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24부

by 김준한

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24부


“오늘은 왜 이리 물을 많이 탔노? 이거 질어서 양생 되려면 한참 걸리겠네.”


오른쪽 어깨에 자바라를 둘러맨 대오가 중지 끝이 흉터로 남은 왼손으로 담배를 꺼냈다. 처음 시멘트 믹서기에 손이 잘렸을 때, 잘린 손가락을 찾지도 않고 일부터 먼저 끝낸 대오였다. 손가락 마디를 찾아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죄송해요. 잠시 슬픈 기억이 났나 봐요.”


“우리야 상관없지만, 미장하는 소 씨 형님 날 새니 문제지. 물을 덜 타서 빨리 굳게 해 줬어야지.”


“그런데 솔직히 그렇게 하면 균열 많이 가잖아요. 수분을 오래 머금고 양생 돼야 금도 안 가고 튼튼한 강도가 나올 텐데 말이죠. 저 미군 부대 일할 때 콘크리트 양생 교육도 받았어요. 미군 부대는 완전 에프엠이거든요.”


슬픔 속에 휘청이며 쓰러지거나 슬픔을 극복하며 자신의 인생을 굳히지 못한 사람들은 제 인생에 균열을 내며 부러지기 일쑤였다. 나무들은 뜨거운 날 뒤 틀리지 않기 위해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려 충분한 수분을 흡수했다. 마음에 수분 한 방울 없는 사람들도 뒤틀린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영은 마르지 않는 감성과 사유가 지난 생을 적신 슬픔 때문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그 슬픔을 천천히 말리면서 보낸 세월, 한영은 스스로 적당히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왜 그는 복구하기 힘든 균열을 내고 말았을까? 술에 취했거나 아영이 때문이라고 하기엔 그리 쉽게 부러질 한영이 아니었다.


“한영아 우리 집에 오는 용역 단골에게 들은 건데. 예전에도 동규 싸움이 났었대. 그런데 그때 코뼈 다친 거로 합의 봤대.”


일이 끝나기 무섭게 한영은 또 한 마리 참새가 되어 방앗간을 찾았다.


“그럼 그 새끼 이미 상해 입은 진단서로 저한테 사기 친 거 내요?”


“응. 그런 것 같아.”


한영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날 감내해야 했던 모멸감과 수치심이 마그마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누님 제 말 맞죠? 저 그날 저 술 안 취했어요. 그놈 코 근처도 안 갔는데.”


한영은 이제야 막힌 하수구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 단골손님 알 수 없을까요?”


“기억났다. 영수라고 왜 꼬랑쥐 머리해서 염색 한.”


“아 그 형. 저도 알 것 같아요. 그 형 언제 오려나요? 오면 꼭 저한테 연락 줘요.”


“그래 만나서 확인하고 동규 불러다 삼자대면해.”


“네 그래야지요. 이 새끼 가만 안 둘 거예요.”


“아이고 다롱이 또 데리고 왔네. 데리고 오지 말라니깐 손님들 있는데.”


“아 죄송해요. 누님 또 깜박했네요.”


“그런데 귀엽긴 하다. 어째 저래 똘똘할까? 아빠 술 취하면 지가 부축해서 가니.”


“하하. 울 다롱이가 절 키운다니깐요. 그럼 오늘은 제일 비싼 칠면조 시킬게요.”


“오 다롱이 좋아하는 칠면조 뼈다귀 득탬하는 날이야?”


“누님도 가볍게 500 한 잔 드세요.”


“그런데 아영이는 바쁜가 봐요?”


“응 제주도 내려갔어.”


“거긴 왜요?”


“부동산, 왜 제주도에 중국인들이 땅을 많이 산데.”


“근데 그거 괜찮은가 봐요?”


“응 수수료 먹는 거니깐.”


“와 그럼 10억짜리 하나 성공하면 몇천 남는 거네요.”


“그러면 뭐 하니 실적이 없는데.”


“하루아침에 되나요. 노력해야죠.”


“에휴.”


“한숨은 왜 그리 쉬는 거예요?”


“아니 걱정돼서.”


“뭐가요?”


“다달이 활부금은.”


“?”


“아니 이왕 시작하는 거 고객들에게 이미지가 좋아야 하잖아. 그래서 차를 뽑아 줬어.”


“무슨 차요?”


“비엠더블유”


한영은 순간 미친! 하고 소리가 나올 뻔한 것을 삼켰다. 마신 맥주가 가슴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지난 세월을 적셨다.


“그 비싼 차를?”

“내가 반 내고 지가 다달이 활부금 갚는 걸로 했는데 지가 어디서 수익이 나오겠니?”


미끼 없이 뾰족하게 갈아낸 바늘 하나로 망망한 바다에 던져진 주낙처럼 자신을 뒷바라지해 줄 부모가 없었다는 것, 홀로 건너온 그 망망한 세월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홀로 삼키는 고독에 한영의 정신은 많이 몽롱해졌다.


“아영이는 평생 엄마에게 잘해야겠네요.”


아롱이 다롱이에게 주기 위해 살을 발라낸 칠면조 뼈다귀를 말속에 넣었는지 묵직해진 한영의 목소리였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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