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을 읽고
불편한 편의점의 일본 버젼 이려니 하며 뻔한 스토리 텔링을 읽어줄 심산이었다. 그렇게 잠을 청해 보려고.
그러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용이 완전 신선한 바람에 잠을 들기는 커녕 잠이 확깨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싸이코패스 혹은 아스퍼거 증후군 그 언저리의 주인공의 삶의 웃픈 고군 분투기였다. 보통사람인척 연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은 18년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여성.
만일 이소설이 자전적 소설이 아닌 허구의 소설이라면 덜 현실적일뻔 했다. 소설을 읽으며 '아니 내가 왜 거기서 나와?' 하던 장면들이 겹쳐졌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내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은 집에서 자그마하게 운영하는 학원이 었다. 건너방에 피아노가 있고 선생님은 그즈음 아기를 갓 나은 아기 엄마였다. 아기는 백일이 채 안된 아주 아가였다. 그런데 어느날 선생님이 나에게 본인이 레슨을 할 동안 잠깐 아기를 보고 있으라고 했다. 나는 아무생각없이 아기를 보는데 불쑥
'아니, 날 뭘믿고 아기를 내게 맡겨? 내가 아기에게 해꼬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말못하는 아이는 당하고 하소연도 못할 텐데? 이르지도 못할텐데?' 라는 다소 황당함을 느꼈었던거 같다. 그와 동시에 후루룩 나쁜 상상이 내가 생각의 끝을 잡기도 전에 훝고 지나갔다.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자리를 빨리 벗어났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에 은행에서 알바를 할 기회가 생겼었다. 은행의 잡무를 하는 알바였는데 어느날 부서장이 나에게 꽤 고가의 신권을 주며 옆건물에 갖다주고 오라는 신부름을 시켰다. ' 힉! 날 뭘보고 이걸 맡겨? 내가 지금 이걸 들고 튀면 어쩌려고 쯧쯧 하며 ' 말없이 잘 전해주고 온 기억이 난다.
주인공은 더 으스스한 수준의 살벌함을 가지고 있긴하다. 누군가 친구들의 싸
움을 말리자 라고 하자 그것을 위한 방법으로 삽을 휘둘러 누군가를 다치게 할뻔하면서 싸움을 말리긴 한다. 그녀의 생각회로는 이렇다. 일단 싸움을 말리면 되는 것이다. 누가 다치던 말던...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언니의 아기가 울어. 언니가 짜증을 내? 방법이 있긴한데... 저 울음을 그지게할 ... 아기를 해쳐서라도...
그나마 교육을 받아서 뭔일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간극을 주인공은 구분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끝내 보통의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은 되지 않지만 사고와 사고안침의 경계에서 아슬 아슬그자리를 지켜나간다. 하긴 요새시대에 지극히 정상이라는 경계도 모호하긴하다. 어쨋든!
나름 연애는 아니지만 동거도 하고 사기를 당할뻔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기를 당하지도 않는다. 실화이므로 작위적인지 않다. 때론 삶에는 이런 작위적으로 보일수 있는 브레이크가 드라마보다 더 극적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그래서 삶이 이야기가 될수 있는 지점에 이르기도 한다.
내가 이책에 묘하게 끌린점은 아! 나만 이런게 아니였어. 라는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내가 평소에 궁금했던점을 주인공도 궁금해 한다. 적어도 지구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 둘은 있는거다. 그녀와 나. 이 둘이 셋이 될수도 넷이 될수도 있는거다. 그게 통계라는 것이니깐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