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6부

by 김준한

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6부


“족보도 없는 것들이 쪽수로 덤비네”

“오빠 방금 제가 뭐라는 거야.”

“족보라고 하는데 족보가 뭐지?”

“글쎄 잠깐만 냄새를 맡아서 의미를 알아볼게. 킁킁”

“아니 이 미친개가 어디다 혀를 날름거려!”

“가만있어 봐. 넌 이름이 뭐냐? 어라! 너도 아롱이랑 같은 암컷이구나. 킁킁.”

“저리 안 꺼져 이게 어디서 자꾸 핥아!”

“음 냄새 좋은걸.”

“이런 썅!”


다롱오빠가 몰티즈 녀석에게 치근 대자 결국 녀석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어요.


“아이고 귀여워라. 몇 살이에요?”

“아 네 이제 한 살이에요.”

“혼자 두 마리나 키우는 거예요?”

“아 네.”

“와 대단하시네요. 저는 이 녀석 한 마리도 벅찬데.”


여자는 자신의 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요.”

“호호 알면서 내숭은요.”

“그러게요. 너무 놀라서 그랬죠. 와! 이건 필시 인연이 아닐까요?”


아까까지만 해도 하얗게 돌아온 아빠의 얼굴이 다시 저녁노을처럼 붉어졌어요.


“인연이라 인연은 인연이죠. 호호 스쳐 가는 인연요.”

“뭐 어차피 다 스쳐 가는걸요. 우리 삶도 그냥 한 번 흘러가는 건데요 뭘.”


당돌하던 여자의 이마에 갑자기 햇살에 마른 벤치처럼 실금이 갔어요. 하지만 몰티즈 녀석은 여전히 당돌했어요.


“오빠! 그 녀석 그만 핥고 어서 말해봐. 족보가 뭐래?”

“응. 이름 있는 집안의 고귀한 태생이란다.”

“헉 그럼 우리는?”

“우리는 글쎄”

“글쎄 뭐?”


저는 답답했어요. 스스로 똑똑하다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꼬리를 세우던 오빠가 왜 갑자기 꼬리를 내리는 걸까요?


“좋은 말 할 때 저리 꺼져라. 냄새난다. 도대체 너희들은 목욕을 언제 한 거냐?”


여자가 쓰다듬자 몰티즈 녀석은 더욱 기세등등했어요.


“이런 너만 성깔 있냐? 이게 진짜!”


저는 참고 있던 화가 복받쳐 올라왔어요. 엊그제 심장 사상충 주사를 맞았는데 갑자기 호흡이 가빠오는 것이 아무래도 주사를 잘못 맞은 건 아닐까요? 어쩐지 너무 따끔한 것이 이상했어요.


“아롱아 니가 참아라. 너 그러다 심장사상충 도질라.”



새벽 5시의 어둠은 어제보다 짙고, 그 어둠 속에 들어찬 냉기는 조밀했다. 한영의 걸음 또한 차가운 밀도를 밀어내느라 더뎠다. 허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눈이 충혈되어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골목 귀퉁이에 놓인 쓰레기봉투를 뒤지다가 인기척에 놀라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한영이 용역 사무실에 도착하자 소장이 연탄불을 갈고 있었다. 제일 일찍 나온 권갑 아저씨는 소파에 앉아 스포츠 토토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영은 난로 옆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앉았다. 순간 티브이에서 들려온 뉴스 때문에, 한영의 가슴은 따뜻해지기는커녕 전보다 더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뉴스의 내용은 이십 대 부부가 네 살짜리 친자식을 때려죽였다는 거였다.


“왜 사형 제도를 없앴는지 모르겠어. 저런 놈들 국민 세금으로 아무 일도 안 하고 그저 편하게 감방 생활을 시키다니 거참.”


