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일곱 시 삼십 분 코끼리 열차>

그렇게라도 옆에 있어 주었더라면…

by 조용해

아버지가 언젠가부터 종종 모자로 바뀌었다. 전조 증상은 없었다. 얼마동안 얼마나 자주 모자로 바뀌는지도 쌓인 데이터로 분석할 수 없다. 그냥…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모자로 바뀌었다가 본래모습대로 돌아오곤 했다.


언니의 우울증도 그랬다. 갑자기 어느 순간 무기력 해졌다가 다시 반짝 좋아지기를 반복했다. 전조증상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계기도 없었다.


모자로 변하는 바람에 이웃들의 항의로 여러 번 이사를 겪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엄마의 반자리를 메꾸며, 아이들을 꾸짖기도 하고 지키기도 하며 아버지로 곁에 있는다.


어쩌면 우리는 존재함만으로도 맡은 역할을 해낼지도 모른다. 무엇으로 존재하든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 곁에 함께 있는 것. 이것이 사명일지도 모른다.


나 같은 건 없어져 버리는 게 나아…라고 설득되는 순간. 너무 많은 파장을 일으키며 모든 공든 탑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남은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어쩌면 영원히 너무나 아프다…


매거진의 이전글문 <일곱 시 삼십 분 코끼리 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