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21부

by 김준한

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21부



“저 진단서 끊었어요.”


순간 수분을 잃으며 실금 더해 가는 몰탈 바닥처럼 가슴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 건 후덥지근한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 미친 새끼가 어디서 수작을 부리네! 너 지금 나 간 보는 거냐?”


“대화가 안 될 것 같으면 저 경찰서 갈까요?”


“이 새끼 봐라.”


한영의 손바닥은 아직도 동규의 찰진 뺨의 촉감을 기억했다. 그 손바닥에 다른 촉감은 전혀 없었다. 아니 한영은 그날 분명 마구 자비로 싸 젖히는 사격이 아닌 정조준한 총구처럼 동규의 뺨을 정확하게 내리쳤다.


“인마 뺨 한 대 때렸는데, 뭐 코뼈가 부러졌다고? 내 손바닥이 네 코에 닿은 적 없어 자식아! 어디서 이 새끼가 개수작을, 어이가 없네.”


투다리 집에서의 사건 후 며칠 되지 않아 동규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을 때 한영은 어처구니없는 마음에 그를 무시했다. 하늘과 땅을 가로막은 허공처럼 팽창한 불신과 오해로 서로 닿을 수 없는 마음, 그러나 동규와 한영 사이 팽팽하던 경계를 조금씩 무너트리기 시작한 건 다음 날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한영이었다.


“안녕하세요 평택 지청입니다. 김동규 씨라고 아시죠?”


“네 그런데 무슨 일이죠”


“네 그분이 상해 진단서를 제출하셨네요. 조사를 위해 서로 한 번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전 내내 먹구름 낀 하늘이 오후가 되어서 결국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키던 허공이 마침내 한영의 마음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다롱아! 비 구경 한 번 해볼래?”


한영은 다롱이를 들어 창문 틈 위에 올렸다. 눈이 동그래진 다롱이는 금방 적응한 건지 옥탑방 아래로 지나는 사람들과 먼 풍경을 주시했다. 아롱이도 들어서 창틀에 앉히려 했지만, 몸부림치며 밖을 보지 않고 한영의 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 건너 스탠드 바에서는 벌써 영업을 계시한 건지 익숙한 유행가가 바람을 타고 밀려와 옥탑방을 기웃거렸다.


“다롱아. 느낌이 어때?”


한영은 젖은 바람이 볼을 쓰다듬는 느낌이 싫지 않았다. 다롱이가 이갈이 하느라 마구 뜯어서 뭉툭해진 싱크대 모서리처럼 한영의 뾰족했던 시절도 모서리가 뭉툭해진 탓인지 누군가 심한 말을 해도 쉬이 고개를 쳐드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동규에게 날카로운 모서리를 들이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월월”

“다롱아 왜 또 시비니?”


옥탑방 아래 우산도 없는 행인에게 시비하는 다롱이. 한영이 출근하고 나면 시장통에 있는 옥탑방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다롱이 아롱이였지만 일반 주택가도 아니었고, 아파트나 원룸이 아닌 독채였으므로 누구도 한영에게 시비 걸지 않았다.


아롱아. 추워?”


금방 이불을 파헤친 아롱이 고개만 내놓고 한영을 바라보았다.


“어이구 아롱이 이제 따뜻해?”


어찌하여 따뜻한 추억은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어찌하여 깊이 파인 시절의 웅덩이마다 슬픈 기억들만 출렁이는 것일까? 한영의 가슴속에 스미는 옛 기억들은 모두 젖어있었다. 그래도 진부하고 무미건조한 일상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한영도 한때는 죽은 고목처럼 감성이 말라비틀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오로지 주식 그래프만 눈에 보이던 시절, 비가 와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길바닥에 주검이 된 고양이를 봐도 생명이 꺼져가는 체온을 느낄 수 없었다. 하루하루 사는 일이 죽어가는 것이란 걸 망각한 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망에 눈이 어두웠던 한때가 한영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공장 생활하며 모은 수천만 원의 돈을 잃고 배우고 얻은 것은 너무나 값진 것들이었다. 세상엔 먹고사는 일에 빠져 감성도 잃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진정한 의미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차를 사니 자신도 차를 사야 하고 남들이 큰 집을 사니 자신도 사야 했다. 로봇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한영은 홀로 버려진 듯 고독했다. 사람들은 늘 순간에 지나는 것에 집착했고 가질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것들 때문에 고민했다. 한영은 다행히 그런 부류에서 색출된 것을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타인을 복사한 데칼코마니 같은 삶이라면 진정 살아있는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어라 다롱이도 이제 추워?”


습한 공기 때문에 추워서 떠는 건지 고소공포증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한영은 다롱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다롱아 뽀뽀.”


긴장했는지 몸이 뻣뻣이 굳은 다롱이를 바닥에 내리자 다롱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 치며 폴짝폴짝 뛰었다.


“다롱아 안돼 아까 먹었잖아.”


금방 싱크대 앞에서 까치발을 한 다롱이가 간식 봉지에서 나는 냄새를 코로 더듬었다.


“아이고 녀석아 그러다 배 터진다.”


마음과 반대로 간식을 든 손이 다롱이 아롱이에게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형님 50만 원만 가불 좀 해주세요. 엊그제 일 때문에 치료비라도 주면서 합의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영이 몰탈 사장에게 전화를 걸자 대오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빨리 받았다.


“그래 그 자씩 그거 완전 개새끼네. 어쩌겠니. 똥 밟았거니 생각하고 그냥 50 던져 주고 와라. 이번 주 일 내내 잡혀 있으니까. 그게 남는 거다. 일에 지장 생기면 안 되잖아.”


“네 형님 고맙습니다.”


굵어진 빗줄기가 한영의 텅 빈 마음속에 축축이 번졌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 누구와 소통할 수 없는 추억들이 바람처럼 떠돌았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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