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하필이면...

왜...

by 조용해


“ 된장을 한 잎 한 잎 바르는 거야 켜켜이 그래서 가을 내 장독에 묻어두는 거지. 그러면 짭조름한 콩잎장아찌가 돼. 여름에 냉장고에 넣어뒀던 보리차를 꺼내 찬밥에 밥을 말아서 콩 입 장아찌와 먹으면... 으... 죽음이지...”

“ 우와... ”

“ 그런데 무슨 맛이야?”

“ 음... 새콤새콤하고 짭짤하지만 된장이 얼마나 익었는지에 따라 달큼하기도 해.”

“ 강렬한 햇빛과 바닷바람을 동시에 받아 잘 익은 대봉시를 신문지를 한 장 깔고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는 거야 한켜 쌓고 신문지 한 장 깔고 또 한켜 쌓고 신문지 이런 식으로... 겨우내 점점 익어가는 홍시를 하나씩 꺼내 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비밀스런 꿀맛이야. 할머니들이 왜 홍시를 숨겨놓고 먹는지 알아? 자기들이 평생 먹어봤던 거 중에 그게 제일 맛있어서야!”

...

“ 또 또 그래서 그래서? ”

“ 좋았어 하나 더해주지... 다른 고기는 안돼. 꼭 꿩고기여야만 하는 거지. 꿩고기를 마구 다져. 고기만 다져서는 깊은 맛을 낼 수가 없어 뼈까지 곱게 다져야 해. 뼈는 조심해서 다져야 돼. 막 튀거든 혹시나 뾰족한 뼈가 남아있지 않게 곱게 정말 곱게 다져야 돼. 그리고 거기에 속을 털어낸 김장김치를 쫑쫑 배추 꽁다리까지 쫑쫑 썰어. 거기에 숙주나물을 살짝 아주 살짝만 데쳐서... 두부를 꼭 짜. 젖 먹던 힘까지 영혼을 끌어모아! 물기가 없어야 맛있거든...”


야자 시간에 저녁 도시락을 까먹고 나면 어차피 창밖에 노을은 일렁이겠다. 밥 먹은 직후라 속은 따땃하겠다. 어차피 공부에 집중하기는 글러먹은 거였다. 그즈음이면 우리 같이 공부 못하는 애들에겐 이렇게 수다라도 떨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지루한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된다. 이럴 때면 나는 친구들과 모여 앉아 우리 집에서 해 먹는 우리 엄마만의 레시피를 각종 미사 어구를 총동원해 가며 떠벌리며 시간을 죽인다. 한참 먹을 나이라 밥을 금방 먹고 돌아서도 배가 고픈 우리에게 먹는 얘기는 공부를 잘하는 애건 못하는 애건 관계없이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들릴 듯 말 듯 그러나 꼭 들릴 수 있을 만큼의 볼륨으로 소곤 되면 웬만한 아이들은 공부하는 척하며 다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한 번은 아이들이 듣나 안 듣나를 알아보려고 레시피의 클라이맥스에서 더 이상 이야기를 않고 멈췄더니 여기저기서 “어우... 야” 하는 야유와 함께 필통이 날아들었다. 그 ‘어우... 야...’는 일종의 콘서트에서의 엥콜과 같은 추임새였다. “어우... 야“를 들으면 더 신이 나서 맛있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런 철저한 검증과 리엑션까지 계산한 완벽한 시나리오로 작성된 나의 이야기에도 꿈쩍 않는 천하무적들이 우리 반에 딱 세명이 있었다.


집에서 언니들과 AFKN을 보며 웃는다는 전설의 재수탱이 조미정. 이지지배는 밖에서 전쟁이 나서 총소리가 들려도 영어단어를 외우면서 피난 갈 짐을 쌀 독한 지지배다. 학교에 자러 온다는 수영선수 잠녀니 본명 장연희, 얘는 늘 자고 있어서 애들이, 아마도 얘는 수영 중에도 배형을 할 때는 자면서 할 거라고들 킥킥거렸다. 그리고 모든 삼라만상에 심드렁한 흥혀니.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라 하여 본명인 김현 보다는 흥혀니로 불리던 아이. 혀니. 지말로는 세상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매사에 심드렁하다나... 영 빈말은 아닌 게 그 당시 그녀는 이미 3번의 자살을 시도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 결석을 하고 돌아와서는 삼세번 째는 성공(?) 할 줄 알았는데 운도 지지리도 없다고 무척이나 애석해했었다. 이런 현에게 의외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3번째 자살시도 후의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에서였다.


그녀가 심심할까 봐 온갖 종류의 만화책을 배달하러 갔던 내게 현이 반가워하며 말했다.

“ 헤이 조탱이-그당시 우리는 이름뒤에 탱이를 붙여 놀곤 했었는데 우연히 내이름이 <미조>인 관계로 나는 발음에 유의해야 하는 조탱이가 되었다-... 왔구나? 나 이번에 죽는 줄 알았잖아? 식겁했어”

“ 그동안... 죽고 싶은 거 아니었어?”

“ 그치 근데... 내 죽음이라도 내가 결정하고 싶어. 사고사는 아니야”

“ 차이가 뭔데?”

“ 글쎄...”

“ 말이 나왔으니 하나 묻자. 나는 니가 왜 죽으려는지 모르겠어...”

“ 하필이면...”

“ ??? ”

알 수 없는 대답에 나는 어리둥절했었다.

“ 하필이면 왜 우리 엄마는...”

“ 하필이면 허구많은 남자들 중에,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서...”

“ 하필이면 그 둘의 딸로 태어날게 뭐고...”

“ 하필이면 이혼을 할 건 또 뭐람...”

“ 하필이면 외동딸 일건 또 뭐냔 말이야”

“ 하필이면 번번이 자살시도가 걸릴 건 또 뭐야”

“ 하필이면...”

“근데 지랄, 최악의 하필이면이 뭔 줄 아냐? 사고 막 당하고 정신이 몽롱한 중에도 의사가 내 바지를 벗기려고 하는 게 보이는 거야. 것도 잘생긴 젊은 의사가, 그래서 막 안된다고 벗기지 마라고 지랄 지랄을... 하필 그날따라 안 이쁜 빤쮸를 입었는데 그래서 막 안된다고 울며불며 수술실에 들었갔잖아. 정신이 막 가려고 하는데 내가 막 부여잡았다니깐 내 정신을? 그런데 더 황당한 건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이미 나의 빤쮸는 벗겨져 있었다는 거! 개세...! “

” 어우우? 현탱이! 그럼 지금도 혹시 노 팬 티? 오우 아가씽 섹쉬한데?“

” 쎅쉬는 개뿔...“

종알 종알 종알 종알.... 하하하하 호호호호 *&*%*^(&18*))))


이후로도 계속해서 수면제를 사 모으던 현과는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사실... 그녀의 마지막 ‘하필이면’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될까 겁이 나서 혀니를 애써 찾지 않았다.

다만, 우연처럼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라도 좋으니 어디에선간 그녀를 한 번만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keyword
이전 10화10. 이른 아침, 바바리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