 사람으로 변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다.


동네 초입에 있는 구멍가게 주인 할머니는 가게에 물건을 사러 들르는 사람들에게 댁에 빈병 없소? 하며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 몰래 빈병을 팔아 용돈을 벌어 쓰던 할머니는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빈병을 수거해 가곤 했는데 그날도 우리 집에 빈병을 수거하러 왔었다. 엄마가 오전엔 외출을 해서 집에 없으니 오후에 와서 가져가시라고 그랬는데도 조급증을 내며 엄마가 없는 오전에 왔다가 그만 뽀삐에게 다리를 물리는 사고를 당했다. 이것은 할머니만의 사고가 아니었다. 뽀삐의 입장에서도 사고였다. 뽀삐는 노견이 되어서도 자신의 임무는 철통같이 지켜나가고 있었다. 뽀삐의 입장에서는 집을 지킨 죄 밖에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허락 없이 들어온 할머니 잘못도 있었다. 사고 후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 엄마는 뽀삐에게 광견병 주사를 맞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광견병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할머니는 날씨가 궂어 신경통만 돋아도 뽀삐에게 물려서 그렇다며 증거도 없는 꾀병을 들어 엄마에게 돈을 뜯어냈다. 이유 없이 머리가 아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의 모든 노환은 모두 뽀삐가 뒤집어썼다. 우리 집 자랑거리 었던 뽀삐는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퇴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번 사람을 물어본 뽀삐는 낯선 사람은 물론이고 주인인 우리에게까지도 종종 이빨을 드러내며 물려고 달려들어서 우리를 절망스럽고 슬프게 했다. 그즈음 엄마와 아빠는 뽀삐의 거취를 상의하는 듯했다. 며칠 후 뽀삐를 아빠 친구 농장에 돌려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와 동생에게 통보되었다. 정말 며칠 후 농장에서 아빠 친구가 와서 뽀삐를 데려갔다. 집을 나서던 뽀삐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우리들을 오랫동안 바라봤었다. 농장 아저씨를 힘없이 따라가던 뽀삐의 뒷모습을 보며 동생과 나는 말없이 닭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으며 언니들도 엄마 아빠도 눈이 빨개졌다.


아빠는 그즈음부터 저녁마다 어디선지 배달된 한약을 드셨다. 언니들이 그것의 정체가 뽀삐와 관련이 있다는 힌트를 주었지만 나와 동생은 믿지 않았다. 분명히 아빠와 엄마가 뽀삐를 농장에 보내셨고 개소주인가 뭔가라고 불리던 그것은 도저히 뽀삐로 만들어졌을 리가 없었다. 아빠가 드시는 약은 절대로 고기 국물에서는 나올 수 없는 진짜 한약 색깔이었단 말이다. 개소주와 한약 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버린 때는 이미 아빠가 한약을 다 드시고 난 후여서 이미 증거가 모두 사라진 터였다. 그러고 보니 그날, 농장에서 온 아빠 친구라는 분은 아빠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젊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번득 스쳤지만 나는 어른들의 야만스러움을 나의 무지와 함께 조용히 묻어주기로 했다. 그즈음부터 나에게는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싹터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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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5249853?page=85&row_id=row-ruliweb-38358444&view=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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