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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들의 홍어는 파닥일까?

by 김준한

브런치 저작권 공모 응모작 <산문>

아직도 그들의 홍어는 파닥일까?/김준한


스무 살 시절 나아가면 나아간 만큼 멀어지는 수평선처럼, 나의 꿈과 짝사랑하던 그녀는 더욱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때문에 나의 가슴은 그해 여름보다 뜨거웠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문창과나 국문학과를 나왔다. 대부분의 당선작은 같은 먹이를 먹으며 자란 양식어처럼 유행하는 시류의 결 때문에 신선한 맛이 나지 않았다.


내 시가 어느 유명한 시와 비슷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물에 지느러미를 다친 물고기처럼 자존심이 상했다. 나만의 삶, 나만의 시로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남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망망한 바다에 홀로 던져져 닿을 수없는 수평선을 향해 고달픈 노를 젓는 일이었다.


자신의 구체적 삶을 형상화하지 않은 채 누구나 했던 생각,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감정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진부한 시들은 자신만의 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강의실이 아닌 흑산도 홍어잡이 어선을 탔다.


9살 적 내 여린 흔들림을 잡아주던 엄마가 떠나고부터 나는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사춘기를 지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이성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한 여자의 마음을 얻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세상에 홀로 던져진 나는 나침반을 잃은 한 척의 어선이 되어 망망한 시간 위에 흔들리고 있었다. 많은 사유와 내일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내 심연을 때렸다. 주낙 바늘을 손질하고 홍어잡이 어선의 일과가 끝나고 나면 시집을 들고 캄캄한 뱃머리 위에 누웠다. 바다처럼 광활한 하늘에는 촘촘하게 닻을 내린 별들이 출렁이고 있었다. 처음 나의 습작 시들 또한 교과서를 옮겨 놓은 듯한 보편적 관념이나 아포리즘 같은 것들이었다. 싱싱한 자기 삶이 없는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와 자신도 모르게 습득된 지식으로 쓰인 글이 과연 자신만의 저작권을 가질 수 있을까? 어차피 우리 글이란 건 세종대왕이 만들어 누구나 쓰라고 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글을 가지고 어떻게 나만의 창조물을 만들 수 있을까? 남과 같은 생각을 하고 보편적이 틀 안에서 누구나 흉내 내는 말을 그대로 읊조린다면 새장 안의 앵무새와 무엇 다를까? 나만의 사유로 쓴 외로움 그리움을 쓰고 싶었다. 단순히 외롭다는 본능에서 출발한 사유가 아닌 더 큰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에 묻고 또 물었다. 그리하여 나는 미끼 없이 던져지는 주낙처럼 가진 것 없이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은 이성을 유혹할 미끼가 있었지만 나는 날카롭게 갈아낸 바늘 끝 그 자체로 던져진 맨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움의 모서리를 더욱 날카롭게 가는 것뿐이었다. 이별은 바늘 끝 휘어지고 뭉툭해진 아픔을 바로 펴서 다시 망망한 시간 속에 던져지는 일이었다. 내 시의 열정은 먹고살아야 하는 노동 속에서 등을 벌겋게 태우는 어선 위의 작업과 같았다.


바다 깊은 어둠 속에서 건져 올려 파닥이던 물고기들, 나는 한평생 수평선 너머를 향해 우직하게 항해하며 싱싱한 월척의 시어들을 낚아 올렸다. 이제 나는 그것들로 회도 치고 매운탕도 끓이고 여러 가지 조리를 한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맛을 내기 위해, 내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시를 쓴다. 나는 그 음식들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꿈을 꾼다.


출렁이던 바다의 사유를 펴며 돌아오던 그해 만선, 아직도 그들의 홍어는 파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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