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9부
어둠 깊이 쌓인 거리엔 인파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술이 한잔 두 잔 들어갈수록 한영의 짧았던 시절 곳곳엔, 이별을 대나무 매듭처럼 새긴 수많은 인연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아영 씨 500한 잔만 더 주세요.”
오늘도 일이 끝나기 무섭게 집 근처 투다리 호프집을 찾은 한영이었다. 안주로 시켜 놓은 훈제 닭다리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또다시 신춘문예의 고배를 마시고 비틀거리던 하루를 더듬던 그날, 투다리 호프집 앞을 지나다 캄캄한 한영의 가슴에 별빛처럼 훅 들어온 아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닿을 수 없는 먼 하늘의 별과 같았다. 한영에겐 모든 것이 그랬다. 9살 떠난 엄마도 그랬고 20대 시절 짝사랑했던 여자 친구들 또한 그러했다. 끝끝내 잡지 못한 15번째 신춘문예, 마지막으로 한번 더 투고해보자고 벌이도 좋아 5년 동안 열심히 했던 비계발판 기술직을 정리하고 고시원으로 들어오지 않았던가. 피시방에 앉아 매일 글을 썼다. 돈이 떨어지면 일용직 용역 사무소에 나가 일을 구걸했다. 한영을 모르는 타인들은 그를 비난했지만 한영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처절한 삶을 살고 있었다.
여전히 무르익지 않은 문예창작학과 제자들을 뽑는 문단의 관행, 객관적 상관 물을 빗댄 은유가 아닌 그럴싸한 관념을 알아들을 수 없게 쓴 글들이 시류라는 유행을 타고 번져가고 있었다. 한영은 당선작들과 낙선된 자신의 글을 아무리 비교해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한영을 절망케 한 건 자신의 부족함이 아니라 대학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를 나와 문단의 교수나 명망 있는 비평가와 친분을 만들지 못하면 절대 당선이 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썩을 대로 썩은 세상, 하지만 한영은 가정환경 때문이 아니더라도 문예창작학과를 가지 못한 것에 단 한 번도 원망이나 후회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자신을 흑산도 홍어잡이 어선에 던진 것을 여전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책상다리 위에서 무슨 살아있는 글이 나올 수 있을까? 삶의 치열한 사유 없는 관념들은 한영에게 흥미도 의미도 없었다. 그런 것들은 교과서에 수두룩한 글들이었으니까. 한영은 양식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물고기가 되기 싫었다. 탄탄하고 맛난 육질의 자연산이 되고 싶었다.
“아이고 지 아빠를 멀뚱멀뚱 보고 있는 건지 닭다리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건지. 호호 안 되겠어요. 다롱이 간식 좀 줘야겠어요.”
“앗 다롱아 너도 한잔할래?”
테이블 위를 말똥이 바라보고 있던 다롱이 앞에 한영이 술잔을 들이밀며 농담을 했다. 다롱이는 정말로 한영이 주는 술을 핥으려는 듯 관심을 보이며 꼬리를 흔들었다.
“어이구 술은 삼촌만 드시고 다롱이는 손님이 남긴 한치 좀 줄게요. 양념하지 않은 거라 괜찮을 거예요.”
술기운 탓이었을까 테이블 조명에 비친 그녀의 날씬한 몸매에 적당히 볼륨감 있는 가슴이 실루엣처럼 번졌다.
“그런데 매일 이렇게 다롱이 데리고 다니면 어떻게요?”
그녀가 막 주방에서 한치를 가지고 오자 냄새를 먼저 먹은 다롱이가 그녀를 향해 꼬리 쳤다.
“제 심장이라 어쩔 수 없어요.”
손님 접대하는 음식점에 개를 데리고 오는 게 거슬렸던 아영이 그렇게 돌려서 말했지만, 한영은 눈치도 벌컥 들이킨 상태였다.
"다롱아 이리 와 한치 줄게."
한영은 그녀를 따라 정문으로 나가는 다롱이가 서운하기보단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녀석은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호프집에서도 사람이 주는 간식만 받아먹고 쓰다듬으려고 손을 내밀면 회피한 채 쪼르르 다시 한영 곁으로 다가왔으니까.
"다롱아 이리 와봐."
아영이 간식 하나를 주고 다롱이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역시나 다롱이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그녀가 들고 있던 나머지 한치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와 녀석 완전 여우네. 이 녀석 절대 아무도 못 꼬시겠어요. 아빠 말고는 곁을 안 주는구나."
한영은 그런 다롱이와 아롱이가 든든했다. 홀로 버려진 이 세상에 유일한 가족, 퇴근하면 언제나 자신을 반기는 유일한 생명이 아니었던가.
"아영 씨 한 잔 더 주세요."
