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선물

by 김준한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선물/김준한


9살 적 그날 엄마가 피 묻은 옷을 부엌에 던져두고 사라졌을 때 맛본 이별은 내 감성의 혀가 느낄 수 없는 낯선 것이었다. 아버지가 곯아떨어진 사이 동생과 손을 잡고 오른 옥상 위에서 과자를 먹었다. 시야에서 사라진 엄마는 내게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것과 또 다른 공포를 주었다. 그날 나는 낯선 슬픔에 우는 것도, 동생을 위로하는 것도 아닌 단 하나 공포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와작, 와작 이빨에 잘근잘근 으깨지던 과자처럼, 그동안 아버지에게서 자주 맛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공포를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처음의 것들, 첫 이별, 첫맛, 첫 고통, 첫 환희, 첫 슬픔, 첫 분노, 첫 절망은 그 순간 느낌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첫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시간이 흐른 후 잊었다고 착각하는 순간 되살아났다. 며칠 지나 낚시 도구를 챙겨 거제 항에 나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수평선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처럼 망망했다. 생의 아가미를 옥죄던 아버지의 그물을 끊고 멀리 헤엄쳐간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다 벌리 수 없었던 나는 낚시 바늘이 찔린 물고기처럼 파닥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이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자 나는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부여받지 못한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하지만 저주가 내린 것이었을까? 나의 사랑은 늘 일방통행이었다. 내가 못난 것일까란 의문도 가져봤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잘나고 못난 것이 어떤 객관적인 것이 아니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제 눈에 안경이란 말처럼 인연이란 운명 같은 것이지 않았던가. 허긴 아버지 같은 사람이 여자를 만나 나를 낳은 것도 기적이니 나도 그런 기적이 생길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38 되던 해 직장을 그만두고 마지막 신춘문예를 위해 고시원에 들어간 나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었다. 몸 보다 가슴이 먼저 얼어붙었던 그날 또다시 신춘문예의 고배를 마신 나는 낮술에 취해 시장통을 걷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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