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저러다 언젠간 한 명은 죽지 싶게 싸우는 엄마 아빠를 피해 집을 나와 무작정 올라탔던 버스. 동생을 구출해서 어린이 대공원으로 갔다. 용돈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두 명의 초딩은 설날에 받아 겨우 챙겨둘 수 있었던 5000원을 깼다. 세뱃돈을 받으면 엄마한테 맡기라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여러 번 삥을 뜯겨오던 차라 올 설만큼은 세뱃돈을 사수하기 위해 엄마 몰래 밑장을 빼서 두장만 얼른 돼지저금통에 넣어두었던 터였다. 그렇게 얻은 오천원이었다. 평소엔 길에서 만나도 서로 아는 척 절대 안 하는 현실 남매였으나 그날만큼은 누나만을 의지하는 온순한 동생과 동생을 책임지는 믿음직한 누나여야 했다. 예를 들자면,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은 계기가 없었다면 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우리들의 남매애를 발현시키는 촉매제 같은 것이었다. 평소엔 각자도생, 이런 날엔 뭉쳐야 했다. 전우애로 뭉친 우리는 뜻하지 않은 남매애가 찐득한 남매로 큰다. 부부싸움이라는 끔찍하고 치열한 자양분을 섭취해 가면서.
부부싸움의 전초전, 본 게임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아빠가 퇴근을 하기 전 이미 엄마의 머릿속에 전쟁이 계획되는 날이면 학교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의 레이다에는 형제 없는 그것이 여지없이 감지된다. 집안의 공기는 진공상태가 되고 평소처럼 책가방을 호기롭게 바닥에 내팽개치기가 망설여지는 적막감이 온 집안을 무겁게 장악한다. 목이 마른 것도 같고 오줌이 마려운 것도 같은 알 수 없는 안달이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한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다가 삐걱거리는 화장실 문을 함부로 열다가 행여나 엄마를 거스르는 날이면 왠지 오늘 밤의 본 게임이 나로 인해 더 격렬하고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그러나 경험치에 의한 어느 정도 타당한 직감이 엄습해 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짐짓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격이 된다.
이럴땐 무작정 피하는게 상책이었다. 괜시리 마루를 닦던 엄마의 심기를 건드려 좀 있다 치러질 본게임에서 ' 조씨 족속'으로 싸잡아 욕을 먹지 않으려면 말이다.
엄마는 그당시 외로운 자기만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씨대 조씨. 엄마를 뺀 나머지 몽조리 조씨들은 성씨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와 적이되어야 했다. 엄마의 의식안에서. 뭐 여기까지는 엄마의 의식이니 굳이 참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의식의 흐름은 자칫 본게임에서 그날 엉겁결에 얻어걸린 조씨가 아빠대신 타깃으로 선택될 것이고 그러한 엄마의 속내를 이미 간파한 아빠가 애꾿은 타깃인 그 조씨를 감싸기라도 할라치면 게임의 본질은 흐려지며 전쟁의 규모가 배로 번지기 일수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때가 되면 전쟁의 취지고 뭐고 엄마의 해묵은 조씨 족속에 대한 유감과 불만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게 되어 감당하기 버거워진다.
전장은 본 게임이 시작되기 전, 경건함을 갖주기 위함인듯 깨긋하게 정리 중이었다. 집이 깨끗해 지면 깨끗해 질수록 게임의 농도는 짙다고 보면 틀리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청소로 풀던 엄마 덕분에 우리집은 필요 이상으로 그로테스크하게 반짝 반짝 빛이 났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허락 되지 않았다. 나는 좀 어수선한 집이 좋던데... 나의 취향따위는 고려될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춰 내방으로 숨어 들어간다. 숨소리도 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