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7부

by 김준한

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7부



한영이 잠에서 깨자 목덜미를 비비던 다롱이가 입술을 핥았다. 한영은 다롱이의 뜨거운 혀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식지 않은 부부가 있어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이렇듯 뜨거운 뽀뽀를 할까? 매일 아침 또다시 세상에 홀로 떨어진 고독을 물리쳐 주는 녀석들이 고마웠지만, 가슴 한구석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세상에서 자신이 전부인 순수한 사랑을 주는 강아지들에게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한영은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녀석들 앞에서는 더욱 밝은 모습으로 행동했다.


“아이고 우리 아롱이도 일어났어?”


왼쪽 옆구리에서 잠이 깬 아롱이가 한영의 가슴을 더듬어 올라와 볼을 핥았다. 보일러가 고장 난 지도 한참, 외풍이 심한 낡은 옥탑방 안으로 냉기가 밤도둑처럼 스며들었지만, 한영은 아롱이 다롱이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히 이 겨울을 버틸 만했다.


“에잇 큰일이네”


밤새 얼어붙은 수도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도꼭지를 잠갔다가 다시 풀어 보았으나 물이 나올 리 없었다. 한영은 엊그제 옥탑방 옆의 여인숙에서 고독사했다던 용역 인부가 떠올랐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얼어붙고 있었다. 소통할 수 없는 슬픔, 울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서로에게 흐르지 않는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콸콸 넘치던 정이 막혀버린 지 오래였다.

옥탑방 아래 미용실을 하는 집주인도 월세 날이 밀리면 가끔 문자나 할 뿐 한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 밖이었다.


“아니 삼촌 제발 다른데 이사 가면 안 돼요? 나 이러다가 송장 치르겠어! 그럼, 여기 누가 이사를 오겠어? 여러 사람 피해 주지 말고 살기 싫으면 그 개들 데리고 저 산속에나 가. 아이고 내 팔자야. 사람 한번 잘못 들여 이런 마음고생을 해야 하다니.”


밖에 있던 욕실 문 손잡이를 잡은 것뿐인데 손보다 먼저, 겨울에 일이 없어 빈둥거리며 낮술에 취한 한영을 보며 가슴을 후벼 팠던 아주머니의 말이 다시 가슴 시리게 했다.


“어라 아롱이 아까도 응아 했잖아!”


한영이 씻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오자 다롱이 보다 덩치가 배나 작은 아롱이가 패드 위에 설사하고 있었다. 생전 그런 일어 없던 아롱이었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염소 똥처럼 딱딱한 녀석들의 변을 맨손으로 치우지 않았던가.


“어제 따로 먹인 것도 없는데. 아롱이 왜 이러지? 배탈 난 건가?”


한영은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아롱이를 껴안았다. 왠지 모르게 눈이 촉촉하게 젖은 아롱이를 보며 가슴이 아려왔다.


“아롱아! 괜찮을 거야.”


한영은 스마트 폰을 들고 용역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무슨 일이야?”

“갑자기 아롱이가 아파요. 설사를 막 하고 아무래도 병원 한 번 가봐야겠어요.”

“알았어.”


며칠 일이 없던 터라 한영을 위해 특별히 오늘 한 건 잡아 놓은 거였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한영은 소장에게 전에 없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의사가 아롱이를 대리석 위에 놓자 녀석은 제 앞에 서 있는 한영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꼬리 쳤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흔들림, 꼬리가 스친 허공이 파르르 떨렸다. 곧이어 수의사가 납작 엎드린 아롱이 항문에 면봉을 쑤셔 넣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한영의 가슴팍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드는 아롱이, 순간 가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한영이 쏟은 눈물은 아롱이가 대리석 위에 찔끔하고 흘린 오줌보다 굵었다. 아롱이는 그 순간 차디찬 바닥에 놓인 한영이 원망스러웠을까? 어린 날 엄마가 아픔 속에서 구출해 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의 폭행이 이어질 때마다 엄마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던 자신처럼, 어쩌면 아롱이 또한 이 순간 세상에 유일한 단 하나 자신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영은 생각했다. 그동안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 그 아픔과 외로움을 이 가녀린 생명과 진정 교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정 사랑이 있을까? 진정 자기희생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렇게 죽지 못해 결혼한 부부들이 이혼하고 살아가면서 싸우고 끝내 원수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건 서로의 에고 때문이다. 버릴 수 없는 개인의 자존감, 누구나 홀로 우뚝 서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외로움은 견디지 못해 서로를 의지하는 그 모순, 인간은 그 얼마나 옹졸한가. 물론 다롱이나 아롱이도 자존감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손톱을 깎이려고 할 때마다 으르렁거린 다롱이, 산책을 그만하고 집에 가자고 목줄을 당겨도 앞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던 아롱이. 저희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며 으르렁거릴 땐 어떻게 그렇게 사람과 닮았는지. 한영은 그런 녀석들을 보며 웃음이 나면서도 진정 녀석들이 사람을 닮을까 봐 씁쓸했다.



“급성 장염이네요.”


변이 묻은 면봉을 휴지통에 버린 수의사가 말했다.


“네! 갑자기 왜?”

“어린 강아지들의 경우 치사율이 높아요.”

“어떻게 방법이 없나요?”

“우선 주사 맞고 삼일 치 약을 지어 줄게요.”

“그럼 완치되나요?”


한영은 호주머니 속의 지폐를 만지작 거리며 물었다.


“확률은 반반이에요.”

“아롱이가 죽을 수도 있단 말인가요?”

“세상에 만병통치는 없으니까요.”


한영은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의사는 마치 자기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 후는 어떤 원망도 하지 말라는 듯 보험을 들고 있는 듯했다. 한영은 남은 돈으로 소주 한 병과 담배 한 갑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장님 내일은 꼭 나갈게요. 일 꼭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한영은 병원에서처럼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녁이 되자 옥탑방의 시간은 전보다 더 조밀한 밀도로 얼어붙고 있었다. 한영은 그 시간 속에 결박되지 않으려고 연신 아롱이를 살피며 따뜻한 체온을 나누었다. 신기하게도 다롱이는 아롱이 곁으로 오지 않았다. 한영은 그것이 참 신기했다. 어떻게 저리 사람과 같을까? 사람들은 좋을 땐 서로가 한없지만 싫어지면 돌아설 명분을 만들었다. 주위에 흔들리고 아픈 사람들이 있다면 곁을 지키기보단 거기에 얽혀서 피곤해질까 봐 돌아서기 일쑤였다. 누군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돈을 안 받을 것을 생각하고 빌려주는 사람보단 돈을 돌려받지 못할 거란 생각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것이 어찌 사랑이고 우정일까? 사랑이란 인내하며 나의 손해를 감수하는 것임을 모른 채 계산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사람들, 한영이 한 달 동안 한쪽 방을 빽빽이 채운 술병들처럼 많았다.


“아롱아. 아직도 아픈 거야? 다롱이 이 녀석 왜 그리 도망가는데? 이리 안 와 아롱이 핥아 줘야지.”


패드에 설사하고 온 아롱이가 한영의 볼을 핥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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