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배신자들의 계절

더웠던 어느 날...

by 조용해


동네에는 동현이라는 유명한 <문제아>가 살았다. 용준이네 집에 셋방 사는 아이로 아빠는 안 계시고 엄마는 다방에 나가 매일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온다고 했다. 눈빛이 날카로운 작고 마른 아이였는데 동네의 남자애들은 내 동생을 포함해 모두 동현이한테 꼼짝을 못 했다. 아이들은 과자가 생기면 그에게 상납해야 했고 그가 부르면 밥 먹다가도 튀어나가야 했다. 만약 과자도 상납 안 하고 부르는데 제때 나가지 않으면 엄청난 보복을 당한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그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보복을 당한 애는 없었지만 그에게 잘못 걸리면 거의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들 했다. 그는 무려 태권도가 7단-그런데 태권도는 도대체 몇 단까지 있는 거야? 7단이면 꽤 높은가부지?-에 한번 잘못 걸리면 귀를 물어뜯어 버린다고 말하고 다니는 독종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가겟집 현재 오빠는 동현이와 동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동현이의 쫄자 노릇을 하고 다녔다. 그 아이의 쫄자들로는 내 동생 홍한조, 꼽슬이 재호, 경희 동생 경수, 울보 용준이, 현재 오빠 등 현재 오빠를 제외하고는 동현이 보다 어린 조무래기들이었다. 어른들은 바빠서 동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남자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이상한 분위기는 조금은 위험한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동현이의 행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 아이들을 집합시켰다. 아이들을 쭉 줄 세워 놓고 자기는 연대장처럼 앞에 서서 연설을 했다. 뭐 그 정도는 봐줄 만했다. 특별히 애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단지 아이들이 좀 주 욱 들어 보이는 게 다였다. 아직까지는 그 아이가 누구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내가 알기론 지금까지는 그에게 맞았다는 애는 없었다. 본능적인 촉으로 내가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지 눈치챈듯한 동현이는 애들을 줄 세우고 놀다가도 내가 지나가면 움찔하며 줄을 흩으며 안 그런 척 연기를 했다. 일단 그 녀석을 째려보는 것으로 경고를 했고 그럴 때면 그 녀석도 내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그와 나 사이에 은밀하고도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여차하면 행동에 나설 참이었다. 그 ‘행동’이라는 것이 어른들에게 알려서 어른들끼리 처리하게 할 것인지 아님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된 바는 없었지만 어쨌든 저쨋든 가만히 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드디어 몹쓸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그날도 밥을 먹다가 불려 나가는 동생을 보며 이상한 촉이 발동한 나는 그의 뒤를 밟았다. 동현이를 필두로 아이들은 동네의 후미진 골목에 모여 뭔가 속닥거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줄을 서서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막 벗으려던 찰나였다. 이건 내가 봐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장면이었다. “내가 지금부터 너희들의 꼬추를 검사하겠다.” 바보 같은 것들! 아이들은 여차하면 동현이에게 지 들 고추를 검사받을 생각인 듯 쭈뼛거리며 옷을 벗으려 하고 있었다. “자 실시. 왜 안 벗나? 실시! 빨리빨리 뭐하나?” 놈은 지가 무슨 군대의 하사관이라도 되는 듯한 말투로 아이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원래 나의 행동개시 플랜 A는 어른들에게 알리는 거였는데 상황이 급박해지자 나는 나도 모르게 플랜 B-내가 직접 처리하는 것-로 급 선회하고 말았다. “야! 이 미친 X! 네가 뭔데 애들 고추를 함부로 보냐? ”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아이들은 당황하며 모두 옷을 주섬거리며 도망쳐 버리고 얼떨결에 나는 동현이와 다이다이로 독대를 하게 되었다.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렸다는 분노가, 더구나 내 동생의 고추를 노리개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은 이미 내가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게 하기에 충분했고 나를 이 동네 미친 X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의 매서운 눈빛과 소문에 떠도는 그의 잔인함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애라 모르겠다. 일단 달려들어 그 아이의 멱살부터 잡아들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내가 그 아이를 한 대 갈긴 뒤였다. 맹세컨대 나는 다소 말투가 싸납기는 하나 그때까지 개미새끼 한 마리도 죽여 본 적 없는 착한 아이였다. 동생을 제압하기 위해 머리끄덩이는 잡아본 적이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누나로써의 권위를 침해받을 때만 하는 나의 필살기였다. 내가 누구에게 주먹질을 한다거나 때린다거나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무모함에 나도 놀라며 동현이에게 귀를 물어뜯기는 상상을 하던 나는 너무 끔찍해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그날 나는 동현이한테 맞아 죽는 줄 알았다. 내 재삿날인 줄 알았다. ‘비겁한 놈들 나는 내 한 몸 불태워서 지들을 구해줬는데 모두 다 의리도 없이 도망을 가 버리냐? 동생이라는 놈도 그래 누나를 적장에 홀로 남겨두고 도망을 가버려?’ 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모든 것들을 원망하며 여차하면 하늘마저 원망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가 선빵을 날린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도 동현이의 주먹도 귀를 물어뜯으려는 그의 이빨도 내게 들어올 기미가 없었다. 뭔가 싸한 느낌과 함께 감았던 눈을 살짝 떠보니 내 눈앞에는 의외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태권도 7단에 화가 나면 귀를 물어뜯어버린다던 동현이 녀석이 내게 멱살을 잡힌 채 뺨에는 내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난 채로 아직도 내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잔뜩 쫄아 있는 놈의 표정이었다. 이미 한 대 맞은 동현이는 나의 매운 손맛에 기가 눌려 자칫 한 대를 더 맞게 될까 봐 벌벌 떨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순간 그동안의 석연찮던 퍼즐들이 착착 착착 들어맞는 순간이 왔다. 일단 그렇게 무시무시함을 자랑했던 놈이 동네의 조무래기들만 상대했다는 점, 소문만 무성했지 누구도 동현이에게 맞아 본 적은 없다는 점, 나를 보면 움찔하며 연기하던 점, 태권도 7단에 귀를 물어뜯는 잔인함도 다름 아닌 지가 떠벌리고 다녔다는 점... 그랬다 이 녀석은 가짜였다. 그동안 우리는 이 녀석의 허풍에 보기 좋게 놀아났던 것이다. 이쯤 해서 사태를 알아차린 나는 더 이상 이 녀석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어쨌든 저쨌든 가만두지 않겠다던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나는 자초지종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종주먹을 대기엔 이 녀석은 너무도 가련하게, 혹시 오줌이라도 지리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로 달달 떨고 있었다. 순간 나의 오지랖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아빠가 없다는데... 엄마가 매일 늦게 들어온다는데... 이 두 가지가 걸렸다. ‘설마 이 녀석 그동안 배고프고 외로워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과자를 뺏어 먹고 그래서 아이들을 집합시키고?’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 녀석을 족치는 게 더 이상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해왔던 어떤 일이 자기 생각과 너무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면 멍한 순간을 맞게 된다. 내가 그랬다. 나는 이 녀석을 더 혼내 주어야 할지 풀어주어야 할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단 아까 그 아이들을 불러 사과를 하면 봐주겠다고 약속하며 동현이를 풀어 주었다. 녀석은 알았다며 눈은 나를 응시한 채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며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갔다.

