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김준한
두꺼워진 세월을 펼쳐 날짜를 넘기면
숨 쉬지 않는 순간들이 박제되어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약속된 문법과 이론은
또다시 뒤바뀔 세상의 질서일 뿐
나의 규칙이 될 수 없었다
타인의 삶을 베낀 필사본이었다면
진정한 일기가 될 수 없었겠지
같은 궤도를 도는 행성들은 얼마나 지루할까
서로 닮은 부리로 같은 이론을 읊조리는 앵무새들 보편이란 중력을 벗어나 너와 다른 생각을 했기에 캄캄한 우주에 던져진 듯 막막했다
하루 이틀 건너뛴 여백처럼 주제를 잃고 사라진 시절인연
의지할 밑줄 없이 삐뚤삐뚤 걸어온 길
구겨진 모서리처럼 초라하지만
아직 써 내려가지 않은 날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정 고독한 생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