소장은 혀를 찼고 한영은 그렇게 말하는 권갑 아저씨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한영은 티이브를 보다가 문득 자신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그 가혹했던 폭력의 나날을 어떻게 견뎌,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가에 대하여.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한영은 한때 죽음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슬픔도, 고통도, 영혼을 갈가리 찢어 놓는 이별도, 찢어진 영혼을 태우는 그리움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하고도 영원한 세계. 11살 때 한영은 불에 타 죽어가던 할아버지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었다. 낯선 죽음 앞에서 어리둥절했을 뿐,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한영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던 생과, 심장이 꺼지고 있던 죽음과의 거리는 고작 오 미터 남짓이었다. 그 짧은 거리 앞에서 아가리를 쫙 벌린 불기둥은 어린 날 보았던, 개구리를 통째 삼키던 뱀의 모습으로 할아버지를 삼키고 있었다. 그날 한영은 그동안 막연히 떠올리곤 했던 죽음의 실체를 또렷이 목격했다. 하지만 한영은 아직 죽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공포를 실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일 년 후, 마당 위에 떨어져 나뒹굴던 작은 감들을 통해서 죽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해마다 마당을 스쳐 가던 태풍이 이제 겨우 형체를 드러낸 감들을 마당 위로 털어놓을 때면, 매번 눈물이 났다. 떨어져 마당 위에 흩어진 감과, 다행히 살아남아 익어갈 감과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도대체 무슨 공식이 있을까? 떨어진 감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던진 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어느 날, 300명이 넘는 그 핏덩이들이 바닷속에 수장되어야 할 이유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그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이 버젓이 살아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아있는 이유 또한 그 어디서 찾을 수 없었다. 생과 죽음의 공식은 그 어떤 책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한영은 조금 전 소장이 길가에 내놓은 연탄을 바라보았다. 생을 송두리째 다 태운 몸, 깊이 파인 세월 속으로 슬픔이 관통해 들어오듯, 연탄구멍 속으로 끝이 날카로운 바람이 관통하고 있었다. 난로 안에서 온몸을 태우는 연탄, 한영은 아직 살아있는 이유 또한 태워야 할 그 무엇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기에 아직 세상에 쓸모 있는 몸을, 그 아무리 변덕이 심한 신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거두어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소장이 배정해 준 일터로 가기 위해 권갑 아저씨와 한영은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들이 도착한 버스정류장엔 이 동네 사람들의 게으름을 확인시켜 주듯 아직 한 사람도 나와 있지 않았다. 전봇대 위엔 강아지를 애타게 찾는다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종이는 위쪽으로 삼분의 일만 붙어있었다. 때문에 나머지 삼분의 이는 그들의 삶만큼이나 가녀린 모습으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살아내야 할 숙제만큼이나 어렵고 지루했던 한영이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자네 술도 끊었다면서, 그럼 이참에 담배도 끊지 그러나.”


권갑 아저씨는 아직도 걷히지 않아 두꺼운 어둠 한 겹을 지우며 말했다.


“이거까지 끊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요. 폐암으로 죽으나 담배 못 피워 스트레스로 죽으나 매한가진 걸요.”


한영은 최대한 깊이 연기를 삼켰다. 빈속이어서 그런지 담배 연기는 속 쓰린 불쾌감을 주며 맴돌았다. 그리고 다시 용역 사무실에서 본 그 뉴스가 떠올랐다. 오늘 하루도 살아남기 위해 날라야 하는 차디찬 철근의 무게가 한영의 등을 누르는 것 같았다.


“아롱이 다롱이 사료는 많이 주고 나왔어?”

“네 당연하죠.”


그들이 오른 버스에 빈자리는 없었다. 좌석은 반수면 상태의 무거운 몸을 끙끙거리며 버티고 있었다. 생면부지의 이 많은 사람들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 운이 좋아 좌초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 그들이 건너온 바다에도 내가 건너온 바다만큼이나 깊고,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만한 풍랑이 있었을까? 더러는 가 닿지 못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지쳐가고 있지는 않을까? 한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현장 부근에 다 왔는지 권갑 아저씨가 한영의 어깨를 툭툭 쳤다. 버스는 그들을 역 부근에 부려놓았다. 현장까지 한 5분 정도 걸었을 뿐인데, 그들의 어깨엔 마치 5년 치의 추위가 미리 와서 쌓인 것 같았다.


“자네들은 오늘 이 철근만 날라 주면 되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일 시작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아있었건만 중국인 작업반장은 작업 지시를 하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이젠 노가다 판에서 조차도 중국사람 말을 들어야 한다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그게 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그렇지.”


권갑 아저씨가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는 눈빛으로 한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러다가 이 노가다판 오야지들이 전부 중국 놈으로 바뀌면 그땐 어떻게 되는 건지.”


한영은 오늘 철근을 옮겨 놓아야 할 저편을 바라보았다. 한영은 그 바닥의 넓이를 어렴풋이 계산하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할 철근의 양을 가늠해 보았다.


“아저씨 오늘은 그리 무리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권갑 아저씨는 자기도 이미 파악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방금 작업반장이 들어간 컨테이너를 바라보았다. 둘은 인부들이 둘러 서 있던 모닥불 옆으로 다가갔다. 한영은 호주머니에서 두 손과 함께 빼낸, 빈약한 삶의 한쪽 모서리를 그들 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꼬나물었다.


“올겨울은 전보다 더 춥겠어.”


인부 한 명이 벌써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네 손이 왜 그런가?”


홀로 짊어지고 와야 했던 삶의 무게와 감이 비교할 수 없는 철근 다발, 그 옆에 서 있던 권갑 아저씨가 말했다.


“제 손이 왜요?”


