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세월을 펼쳐 날짜를 넘기면
거기 그렇게,
화석이 된 순간들이 붙박여있다.
저희끼리 약속한 문법과 띄어쓰기는
언젠가 뒤바뀔 세상의 질서일 뿐
나의 규칙이 될 수 없었다.
타인의 삶을 베낀 필사본이었다면
진정한 일기가 될 수 없었겠지
같은 궤도를 돌고 도는 행성들은
얼마나 지루할까? 중력을 벗어나
너와 다른 생각을 했기에
우주에 던져진 듯 막막했다.
하루 이틀 건너뛴 여백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름들
삐뚤삐뚤 기울어진 필체, 정자처럼
반듯하게 걸어온 생이 아니라서
내 생긴 것처럼 초라하지만
엎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아직 써 내려가지 않은 날들
잡을 수 없는 꿈이 아닌,
변치 않는 소망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