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5부
중학교 3학년 한영은 그토록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던 아버지와의 연을 끊었다. 세상엔 전화위복이란 말이 정말 있는 모양이었다. 이성계에게 위화도 회군이 있었다면, 그날 한영에겐 아버지와 연을 끊을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너 옷 벗어! 활딱 벗어 새끼야!”
술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씹어 삼켰는지 잔뜩 술에 취해 들어온 태한의 입에선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한영은 아버지에게 한 대라도 덜 맞으려고 얼른 옷을 벗었다.
“지금 당장 지게 지고 나무 해와! 안 해 오면 넌 죽는다!”
제 덩치만 한 지게를 걸치고 신작로로 나온 한영의 모습은 마치 지게가 한영을 맨 것 같았다. 생살을 씹어 삼키는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영은 담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동태를 살폈다. 한영이 자신의 슬픔을 씹는 사이 날 선 바람은 생살을 씹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단단해졌다. 하지만 식지 않는 한영의 심장은 더욱 크게 요동쳤다. 이대로 죽기는 억울했다. 한영은 기필코 살아남아 보상받고 싶었다. 창호지 위에 비치던 방안의 움직임이 사라지자 살결 위에 돋아난 감각의 세포들이 다시 날을 세웠다. 이때다 싶었던 한영은 슬그머니 작은 방으로 들어가 낡은 옷장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온 한영은 그 길로 줄행랑을 쳐서 어치 고개를 밤새도록 걸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고모 집에 도착했다.
“저 거지새끼는 왜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저러고 있는 거냐?”
“어머니 그냥 모른 척하소.”
삶의 전용도로 어딘가 뚝 끊겨버려 내일로 갈 길이 막막해진 한영은 딱 삼 년만 훌쩍 뛰어넘었으면 하고 바랐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삼 년을 버텨보자는 생각도 했지만,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내신 등급이 가장 낮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3년 치 장학금은 보장되었지만, 고모 댁의 눈치에 3년을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한영은 서울행 기차에 오르기로 했다.
운명에 저당 잡힌 채 길바닥에 구겨져 버려진 종잇조각처럼 얼마나 더 남은 이 허방의 세월을 굴러야 하는 걸까? 버스를 타고 교회로 오는 동안 한영은 도롯가에 있는 집 한 채를 힐끔 쳐다보더니 몸을 버스 벽 쪽으로 바짝 웅크렸다. 탈출했던 그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정거장을 버스가 그냥 지나가길 바랐지만, 한영의 기대와 다르게 버스는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장독대 하나가 뚜껑을 잃고는 입구를 벌리고 있었다. 그나마 마당 가에 서 있는 감나무 세 그루가 그 집의 치부를 가리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파리가 다 떨어진 초라한 자태라서 그 노력은 헛수고였다. 이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 집의 술주정뱅이 아들이 제 마누라를 두들겨 패서 마누라가 도망갔고, 제 아버지를 구타하고, 제 어머니를 괴롭히며, 그 자식의 자식 놈이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누구는 혹시 그 아비가 자식도 죽여 어디 묻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할 지경이었다. 마당 위에서도 버스 안이 훤히 보였다. 한영은 혹시라도 방에서 나온 아버지와 눈이 마주칠까 봐 버스가 정지하여 몇 명의 늙은 여자들이 내리는 동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버스는 지옥 같았던 그 동네를 다시 출발해 세 정류장을 더 경유한 다음 한영을 내려놓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한영의 눈에 반짝이는 십자가가 보였다. 그루터기 위론 섬진강을 핥은 바람이 끝낼 수 없는 여정이 남아있다는 듯 한영의 볼을 쓰다듬으며 스쳐 갔다.
“한영아 힘을 내라. 하나님은 아무 이유 없이 고통을 주지 않는단다.”
저녁을 먹고 왔다는 데도 이 목사는 한사코 한영에게 저녁상을 내주었다. 차린 게 별로 없는 밥상이었지만 한영은 맛있게 먹었다. 식사 전 이 목사가 기도했지만, 한영은 눈을 감는 시늉만 했다.
“목사님 하나님이 진정 존재하시긴 한 걸까요?”
한영은 다시금 예전에 했던 생각을 했다. 무수히 많은 감이 바람에 못 이기고 떨어져 마당을 어지럽히던 계절, 주렁주렁 달린 감과 떨어진 감, 그 두 가지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시험 문항이었다면야 연필을 굴려 아무거나 찍어도 되었지만, 보기 없는 주관식 그 문제의 정답을 쓰지 못한 채 흘러온 오늘, 한영은 여전히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왜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살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도대체 내가 무얼 잘 못 했기에 하나님은 이토록 잔인한 삶을 내게 주신단 말인가? 그 어떤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한영을 더욱더 답답하게 했다.
“한영아 지금이라도 목회의 길을 가지 않겠니? 내가 도와주마.”
“아뇨 목사님 전 그렇게 살지 못할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도 많고, 그리고 그렇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겠어요? 아픔을 모르는 자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자가 어떻게 만인을 위로하는 글을 쓰겠어요.”