나중에 동생과 함께 엄마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상황은 종료되고 난 후였다. 나는 일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방금 동현이와 ‘약속’이라는 것을 해버렸기 때문에 엄마한테 아무 일 없었다고 둘러대고 말았다. 다행히 동생도 고추에 대해서는 함구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겁쟁이 녀석은 아이들에게 사과하라는 나와의 약속을 비겁하게 지키지 않았다. 태초부터 비겁한 놈이었던 것이다. ‘그날 그렇게 쉽게 풀어주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나 그동안 휘하에 두고 괴롭혔던 애들을 괴롭히는 일은 다시도 없었다. 현재 오빠와 조무래기들은 내가 지들의 고추를 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낀 나머지 그날의 일에 있은 후 나를 슬슬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날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퍼즐이 맞춰지기 전까지는 나조차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설사 그 장면을 봐 버렸다고 해도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봤는지 못 봤는지는 영원히 미궁으로 빠지면서 동현이와의 사건은 유야무야 되었다. 단지 아이들은 그날 이후로 동현이가 더 이상 자기들을 괴롭히지 않자 의아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이렇게 우리 동네 남자애들의 흑역사가 시작될 뻔한 사건은 허무하게 끝이 났고 그렇게 우리 동네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그녀들이 출몰하기 전까지는...

