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다롱이 만만세 8부

by 김준한

아롱이다롱이 만만세 8부


세상은 참 이상했어요.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으니 말이에요. 간지럽던 이빨이 하나둘 뽑혀나간 것처럼 차갑던 바람의 모서리가 뭉툭해진 것까진 좋았는데, 이빨 대신 바람이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으니까요.


“야옹, 야옹”

"오빠 저 녀석 또 왔네."


오빠랑 옥탑방 계단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어슬렁거리던 야옹이가 또 찾아왔어요.


“너 왜 자꾸 우리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거냐?

"야옹야옹"


제가 따졌지만, 야옹이는 도도한 자태로 자기 털만 핥았어요.


“와 야옹이 너 거기 어떻게 올라갔냐?”


다롱 오빠가 지붕 위에 올라가 앉은 야옹이에게 물었어요. 우리는 계단도 아빠의 도움 없인 못 올라오는데 저 고양이는 우리보다 작은 다리로 어떻게 저 높은 지붕에 올라갔을까요?


“야옹아 거기 공기는 어떠냐?”


다롱 오빠는 무슨 호기심이 그리 많은지 발톱을 핥는 야옹이에게 물어도 녀석은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야옹이 너 얼른 안 꺼져!"


제가 크게 짖었지만,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야옹, 어휴. 왜 너희들이 거기 있는 거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긴 우리 집인데.”

“야옹, 야옹,”

“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얼른 너희 집으로 가셔. 안 가면 우리 아빠한테 혼난다. 좀 있으면 우리 아빠 올 거니깐. 그때까지 안 가면 각오하셔!”

“나도 지금 우리 아빠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야옹.”

“어이가 없네. 네 아빠는 네 집에서 기다려야지. 왜 남의 집에서 네 아빠를 기다린다는 거냐?”

“너희들 있는 거기가 우리 집이야!”

“뭐!”

“아니 우리 집이었다고!”


야옹이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 시장통 골목 끝을 바라보았어요.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얼른 꺼져라! 여기엔 우리 아빠가 오지 너희 아빠가 올 리 없잖아.”

“아니야! 울 아빠 꼭 올 거야.”


야옹이를 콱 물어 버리고 싶었지만, 녀석이 앉은 지붕 위에 오를 수 없는 저는 난간 너머로 짖기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너희들 페스티벌이라고 아니?”

“그게 뭔데?”


호기심이 발동한 다롱 오빠가 물었어요.


“고양이들 물론 너희 같은 강아지들도 하여튼 엄청나게 모여서 노는 건데, 거기서 여러 가지 경연도 하고 몸매 자랑도 하고 그래. 난 거기서 인기가 최고였다고. 아빠는 자주 목욕시켜 주고 털도 자주 깎아 주었어. 뭐 처음엔 좀 스트레스였지만 익숙해졌지. 페스티벌에 나가 상을 타면 행복해하는 아빠를 위해 나는 적극적으로 경연에 임했어.”

“오빠 제 지금 뭐래? 그런데 오빠 우리는 목욕이란 걸 해봤나?”

“한 번도 못 해 봤지 않아.”

“킁킁 그러고 보니 오빠 냄새 좀 독하다.”

“아롱이 너는 안 그렇고!”

“야옹, 야옹 아빠는 그때마다 내게 특별 간식도 사주었어.”

“제 자꾸 뭐래니?”

“응 아롱아 자기 아빠가 최고래.”

“콱 저게 어디서. 그래 그럼 네 아빠 어디 간 거니? 도대체 언제 오는데?”

“야옹야옹 올 거야. 우리 아빠 오면 너희들 당장 쫓아낼 거야. 거긴 우리 집이었으니깐.”

“얼래래 무슨 소리래. 오빠 나 저 야옹이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응. 우리 보고 목욕 좀 하래.”

“헐 어이가 없다. 까불지 말고 어서 꺼져라!”


녀석이랑 한참 실랑이하고 있는데 골목 저쪽에서 걸어오는 아빠 냄새가 짙어지기 시작했어요.


“와 아빠다!”


저는 꼬리가 부러지라고 흔들면서 아빠 가슴을 향해 폴짝 뛰었어요. 아빠가 들고 있는 봉지에선 맛있는 간식 냄새가 났어요.


“봤지. 네 아빠가 아니라 우리 아빠가 이렇게 오셨다. 이제 꺼져라.”


“어머 야옹이네. 아롱아 왜 그렇게 짖어 사. 친하게 지내야지.”


“봤지.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라고 하자나 우리 아빠가.”


