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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해 Aug 27. 2021

나비

잔혹 동화...

어릴 적 우리 집엔 어디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우리 식구가 되어버린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고양이나 개가 지금처럼 대접(?)을 받는 시대가 아니기도 했고 더구나 처음부터 떠돌이였던 녀석이어서 집을 따로 마련해주거나 그러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대충 처마 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아침이면 나타나던 녀석이 간밤에 천장을 달려 다니던 쥐새끼 몇 마리를 전리품처럼 마당에 집어다 놓으면 엄마는 그 녀석의 신실함에 적잖이 감동받은 듯 녀석에게 반들거리는 스댕 그릇에 어잿밤 먹다 남은 생선찌개를 한 그릇 인심 좋게 나눠주곤 하셨다. 녀석의 이름은 나비. 그 시절엔 우리 집 고양이도 나비, 옆집 고양이도 나비, 건너집 고양이도 나비였던 시절이었다. 희한한 건 모두 같은 이름의 나비였지만 주인이 부르면 쏜살같이 그 집고양가 주인이 부르는 방향에서 나타났다. 아무래도 고양이는 요물인 게 틀림없다. 그때 이미 인토네이션을 알아버린 거였다. 요망한 것. 요 녀석이 암컷이었는데 어느 순간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버려서 매일 밤 밤마실을 싸돌아 다니기 시작하면서 고것이 외박을 하는 날이면 소심한 나와 동색은 녀석이 어디서 헤매다가 길을 잃지는 않았는지 어디에 잡혀가지는 않았는지 애를 태우며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렇게 몇 번의 짧은 가출들이 이어지면서 저것은 원래 저러려니... 가 될 무렵 어느새 돌아온 녀석의 배가 적잖이 불러져 있는 게 보였다. 그동안 한대서 자던 나비가 드디어 문간방 쪽문이 나있는 봉당에 자리한 광에 작년 겨울에 덥던 담요를 살포시 깔아놓은 라면상자 산후조리원에 입성하게 되던 날, 우리 식구 모두는 백열전구가 노랗게 빛을 발하던 광에 옹기종기 모여 고양이의 순산을 빌며 고양이에게 덕담을 건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매우 동화적인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평화로운 순간이 있었다.


잠결에 요란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것도 같고 조용히 흐느끼는 처녀의 울음소리를 등은 것도 같다. 잠결이었지만 나비가 혼자서 애쓰며 산고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아 잠자리가 편안하지는 않았다. 다들 그랬는지 평소에 아침잠이 많아서 늘 타박받던 아빠도 학교 가기 몇 분 전에 겨우 일어나서 학교에 가던 나나 동생도, 남일에 시니컬하던 큰언니까지 다시 광에 모여 아기 나비들을 환영하는 의식을 가졌다. 나의 빨간 내복과 동생의 베이지색 내복이 새벽의 어스름한 불빛과 함께 적당히 쌀쌀한 겨울로 기억되는 거기까지는 동화에 가깝다.


 동화가 갑자기 호러무비가 된 것은 엄마의 갑작스럽고도 섣부른 행동 때문이었다. 식구들이 서로 나비의 품에 있는 새끼들을 보려고 얼굴을 비벼대고 있는 순간 말릴 틈도 없이 엄마가 호기롭게 나비의 품 안에서 한 마리의 새끼를 꺼내들었다. 새끼는 투명한 살색 위로 실 핏줄과 내장이 비취었고 눈도 못 뜬 채로 달달거리며 떨고 있었다. 손가락 두세 마디의 크기였다. 이 황당홤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비가 순산을 마친 평화로운 어미에서 무서운 악귀처럼 소리를 지르며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뿜어내며 우리에게 발톱을 드러낸 것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확히 5마리를 낳았었는데 엄마가 만진 한 마리와 그 한 마리를 꺼내느라 엄마손이 닿아버린 두 마리를 합쳐 3마리의 새끼를 순식간에 물어 죽이는 광경을 우리는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고 말았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것을 잡아먹었는지 그냥 물어 죽이기만 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시간적으로는 말릴 틈도 없이 순간에 일어났는데 천천히 하나씩 물어 죽이며 들리던 으드득 소리와 광끼 어린 눈빛이 기억의 편린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찌 새끼를 잃은 어미가 재정신이었겠는가...


그 일이 있고 나비는 다시 처마 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아침에 나타나곤 했지만 도통 새끼들을 돌보려고 하지 않았다. 젓이 퉁퉁 불어 바닥에 끌리는 한이 있어도 새끼들에게 젓을 물리지 않았다. 보다 못한 엄마가 새끼들을 데려다가 어미 뱃밑으로 밀어 넣으면 무기력하게 배를 내주기는 했지만 싫은 티를 역력하게 비쳤고 젖을 빨고 있는 새끼를 향해 귀잖다는듯 끊임없이 뒷발질을 해댔다. 그러면 그럴수록 새끼 고양이들의 몸짓은 더 필사적이 되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왜 내가 배신감 비슷한 걸 느꼈는지 그 미묘한 감정의 동요에 어리둥철했던것도 같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도 새끼들은 어미를 엄청 밝혔지만 나비는 부러 마음을 안 주려는 듯 애써 외면하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새끼들이 가까이 가려고 하면 할수록 하악 거리며 얼씬도 못하게 매정하게 대했다. 그리고는 바람난 과부처럼 밤마다 수컷 고양이를 찾아 발정 난 고양이 소리로 울어대며 온 동네를 배회했다. 그전처럼 여러 날 집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다시는 배가 불러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더 이상 쥐도 잡지 않았다. 잡아도 엄마께 바치는 일 따위는 다시 없었다. 엄마가 말아준 생선찌게도 스댕에 말라붙을 때까지 외면했다. 다시 어느 집에서 더부살이는 하는 건지 도통 집에서 뭘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던 녀석이 한참 만에 남루한 모습으로 돌아와 어딘지 이상한 모습으로 내려 오지도 올라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안절부절못하며. 처마를 불안하게 돌아다닐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스졌다. 며칠 전이 쥐 잡는 날이었다. 동네에는 동해에서 나눠준 쥐약을 밥을 말거나 식빵에 묻혀 여기저기 눈에 띄게 걸쳐놓은 미끼들이 거리에 심심찮게 널브러져 있었다. 녀석이 그것을 먹은 건지 그것을 먹은 쥐를 먹은 건지는 모르겠다. 괴로운지 여기저기 토악질을 해대던 입에는 잔 거품이 끼었고 눈에는 눈곱과 핏기가 서려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어디서부터 기어 왔는지 기진맥진한 채로 집으로 돌아와 얼마의 시간을 괴로워하다가 그렇게 죽었다. 괴로워하는 모습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죽는 모습을 본 것도 같은데 기억하려 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녀석의 원망 가득한 눈만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오랫동안 궁금해했다. 그날 우리가 그 새벽 그 광에 가서 막 낳아 놓은 새끼를 만지지 않았었다면 나비는 더 이상 떠돌지도 않고 정착해서 새끼들을 정성껏 보살피며 평범한 어미 고양이로 살지 않았을까? 나비는 그때 어떤 마음으로 힘들게 집에까지 온 걸까? 원래 집도 아니고 좋은 기억도 없는 이곳에... 예뻐하지도 않았던 새끼들을 보러 온 것일까? 아니면 원망의 눈빛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러 온 것일까? 애정일까 애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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