***


그 불여시들이 우리 동네를 접수한 건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부터였다. 이름은 춘희, 연실이... 이름도 어딘지 불여시스럽지 않은가? 이 둘은 쌍둥이로 마산에서 살다온 애들이었다. 이란성쌍둥이인지 이상하게 쌍둥이치곤 얼굴이 하나도 닮지 않았었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언 듯 보면 아이들이 동네를 누비며 질서 없이 마냥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 사이에는 나름의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했다. 일단 남녀는 칠세 부동석이었다. 일곱 살 혹은 조금 더 일찍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끼리만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만 무리 지어 놀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38선이라도 우리들 사이에 있기라도 한 듯이... 단, 우리가 남녀 구분 없이 함께 놀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방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숨바꼭질, 짬뽕 등의 사람이 많을수록 재미있는 놀이를 할 때뿐이었다. 이 놀이들을 제외하고는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끼리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끼리 따로 놀아가며 그들만의 또래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혹여 라도 남자아이들의 말타기나 야구 같은 놀이에 여자아이가 하나라도 끼려 한다면 남자애들은 귀잖아 하며 상대도 해주지 않았고 여자애들 놀이인 고무줄이나 인형놀이에 남자아이가 꼽사리 끼려고 한다면 계집애들은 그 아이에게 고추 떨어진다고 망신을 주어 내쫓으며 서로의 영역을 철저히 지켜왔단 말이다. 그래서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 그 누구도 서로의 영역을 넘보지도 그것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이 룰은 홍한조와 나 홍미조처럼 남매간이라도 용인될 수 없는 어떤 문화 혹은 우리들만의 규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이 나타나면서 우리 동네의 이 규칙에는 균열이 일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자아이들은 춘희, 연실이와 고무줄놀이를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공기놀이조차 같이하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는 거였다. 꼽슬이, 한조, 경수, 태경이, 태수 오빠 이들이 죽 늘어서서 ‘자유에 길로’를 하는 모습이라니... ‘애초에 그게 가능한 족속이었단 말인가. 저들이? 이런 배신자들 같으니라고... 우리가 같이한 세월이 얼만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쟤네들 때문에 우리 동네의 룰을 깨? 감히!’ 동네의 이런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우리 여자아이들은 단체로 배신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특히 이 동네 터줏대감인 나 홍미조, 여경희, 문희 김현자 우리들은 더더욱 기가 막혀하며 이 사태를 참을 수 없어하고 있던 중이었다.


더 가관인 것은 그들은 구슬치기도 가르쳐가며 같이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홍한조가 하도 구슬을 잃고 와서 풀이 죽어 있길래 잃은 구슬이라도 도로 따주려는 요량으로 집에서 피나는 연습을 한 후 내가 대련을 신청했을 때는 지들은 여자애랑은 구슬치기를 하지 않는다고 못 박아 말하던 놈들이 아닌가 말이다 저놈들이... 그러던 놈들이 단체로 약을 먹었나...


