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by 김준한

두꺼운 세월을 펼쳐 날짜를 넘기면

거기 그렇게,

화석이 된 순간들이 붙박여있다.

저희끼리 약속한 문법과 띄어쓰기는

언젠가 뒤바뀔 세상의 질서일 뿐

나의 규칙이 될 수 없었다.

타인의 삶을 베낀 필사본이었다면

진정한 일기가 될 수 없었겠지

같은 궤도를 돌고 도는 행성들은

얼마나 지루할까? 중력을 벗어나

너와 다른 생각을 했기에

우주에 던져진 듯 막막했다.

하루 이틀 건너뛴 여백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름들

삐뚤삐뚤 기울어진 필체, 정자처럼

반듯하게 걸어온 생이 아니라서

내 생긴 것처럼 초라하지만

엎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아직 써 내려가지 않은 날들

잡을 수 없는 꿈이 아닌,

변치 않는 소망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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