돌아서는 녀석의 걸음은 너무나 느렸어요. 담벼락도 훌쩍 넘고 달리기도 우리보다 빠른 녀석이 갑자기 등에 엄청 무거운 것을 맨 것인지 어쩌면 저렇게 느릴 수 있을까요.


“얼른 꺼져!”


뒤돌아보는 야옹이에게 저는 전보다 더 앙칼지게 짖었어요.


“아이코 아롱아! 그러면 안 돼. 가엾은 녀석인걸.”


아빠가 잘했다고 칭찬을 하자 저는 더더욱 신이 나서 녀석의 뒷모습을 향해 더 크게 짖었어요.




순년이 피 묻은 옷가지를 던져놓고 사라졌던 그날, 옥상에 서 있었던 한영은 밤하늘의 별빛이 축축하게 허물어지는 까닭이 날카로운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영이 엄마와 다시 재회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엄마"

"그래 한영아 학교 잘 갔다 왔나."

"아빠는?"

"엄마랑 어디 좀 가자. 가서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알았제?"


처음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수많은 아이를 보았을 때처럼 낯선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였다.


한영은 아직 멍 자국이 가시지 않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자 금방이라도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한영의 마음속에 그날 밤의 허공만큼이나 짙은 두려움이 다시 밀려와 머리끝이 뾰족이 섰다.


순년과 함께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한영은 이내 괴물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예감했다. 바짝 타들어 가는 가슴으로 고개를 돌리자 구석진 곳에서 덩치 큰 경찰이 두드리는 자판 소리가 아버지 얼굴에 명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은 더 혐오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리 앉아라.”


태한과 떨어진 책상 너머 다른 경찰관 앞에 한영을 앉힌 순년은 잡고 있던 한영의 손을 놓았다.


“한영이 겁낼 것 없어. 아저씨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돼. 알았지.”

“이름이 뭐야?”

“김한영요.”

“그래. 참 멋있는 이름이로구나.”


“아빠하고 엄마하고 싸운 거 알지? 엄마가 왜 저렇게 멍이 들었는지도,”


경찰 아저씨가 그렇게 묻자 한영은 마음속에 응어리진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고 싶었지만 선 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 괴물이 그랬어요.”


한영은 허공 저편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태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괴물?”

“우리를 잡아먹는 괴물이에요. 저 남자는”


갑자기 흥분된 마음에 그렇게 말을 뱉은 한영은 겁이 덜컹 났다. 언제 그 괴물이 앙갚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괴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아버지가 수감되면 엄마랑 어디 먼 곳으로 달아나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세상은 아직 어린 한영에게 낯설었지만, 엄마와 함께 있는 곳이라면 어디던 놀이터 같았다.

엄마는 한영에게 완전한 존재였다. 알지 못하는 세상을 이끌고 나아가야 했던 한영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엄마뿐이었다.

덩치 큰아이가 위협한다 해도 엄마가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엄마는 사악한 놈들을 혼내 주고 자신을 괴롭히지 않게 해 줄 것이라고, 말썽을 피운 날 가끔 엄마가 회초리를 때렸듯이 그놈들도 다 때려 줄 것이라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배하고 끌고 나아갔다. 어른들은 과자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오락실에도 가지 않았다. 어른인 엄마는 한영의 절대자였다. 엄마는 한영이 배고프지 않도록 맛있는 것도 만들어 주었고 오락실에 갈 수 있게 용돈도 주었다. 엄마는 한영의 등에 낀 때도 밀어주었다. 엄마 곁에 있으면 고민도 할 필요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한영의 절대자도 걱정이 있었고 두려운 것이 있었다. 매일 매 맞고 울어야 했던 엄마. 한영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일매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경찰서에서 돌아온 그날 밤 한영의 꿈속에 술 취한 태한이 도시의 길을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번뜩이는 눈으로 순년과 한영을 노려보았다. 그가 휘두르는 칼이 허공을 베었다. 그러자 주위의 허공이 벌겋게 흘러내렸다. 칼은 벌겋게 젖은 채로 순년과 한영을 향해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한영은 무서웠다. 여자도 무서운지 심장이 급하게 뛰는 소리가 한영의 귀에 들리는 듯했다. 한영은 멀리 도망가고 싶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영은 기도를 했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그러자 태한 곁으로 커다란 자동차가 덮쳤다. 이내 남자의 몸은 벌겋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태한은 수개월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영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시간은 늦게 뜬 해가 금방 저무는 겨울 하루처럼 짧았다.


토, 일 연재
이전 08화아롱이다롱이 만만세 7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