한조에게 듣자니 녀석들은 이미 그녀들의 집에도 드나드는 사이였다. “누나, 연실이네 집에는 하드가 냉장고에 종류별로 다 있다. 가겟집보다 더 많아 종류가 누가바, 홈런 바, 싸만코, 찰떡 아이스...” ‘오호라 먹을 걸로 꼬신 거였어?’ 얘기를 듣고 보니 그녀들과 노는 남자애들 손에 하드가 들려있던 장면이 생각났다. 어느 날 한조의 손에 들려있던 싸만코가 기억났다. 애들이 넷인 관계로 먹을 것에 있어서는 칼같이 공평했던 우리 집에서, 한조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나도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을 익히 아는 엄마께서 동생에게만 아이스크림을 사줬을 리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우리 집 냉장고를 떠올렸다. 냉장고 전체의 1/4 정도 크기였던 냉동실 칸에는 엄마가 반찬을 하다 남은 파며 고기며 부식들이 들어차서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하나 넣는 것만도 이리저리 쑤셔 넣으며 고군분투 후에나 가능했다. 그런데 걔네 집 냉장고는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누가바며 싸만코, 홈런바를 족히 7-8명의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 엄마 같은 경우 “하루에 아이스크림을 한 개 이상 먹으면 배가 아파요”라고 우리를 세뇌해왔기 때문에 설령 냉장고가 코끼리만큼 크다 해도 냉장고에 하드를 그렇게 꽉꽉 채워 놓는 것은 애당초 우리 집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에 아이스크림을 한 개 이상 먹을 수 있게 허락해주는 자애로운 엄마를 갖고 있다는 것은 쫌 부러운 일이었다. ‘아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가뜩이나 남자애들의 달라진 태도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던 내가 그녀들의 엄마마저 부러워하고 있다는 건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우리 여자애들 패거리에게 이런 사실을 일러바쳤고 다들 사정이 그만 그만했던 우리는 우리가 단지 냉장고 크기에 밀려 그 불여시들에게 당한 거라고만 굳게 믿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지 않고도 그 후로도 사내아이들은 춘희, 연실이 주변에만 득실거리는 거였다. 왜 그런지 진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쩌다 우리에게 현장을 들켜버린 춘희 연실이 자매의 필살기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 오빠야... 니는 어쩜 그렇게 힘이쎄노? 호호호 히잉∼ 내는 그런거 무거워서 못 드는데 오빠야 니는 번쩍번쩍 든다 아이가... 그지 연실아 그렇다 아이가 그제?”“ 하모 하모 그르타 태수 오빠야는 힘이 세다 힘이 장사다 아이가... 호호호” “ 아이고 야야 니는 어쩜 그렇게 구슬치기를 잘 하노 흐이∼.. 내는 잘 안되던데... 접때 보니께로 니는 고무줄도 억수로 잘한다 아이가... 니는 뭐든 잘한다 아이가... 호호호호 안 그릇나? 춘희야?” “ 하모 하모 한조는 얼굴도 이삐” 이런 낯간지러운 말들을 자매가 눈 하나 깜짝 않고 티키타카 주고받더란 말이다. 열살짜리 남자애가 페트병 고작 1,5리터짜리 2개를 드는 게 그렇게 감탄할 일인가? 나는 한꺼번에 4개도 들 수 있다. 걔가 힘이 세면 얼마나 셀 것이고... 사기 치고 있네... 온 동네에 구슬은 구슬은 다 잃고 다니는 홍한조가 구슬치기를 잘한다고라??? 뻥치시네 게다가 잘 생겼다고??? ‘ 이두 자매는 지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아는 사실들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비음을 섞어가며 뻥을 쳐가며 남자애들을 홀리고 있는 터였다. 그 뻔한 거짓말에도 침을 질질 흘리며 좋아하는 사내아이들의 모습이란... 이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한 우리 여자애들은 우리들의 패배를 직감했다. '저것들은 강적이다.' 감히 우리랑은 태생부터가 다른 '프로'인 것이다. 우리처럼 무뚝뚝한 서울깍쟁이들은 애초 남자애들에게 저런 식으로 온갖 연악한 척을 다 해가며 말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특히나 말 중간에 호호호, 흐응∼ 하는 식의 저 요사스러운 웃음과 추임새는 도저히... 설사 우리가 저걸 억지로 따라 한다 해도 당장 내 동생 홍한조만 해도 ‘우욱... 홍미조 왜 그래? 뭐 잘 못 먹었어? 미쳤어?’ 라며 토하는 시늉을 해댈게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할 것만 같던 그녀들의 분탕질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녀들의 아버지가 다시 마산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마산으로 돌아간 후 우리 동네에는 다시 보이지 않는 38선이 부활했고 동네는 다시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남자아이들은 그들만의 놀이를 우리들을 우리들만의 놀이에 다시 열중하며 서로를 상관하지도 방해하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 여자애들 패거리들은 남자애들을 ‘남자아이들’이라고 부르는 대신 ‘아 그 지조 없는 배신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중에 한 아줌마 소식통에 따르면, 사실 춘희와 연실이는 재혼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엄마 아빠가 따로따로 데려온 아이들이었다. 우연히 이들은 동갑이었고 그래서 닮지도 않았던 쌍둥이 행세를 했어야만 했던 거다. 애초 불륜 커플이던 이 커플은 마산에서 불륜이 들통 나 고향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서울로 잠시 피해왔던 것이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곳의 상황이 정리가 되었고 그래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영악했던 요 두 계집아이들은 역시 자신들만큼은 영악한 우리 여자애들과 놀다 보면 본인들의 정체가 드러날게 뻔하므로 어수룩한 사내아이들을 공략했던 것이고 이것이 교묘히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들이 떠나고 나서 금방 자신들의 정체가 낱낱이 공개될 것이라고는 아마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을... 어쩐지... 멀쩡한 가정에서 하루에 아이스크림을 한 개 이상 허락한다는 것은 그리 흔치는 않았던 거다. 적어도 서로에게 찔리는 것이 없는 떳떳한 엄마 아빠인 경우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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