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혹시 아는 사이?
아침.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배웅해 주고 있는데 왠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앞을 기웃거린다. 아이는 자전거를 꺼내며 참치캔이라도 하나 따서 먹여보네라고 당부를 하고는 아침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휑하니 사라진다.
‘글쎄... 얘가 그때까지 기다려 줄라나?’
배고파 보이는 고양이를 발견할 때면 뭐라도 주고 싶어 준비해 나가면 어느새 없어져 버리기 일수였던 기억이 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행여나 싶은 마음에 따지 않은 참치캔을 들고 밖으로 나가 봤다. 웬걸... 녀석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요리조리 내게 비비며 다시 다가왔다.
“ 배고파쪄? ” 나는 귀여운 생명체를 보면 나도 함께 혀가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사실 얘는 중 고양이였다. 어쨌든 귀엽기는 마찬가지였다.
싸지 않은 참치캔을 따며
“너 내가 증말 인심 쓰는 거야. 이거 무려 편의점에서 산거란 말이다...” 하며 캔을 툭 따서 내밀었다.
허겁지겁 먹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코를 한번 대 보더니 못 먹을 것이라도 입에 댄 양 획돌려 버리고는 관심이 없다. 아 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접시에 덜어서 줄걸... 나의 대책 없음이 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네가 심히 배고파 보였단 말이다 이 녀석아 그래서 저 비싼걸...’ 나는 원망의 눈초리로 녀석을 뾰로통하게 바라봤다.
등위의 검은 얼룩무늬에 박혀있는 몇 개의 흰 먼지가 자꾸 신경 쓰이며 녀석이 몸을 내게 비벼대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어치피 샤워를 할 참이긴 했다.
그렇게 아침나절 잠깐의 조우로 만족하고, 남겨놓으면 다른 생명체가 와서 헤집어 놓아 동네를 어지럽힐게 뻔한 참치캔을 다시 들고 들어가려는데 순간 마주친 고양이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았다. 내 촉이 맞았다. 내가 문을 열자 녀석은 나보다 먼저 안으로 쏙 들어오더니 문 앞에서 어서 앞장서라는 듯 먼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녀석이다. 날 언제 봤다고... 아무리 제가 앞장을 서 본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무방비 상태인 집에 녀석을 무작정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해서 쫄래쫄래 따라오는 녀석을 단념시키기 위해 나는 알아듣던지 말던지 설명을 시작했다. 왜 너님을 우리 집에 들일 수 없는지...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단순히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좀 빈약한 듯하여 나보다 두살 늙은 동거인이 얼마나 동물을 싫어 하는 영작류인지부터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의 병력까지 상세히 까발리며 사정을 했다. 때로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매직이 통할 때도 있다고 믿는 나는 녀석이 알아들었으리라 짐작하면서...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냉정히 돌아섰다. 발에 채이는 녀석을 밀어내며 문을 약간만 벌려 놈을 한쪽 발로 저지한 채 내 몸만 안으로 구겨 넣어 겨우 집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따돌리고. 쾌재를 부르며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으려 할 때였다.
야아옹 야아옹 야아옹?
이야옹은 짐짓 ‘야 누구 그래, 거기 너’ 하는 듯이 나를 향해 있음이 분명한 톤이었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부르는 수준이더니 그래도 내가 문을 열지 않고 버티자 녀석은 더욱 소리 높여 힐난하듯 나를 부르고 있었다. 여차하면 고성방가로 이웃집에서 진정이 들어올 만한 기세였다.
‘뭐야 내가 아까 그렇게 좋게 타일렀건만...’
새가슴인 나는 문의 작은 랜즈로 녀석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아직도 자리를 굳건히 하며 있던 곳에서 목청 높여 시위 중이었다. 이러다간 누군가 우리 집 벨을 누르며 제발 사태를 좀 진정시켜 보라고 불만을 토로할 판이었다. 나는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잠깐의 말미를 부탁하는 눈빛으로 고양이에게 공손히 양해를 구했다. 일단 내 얼굴의 표정을 확인한 녀석은 고성을 잠정적으로 멈추는 듯했다. 여차하면 다시 시작할 기색이 역력했다.
‘어쩐다...’
이 녀석 행적으로 봐 선 안가고 기다릴게 뻔하니 일단 들어가서 녀석의 동선이 될 만한 곳에 신문지를 이어 깔았다. 다시 나와 보니 방금 내가 구했던 양해 쯤은 충분히 알았들은 것 같은 녀석이 - 아까 타이른걸 못알아 들은척 한게 분명해 - 역시나 문 앞에서 여자 친구가 집안에 물건을 잠깐 정리할 말미를 주는 남자 친구 마냥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두 번은 안 속는다는 듯이 이번엔 녀석이 문안에 발을 먼저 들여놓고 내가 먼저 들어가 버릴 수 없도록 나의 발을 한쪽 발로 꾸욱-왕년에 꾹꾹이 좀 해본 솜씨다. - 눌러 저지하면서 문이 열림과 동시에 민첩하게 집안으로 쏙 들어서 버렸다.
나에게도 민첩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자칫 깔아놓은 신문지를 넘어 녀석이 온 집안에 그의 족적을 찍는 날이면...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위생에 민감한 우리집 동거인이 이사실이라도 알게 되는 날엔, 꼼짝없이 하루종일 집안 대청소를 해야만 하는 위기에 놓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녀석은 다행히 함부로 나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가 모는 대로 신문지 런웨이를 따라 도망안갈테니 염려말라는 듯, 그러나 내가 모는 발걸음은 좀 성가시다는 듯이 내 발을 툭툭 채가며 ‘왜 이래? 진짜... ’의 음성지원이 되는 뉘앙스의 아까와는 다른 톤의 야옹 소리를 나직이 나만 들을 수 있는 볼륨으로 궁시렁대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마 우리 집에서 이 녀석에게 할애할 수 있는 공간은 타일 바닥으로 된 언제든 물로 박박 씻어 놈의 흔적을 지워 버릴 수 있는 욕실이 전부였다.
‘하 얘를 어째야 하지?’
녀석을 욕실로 몰고 일단 욕실에 발을 디디자 녀석이 우리 집을 맘대로 헤집을 수 없도록 욕실 문을 딸깍 잠갔다. 이제 녀석과 나 둘만이 한정된 공간에서 팽팽하게 대치하게 되었다. 녀석은 한동안 욕실 이곳저곳을 살폈다. 코를 대보기도 하고 몸을 비벼보기도 하고 마치 지가 있어도 되는 곳인가를 점검하듯... 벽에도 세면대에도 몸을 비벼댔다. 한참의 꼼꼼한 점검이 끝난 후 나는 아직도 대치상황의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나 따위는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급기야 욕조 앞에 깔아 놓은 발판 중앙에 배를 떡하니 깔고 엎드려 버린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