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다롱이 만만세 12부
“와! 킁킁”
“아이고 녀석들아 좀 천천히 가자 아빠 힘들다.”
우리는 다른 녀석들이 나무 밑동이며 전봇대 밑동에 새겨 놓은 메시지를 코로 읽으며 나아갔어요.
“어라 여기는 불만이 가득하다네, 오라 여기는 뭐가 그리 좋은지 긍정 냄새가 잔뜩 나네.”
다롱 오빠는 금방 그 뜻도 해석해 냈어요.
“오빠는 그걸 어떻게 다 알아?”
“너도 언젠간 알게 될 거다. 냄새가 다 달라.”
오랜만에 산책은 너무나 흥분되었어요. 다롱 오빠와 저는 목줄을 잡은 아빠를 도리어 당겼어요. 숨쉬기가 힘들어 혀를 축 늘어뜨렸지만, 아빠는 바닥을 질질 끌며 우리를 잘 따라왔어요. 덕분에 우리 발톱도 한동안 소지를 안 해도 될 듯했어요.
“와우 저게 다 뭐야”
공원엔 그동안 못 보던 꽃들과 싱싱한 사람들이 만발해 있었어요.
“킁킁”
“아롱아 냄새 좋아? 그건 벚꽃이라는 거야.”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 꽃처럼 화사한 사람들과 다르게 나무 그림자 같은 표정을 지었어요.
“이렇게 금방 질 거면서 그렇게 처절하게 피웠구나. 노력이, 이런 화사함이 다 무슨 소용이람 시들하게 지지 않는 건 허무와 고달픔 뿐일 텐데.”
아빠가 목줄을 당기며 저쪽으로 가자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날 태한은 전에 없던 모습으로 한영에게 물었다.
“한영아 오늘 뭐 하고 싶어? 자전거 타로 갈래?”
“미선이는 자전거를 못 타잖아요.”
바짝 긴장한 한영이 바라본 여동생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럼 우리 미선이는 어디 가고 싶어?”
"바다."
“그럼 우리 거제항에 가자.”
택시를 타고 거제항에 닿자 태한은 낚시용품 점에 들러 일회용 낚시를 사다가 한영에게 주었다.
바다가 뒤척일 때마다 짠 내음이 한영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영의 내밀한 곳에도 떨쳐낼 수 없는 짠 내음이 딱딱하게 굳은 형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응축된 질량이 세월에 비례하며 녹아내리기 전까지는, 한 차원 넘어 자신의 슬픔이 다가 아닌 만인의 슬픔을 볼 수 있는 심미안이 뜨이기까지 한영은 부둣가를 때리는 파도의 나날을 견뎌야 할 것이다.
부둣가엔 여객선이 떠 있었다. 한영은 바다가 출렁이는 이유가 무거운 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수평선 너머에서 한 척의 배가 부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영은 그 여객선 안에 엄마가 앉아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 버스 타고 안 가고 맨날 배 타고 부산으로 먼저 가는 거야?”
“아직 경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단다.”
직행 없는 생, 시절과 시절의 경유지를 지나 수많은 이별 끝에 닿을 수 있는 곳이 생의 종착지란 걸 태한은 알지 못했다.
“엄마 우리 그럼 하늘나라로 가자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해?”
“하늘나라로 바로 갈 수 없단다. 이 삶을 오롯이 완수한 자들만이 그곳에 들 수 있단다.”
어쩌면 하루하루 살아 내야 할 세상은 배를 타고 부산을 거쳤듯,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경유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영은 어렴풋이 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한영은 순년의 손을 잡고 경주로 가기 위해 여객선을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순년은 평소 장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와서 내려놓으며 한숨을 쉴 때 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하지만 한영은 아버지의 그늘을 피해 엄마와 외갓집에 가는 것이 마냥 신나기만 했다.
“엄마, 이 고기들은 왜 쉬지 못하는 거야?”
한영이 순년의 가슴에 귀를 대자, 등 검은 심해어들이 유영하는 소리가 났다.
“응 집을 찾고 있는 중이란다.”
순년의 세월 귀퉁이에 드리운 염전에선 짙은 짠 내음이 진동했다. 태한이 드리운 먹빛 그림자를 먹고 자란 등 까만 심해어들은 여전히 집을 찾지 못했는지 순년의 하루를 뒤척였다. 어느 날 한영이 수평선 너머엔 뭐가 있냐고 묻자 순년은 외갓집이 있다고 했다. 한때 소녀였던 엄마가 코를 흘리고 있었고, 엄마의 엄마가, 엄마의 손을 잡고 송아지 여물을 주고 있었고, 힘이 아버지보다도 센 엄마의 오빠도 있었다.
한 번은 외갓집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한영이 엄마를 잡고 저 바다를 건너가지 말자고 했다. 그것도 아니면 외삼촌에게 일러 주자 했다. 하지만 순년은 그때마다 한영을 달래며 심해어의 집을 찾아 줘야 한다고 했다.
어느 날 태한이 술 취해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던 한영은 다락방 문을 꼭꼭 잠그고 깊이 잠이 들었다. 오래지 않아 한영은 더 이상 파도치지 않는 적막의 무게에 진 눌려 잠이 깼다. 부랴부랴 항구로 달려갔을 땐 엄마가 출항한 뒤였다. 수평선은 너무나 아득한 세월 저편에 있어서 엄마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루를 기다리고, 일 년을 기다려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옛날 사람들은 밤하늘의 북극성을 보고 바다에서 길을 찾았다는 걸 배우고 나서야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북극성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한영은 지렁이를 바늘에 끼워 바닷물에 던졌다. 미선이는 제 오빠의 행동 하나하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고기 잡았나?”
“아뇨. 한 마리도 안 물어요.”
부두 옆 포장마차로 갔다가 돌아온 태한에게서 진동한 알코올 냄새를 바다의 짠 내음이 이기지 못했다.
“한영아. 낚시 좀 있다가 하고 이리 와 봐.”
태한은 따라 들어간 곳엔 회와 술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태한은 회 한 점을 집어 한영의 입 가까이 내밀었다. 한영이 회를 씹자 낯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뱉어내고 싶었지만 태한이 두려워 꿀꺽 삼켰다.
“그래 아빤 술 한 잔 더 할 거니까. 너희들은 다시 가서 낚시나 해라.”
찌가 흔들리자 건져 올린 낚싯바늘엔 한영의 손바닥보다 조그만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파닥이고 있었다. 한영은 물고기를 조심스럽게 바늘에서 분리하려고 했지만 서툰 손이 물고기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전에도 친구들과 낚시를 하다 잡은 고기를 매번 놓아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바늘에서 분리한 물고기는 전처럼 파닥이지 않고 상처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다.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낸 한영은 금방 후회했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각인한 채 망망한 시간 속으로 던져진 운명, 심해어의 집을 찾아 줘야 한다며 늘 한영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던 엄마, 그런 순연이었기에 한영은 이번에도 엄마가 돌아올 거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부두에 닿은 여객선이 사람들을 다 부려놓고 가벼워져 붕 떠오를 때까지도 그녀의 지느러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