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1부

by 김준한

나는 어찌하여 이런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을까?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을까? 콧속에 들어간 물이 머리를 으깨는 고통과 함께 맴돌았다. 어느 순간 한영은 발버둥 치지 않고 대야를 잡고 버티던 팔목의 힘을 풀었다. 당황한 태한이 한영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아롱이다롱이 만만세 11부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고작 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바람막이가 되어 주던 엄마가 없는 한영에게 그 시간은 삼 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냉기의 날 번뜩 세운 아버지를 대면하는 순간마다 피가 마르는 한영은 바짝 야위어 갔다.



“동하야. 너 나랑 가출 안 할래?”



한영이 메마른 땅처럼 벌겋게 갈라진 손으로 구슬을 쥐었지만 튕기기가 쉽지 않았다.



“형 그게 무슨 말이고?”



“인마 도저히 못 살겠다. 이러다간 방학 끝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르겠다.”



한영이 튕긴 구슬은 바람의 방해로 일 미터 앞 구멍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추운데.”



검은 비닐봉지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고 있는 바람은 마치 당장이라도 날카로운 모서리를 드러내 사람들의 가슴에 달려들 것 같았다.



“인마 넌 추위가 무서우냐? 네 가짜 엄마가 무서우냐?”



동하는 겨울바람보다 앙칼진 새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느 날 새엄마가 사 들고 온 통닭을 우연히 발견했다. 새엄마는 동하가 잠들기 전까지도 그 통닭을 꺼내 놓지 않았다. 그날 밤 잠결에 잠깐 눈을 뜬 동하가 목격한 것은 방 한쪽에서 통닭을 뜯고 있던 이복형과 새엄마였다.



“알았다. 언제 갈 건데?”



동하가 튕긴 구슬은 바람을 밀치며 구멍으로 들어갔다.



“이따 저녁때 가자. 옷 단단히 차려입고 나와라.”



한영은 냉기 서린 도시에 던져지는 것이 두려웠지만,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죽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 사는 친구들은 가출의 명분이 없었으므로 꼬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동하와 영수는 어른들의 억압에서 풀려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가출의 명분에 꿀을 묻혀 던져 놓자 덥석 물었다.




생계유지를 위해 삼총사는 돌아가며 동냥을 하기로 했다.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했다. 첫 번째는 동하였고 두 번째는 영수였다. 도로 저편에서 육교를 건너온 바람 속엔 마치 고양이 발톱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8살 처음 고양이 새끼를 납치하다가 맛보았던 그 시린 따가움이 이번엔 손등이 아니라 가슴 위에 번졌다.



“인마 얼른 안 하고 뭐 하노?”



한영은 평소 민망한 심부름 같은 것을 시켜도 군소리 안 하고 잘하던 동하가 갑자기 가슴이 쪼그라들어 머뭇거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 못하겠다.”


“이 새끼 봐라. 얼른 못 하나.”


“형이 먼저 해라.”



울상이 되어 말하는 동하는 한 번만 더 다그치면 울어버릴 태세였다.



“인마 그런 게 어디 있노? 순번 정했잖아.”



사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한영이도 동냥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녀석을 닦달하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동하였다.



“그럼 영수 니가 먼저 해라.”


“싫다. 니가 먼저 해라.”


“야 인마 그런 게 어딨노? 순번 정했다 아이가.”


“나는 동냥하기 싫다. 나 집에 갈 거다.”


“야 새끼야! 그런 게 어딨노! 지금 장난하나. 집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간단 소리고.”


“괜히 나왔다. 이건 최악이다. 따뜻한 집 두고 이게 무슨 고생이고.”


“야 새끼야! 금방 그리 마음이 변하나?”


“너희들이나 실컷 동냥해라 나는 갈끼다.”


“이런 개새끼가 의리도 없이 배신한다 이거지.”


한영은 순간 서러움이 복받쳤다. 자신보다 하나 나을 게 없어 보이는 영수가 괘씸하기도 하고 좋은 부모 밑에서 사랑받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퍽퍽!”


“내가 뭘 잘못했다고 때리노?”


“개새끼 의리 없는 새끼 이깟 게 뭐가 힘들다고 그러노. 이 새꺄”


“퍽퍽!”


“그래 니가 그리 잘나서 좋은 부모 만났더나”


“나 갈끼다!”


영수는 기어이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서고 말았다.


“니! 우리 여기 있는 거 일러바치면 죽는데!”


한영은 도시의 인파들 속으로 사라지는 영수의 등 뒤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형 나도 갈란다.”


“뭐 이 자씩이 정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목소리가 커진 한영이었지만 골목 귀퉁이에서 모서리가 뭉툭해진 바람처럼 마음을 가다듬었다.


“동하야. 그럼 내가 먼저 할게. 그러니깐 간단 소리 하지 마라. 알았나?”


육교 중간에 서 있던 한영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를 기다렸다. 지칠 줄도 모르는 바람은


가파른 계단을 더욱 거세게 밟고 올라왔다. 인파가 잠잠해지자 더욱 거세진 바람이 마지막 일행을 계단 아래로 밀어내자 한영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눈을 감자 스쳐 지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마치 심장을 밟아 누르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밀려오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육교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주 한복판에 던져져 자전하는 행성처럼, 어렸을 때 다리를 뽑으며 가지고 놀던 벌레가 된 것 같았다. 손아귀에 잡혀 발악하던 벌레, 아무리 몸부림쳐 본들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에 결박된 생, 한영은 그 올가미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시간이 움푹 파인 웅덩이 속으로 가끔 땡그랑 소리를 내며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영은 그 소리가 가슴을 할퀴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현기증은 더해갔다. 한 방울의 눈물은 눈에서가 아니라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솟구쳤다. 너무나 낯선 자신의 모습, 하늘나라에서 무슨 죄를 짓고 쫓겨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낮엔 육교 근처 오락실에서 오락하며 추위를 피했고, 밤에는 지하상가로 들어가 추위와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며 잠을 청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한영은 아버지와 같은 방에서 잠자는 것보단 났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그들은 정확히 한 달 반이 조금 넘어, 경찰 아저씨에게 잡혔다. 형별이 기다리는 집으로 소환되자 태한은 대야에 물을 한가득 받아놓고 한영을 홀딱 벗겼다. 물속에 한영의 머리를 거꾸로 처박는 태한의 손은 마치 야수의 것 같았다.


“아버지 살려 주세요! 잘 못 했습니다.”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물속에서 머리가 꺼내어질 때마다 한영은 날숨 대신 그 말을 재빨리 뱉었다.


“이 새끼야! 네가 엄마를 잡아먹은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에, 숨 쉴 수 없는 고통보다, 차가운 물이 머리를 으스러트릴 듯 조이는 고통보다, 태한의 그 말이 거대한 창이 되어 갈비뼈 구석구석에 박히는 고통을 참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일까? 나는 어찌하여 이런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을까?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을까? 콧속에 들어간 물이 머리를 으깨는 고통과 함께 맴돌았다. 어느 순간 한영은 발버둥 치지 않고 대야를 잡고 버티던 팔목의 힘을 풀었다. 당황한 태한이 한영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그날 한영은 죽지 못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숱한 나날을 떠올리며 이불속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겨울바람이 골목 귀퉁이를 긁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벽을 긁는 소리가 한영의 가슴도 긁었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들키면 또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영은 이불에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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