다롱이와 놀고 있던 그녀를 바라보자 한영의 가슴에 갈증이 일었다. 금방이라도 가슴이 쫙쫙 갈라져 찢어 질듯 아려 왔다. 스무 살 시절 나아가면 나아간 만큼 멀어지는 수평선처럼 한영의 꿈과 짝사랑했던 여자들은 더욱 아득해지기만 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의 가슴은 한여름 들판의 이파리보다 더 바짝 타들어 갔다. 누군가 한영의 시를 보며 어느 유명한 시와 비슷하다는 소리를 했을 땐 그물에 지느러미를 다친 물고기처럼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의 구체적 삶을 형상화하지 않은 채 누구나 했던 생각,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감정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진부한 시들은 자신만의 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한영은 강의실이 아닌 흑산도 홍어잡이 어선을 탔다. 그해 여름보다 뜨거웠던 한영의 청춘, 세상에 홀로 던져진 한영은 나침반을 잃은 한 척의 어선이 되어 망망한 시간 위에서 흔들렸다. 많은 사유와 내일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의 심연을 때렸다. 주낙 바늘을 손질하고 홍어잡이 어선의 일과가 끝나고 나면 닿을 수 없는 수평선 위에 짙어지는 망망한 그리움, 한영은 흔들리는 뱃머리에 누워 가슴속 따갑게 빛나는 외로움을 밤하늘에 촘촘히 박았다. 한영은 자신만의 사유로 쓴 그리움을 쓰고 싶었다. 단순히 외롭다는 본능에서 출발한 사유가 아닌 더 큰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다.
한영은 미끼 없이 던져지는 주낙처럼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자신을 많이도 원망했다. 친구들은 이성을 유혹할 미끼와 좋은 부모가 있었지만 그는 날카롭게 갈아낸 바늘 끝 그 자체로 던져진 주낙처럼 아무것도 없는 몸이었다. 한영이 할 수 있는 것은 열정과 그리움의 모서리를 더욱 날카롭게 가는 것뿐이었다. 세상을 떠도느라 잦았던 이별은 바늘 끝 휘어지고 뭉툭해진 아픔을 바로 펴서 다시 망망한 시간 속에 던져지는 일이었다. 이십 대 시절 주낙처럼 끝 날카로운 사유를 던져 걷어 올린 싱싱한 월척의 시어들, 한영은 그것들로 회도 치고 매운탕도 끓이고 여러 가지 시의 맛을 냈다. 물론 그의 시를 알아주는 문우들과 은사들도 더러 있었지만, 문단의 소포 라이트를 받고 싶었던 한영에게 그들의 칭찬은 갈증을 풀어 줄 수 없었다. 그의 꿈은 아직 아무도 닿지 못한 저 먼 수평선에 있었다. 한영은 그 수평선에 최초로 닿고 싶었다. 하지만 과정에도 도달하지 못한 절망감은 그의 생을 끝내 쓰러트리고 말았다. 벌써 수년째 알코올 중독, 죽지 못해 사는 한영을 웃게 한 건 아롱이 다롱이였다.
“다롱아 다롱아”
맥주를 마신 한영이 안주를 집어 드는 대신 다롱이를 불렀다. 하지만 그의 곁으로 다가와 흔드는 꼬리가 없었다.
"다롱아 다롱아"
정문을 바라보며 다시 다롱이를 불렀지만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 다롱, 순간 한영의 몽롱했던 정신이 부러진 쇠의 단면처럼 거칠어졌다.
“아니 우리 다롱이 못 봤어요?”
“방금 제가 입구에서 간식 주고 슈퍼 갔다 왔는데 다롱이 없어졌어요?”
“아 이 새끼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다롱이 똘똘하니깐 혹시 집에 가버린 거 아닐까요?”
"아니 다롱아 다롱아 어디 간 거야?"
울먹인 한영의 목소리 방금까지 마신 맥주가 모두 눈으로 흘러나올 태세였다.
"어머 삼촌 우는 거예요! 세상에 집에 한 번 가봐요. 분명 있을 거예요."
한영이 투다리 집을 나오자 가로등 하나가 희미한 골목 귀퉁이를 힘겹게 깜박이고 있었다. 한영은 몽롱한 정신을 바로 잡아 구부러진 골목길을 직선으로 펴며 옥탑방으로 향했다.
“헉 다롱이 이 녀석”
한영은 계단 위에서 꼬리 치며 반기는 다롱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다롱아 어이구 집에 와 있었구나. 똑똑한 것. 다음부턴 아빠 버리면 안 돼 이 녀석아”
함께 꼬리 치는 아롱이와 다롱이를 껴안자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랐다. 한영의 가슴에 안긴 아롱이와 다롱이가 그의 눈물을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