시답지 않았지만, 주보에도 시를 냈던 한영이었다. 이 목사는 시인이 되겠다고 말하던 한영에게서 아직은 설익고, 마음 가득한 치기를 엿보았지만, 진정성도 보았다. 삐뚤어질 만도 했건만,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로 나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 또래 아이들에게선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순간 울컥해진 이 목사는 가슴이 아려왔다. 목회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힘든 적도 많았지만, 그 힘든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믿음과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시의 텃새에 밀려 이곳 촌 동네로 와 터를 잡은 지도 벌써 10년, 대학을 나와 정통 목사가 되어 목회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었기에 협회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시골 사람들의 헌금 또한 풍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소아마비로 태어난 둘째를 보듬어 안았을 때 이 목사는 울부짖었다. 정말 하나님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 목사는 하나님을 놓지 않았다. 하나님을 부인한다면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이 너무나 헛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골에 처박힌 이름 없는 목사, 이 목사는 협회의 공인된 목사가 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다. 큰 부흥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첫째 딸 소영이와 소아마비 아들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전 아름다운 시인이 될 거예요.”
차라리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했더라면 덜 아팠으리라. 과연 한영은 시인의 길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을까? 돌아서는 한영에게 이 목사는 준비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우리 한영이를 믿는다. 어디서 무엇을 하던 믿음 잃지 말고. 우리 한영이를 위해 기도 많이 해 줄게.”
그래 세상아 이 한 몸 깡그리 으스러져 주마! 세상아 나는 절대 패배자는 되지 않을 거다. 반드시 인생의 승자가 되어 내 오늘을 보상받을 것이다! 기차에 오르던 그날 밤 한영은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기차는 익숙했던 풍경으로부터 점차 멀어졌다. 한영은 순간에 스쳐 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과거의 기억들도 현재로부터 멀어지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상처는 한영이 그렸던 모래 그림처럼 너무나 짙은 색채여서 그 어떤 풍화에도 퇴색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한영은 이 목사가 건네주었던 봉투를 열었다. 몇만 원의 여비에 눈길이 먼저 가닿았지만 곧이어 네모나게 접은 편지에 뭔가 답이 있을 것 같은 기대에 부풀었다.
한영에게.
한영아 생각보다 하루는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단다. 그러니 그 하루 때문에 휘청거리지 말아라. 먼 미래를 준비하며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라. 너도 알다시피 모세가 어떠하였더냐. 노예가 된 히브리 사람들을 탈출시키고 광야에서 40년이나 되는 세월을 유랑하지 않았더냐. 다윗은 어떠하였더냐. 그는 형제 중에 제일 막내로 장차 아버지에게 재산도 자신이 생명을 걸고 지키던 양도, 물려받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에 절망하지 않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따르지 않더냐? 그리하여 하나님은 다윗을 어디에 어떻게 쓰셨는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영아 세상엔 제각각 운명을 타고난단다. 제 운명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 수 없어, 인간은 방황하지만 믿음 생활 열심히 하고 기도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영이 오셔서 큰 깨달음을 주실 것이다. 하긴 스스로 무엇이 되고자 결심한 너는 자체의 운명을 찾은 것 같기도 하더구나. 어쩌면 지금 네가 처한 상황들이 밑거름 될지도 모르겠구나. 아니 사실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그렇다. 누구보다 명랑하고 개구쟁이였던 너를 나는 어여삐 보아왔다. 넌 운명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네게 주어진 그 운명을 이기고 끝끝내 일어서는 날,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필요한 일꾼으로 쓰일 것이다. 가끔 힘이 들거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도에서 나사를 다 풀어 버려도 괜찮다. 그러나 다음엔 반드시 풀린 나사를 전보다 더 꽉 조여라. 너를 위해 기도 많이 하마. 기죽지 말고, 힘내고 굳세게 살 거라.
<다음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서울역, 서울역입니다.>
막 한강을 건너는 기차 안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자 한영은 세상에 홀로 떨어진 공포를 실감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회전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빙빙 돌며 안과 밖을 오가는 회전문처럼 한 걸음도 옮겨 놓지 못한 한영의 기억이 뒤로도 앞으로도 움직이지 못한 채 망상과 현실의 경계에 꽉 끼어 있었다.
그동안의 아픔은 감이 명함 한 장도 내밀 수 없었다. 역사를 빠져나오자 생면부지의 생들이 반드시 닿을 곳이 있다는 듯, 어둠을 직선으로 밀고 있었다. 하지만 한영은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시곗바늘처럼 역 주위를 한동안 배회했다. 저 많은 사람은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저 사람들과 나는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왜 이다지도 깊이 살아있어야 하는 걸까? 외롭다는 것은 한영에게 더는 싸구려 감성 같은 혼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서 맛보며 견뎌야 했던 그 폭력을 한 차원 뛰어넘은 공포였다. 우주의 한가운데 던져진 듯 막막함이 밀려오자 한영은 또다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숨 쉬고 있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가슴을 훑고 지나는 바람은 매서웠다. 냉동실 안에서 결빙되자 무거워진 물병처럼 출렁이던 마음이 어느새 응고되어 더없이 가누기 힘든 몸이 되었지만, 이를 악문 한영은 천천히 어둠을 관통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