한영은 새것이어서 아직 고생을 몰라, 오만한 듯 빳빳한 장갑을 부드러워지라고 비비면서 말했다.


“아니 얼마나 일을 거칠게 했으면 손등이 그래? 장갑 끼고 일하지 않나?”


한영은 그제야 권갑 아저씨가 손등에 난 여러 개의 흉터를 보고하는 말임을 알아챘다. 순간, 한영은 가슴이 아려온 이유가 모닥불에서 멀어지자 다시 엄습한 추위 때문인지, 기억하기 싫은 지난날의 일이 떠올라서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것들이 시들지 않게 잘 보관해야 내일 다시 내다 팔 수 있어.”


돌담에 쌓인 어둠 위로 귀뚜라미 소리가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 밤의 허공은 마치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순년이 막 부엌에 내려놓은 대야 속에는 다행히 시들지 않고 하루를 버틴 채소들이 있었다. 치열했던 하루에 못 이겨 시들해진 것들도 있었다.


“엄마 이것 봐. 내 목덜미 좀. 까칠한 느낌이 싫어 죽겠어.”

“어 우리 한영이 머리 깎았네.”

“응 낮에 아빠가 깎아줬어. 그런데 따가워서 미치겠어.”

“뭐가?”

“목덜미가 너무 따가워. 자꾸 짧은 머리가 따끔하게 누르는 것 같아.”


한영은 인상을 구기며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글쎄, 엄마가 보기엔 괜찮은데.”

“아냐! 엄마! 뭔가 잘못되었어. 엄마가 다시 한번 손질 좀 해줘.”

“아무렇지도 않다니깐. 조금만 참아봐. 괜히 또 아빠한테 혼날라.”

“따가워 죽겠단 말이야!”


한영은 징징거리며 엄마를 닦달했다.


“뒤에 끝부분을 좀 더 다듬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지금 내 목이 따끔거린단 말이야.”


그때였다. 한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이닥친 태한이 냅다 한영이 들고 있던 가위를 빼앗아 들었다. 큼직한 손으로 한영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어디서 술을 잔뜩 마셨는지 얼굴이 붉게 변해있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갑자기 거세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이 새끼 방금 뭐라고 했노? 또 징징거려 봐라.”

“아버지! 다시는 안 그럴게요.”

“뭐 잘라 달라고? 그래, 오냐 잘라 줄게.”


곧이어 태한이 든 가위가 한영의 손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보 제발 그만하소! 제발!”

“이 예편 내가 지금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가위는 아가리를 크게 벌린 야수의 송곳니 같았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가위 날이 한영의 왼손 새끼손가락 윗부분을 베어 물자 선혈이 흘러내렸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마냥 그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한영이었다. 피 맛을 맛본 야수는 전보다 더욱더 뜨거운 탐욕에 사로잡혀 한영의 손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한영의 손은, 오른손 왼손 할 거 없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한영은 문밖을 바라보았다. 문밖에 짙게 드리운 어둠은 마치 두꺼운 천막 같았다. 무조건 살아남고 보자 하는 생각이 솟구치는 피처럼 마음을 휘감았다. 한영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순간 자기보다 덩치가 배나 크고 무거운 태한을 밀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 새끼 거기 안 서나!”


한영의 등 뒤에선 촘촘한 그물망이 좁혀 오고 있었다. 술 취한 태한은 어둠 때문에 골목을 더듬었다. 한영은 캄캄한 어둠을 빌어 골목과 골목을 요리조리 헤쳐나갔다. 짙은 허공의 질량을 헤집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다. 피와 땀이 섞인 액이 한영의 몸에서 흘러내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뒤에서 조여오던 그물망이 보이지 않았다. 한영은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폈다. 비로소 죽음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한영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가위에 만신창이가 된 손으로 눈물을 닦자 손등이 쓰라렸다.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났을까?”


한영은 울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는 슬픔이 계속해서 솟구쳐 올라왔다. 밤의 공기가 차가워지자 한영은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뿌리 박힌 돌멩이들이 한영의 발에 걷어차였다.


“그래 지금쯤이면 잠이 들었을 거야. 술이 좀 취해서 미친 거지. 내일 아침이면 또 술이 깨여 오늘처럼 날뛰진 않을 거야. 그렇게 항상 그랬으니까.”


어둠이 칡넝쿨처럼 휘감은 대문 앞에 도착하자 집안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한영은 집 뒤 돌담 아래로 숨어들었다.


“한영아! 한영아!”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보! 나 여기 있는데.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나를 부르면 어떡해.”


누구에게도 크게 소리 낼 수 없는 혼잣말을 한영은 담벼락에 새겼다.


“한영아! 한영아! 어디 있니?”


순년의 흐느끼는 소리가 전보다 더 차가워진 바람 따라 한영의 귓불을 할퀴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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