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가장 소중한 선물

by 김준한

녀석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질수록 나의 공포는 더욱 짙어졌다. 하루하루 수명이 줄어드는 시한부 생을 보듬고 매일 울었다. 오늘 하루 어제 보다 손해를 보아도 억울하지 않았다. 어제보다 이익을 보아도 즐겁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스쳐 지나가는 하루 따라 결국 남지 않는 허상이었으니까. 거세게 솟구쳤다가 이내 바닷속으로 잠잠해지는 파도처럼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는 녀석들과 나의 수명 앞에 부질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지난 추억을 떠올리면 그저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지난날 버림받지 않았던들, 부유했던 들, 뜨거운 사랑이 나를 허락했던 들, 결국 지난 오늘 없는 건 매한가지. 늙고 병들어 초라한 수많은 인생 선배들을 보면 그저 안타까웠다. 저 여자는 젊은 날 그렇게 도도 했겠지. 저 남자는 잘 나가던 시절 그렇게 오만했겠지? 초라한 삶을 살아낸 나나 그들이나 텅 빈 정적 위에 홀로 서야 하는 건 같은데 우린 뭐가 다르다고 그렇게 왼쪽 신발과 오른쪽 신발처럼 먼저 나가려고 평생을 옥신각신 했을까? 끝내 문지방을 건너온 신발처럼 우리는 죽음의 문턱에서야 나란히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죽어가는 녀석들은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사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미를 빼면 세상은 그저 한 폭의 그림일 뿐 우리의 행동은 그저 물리적인 반응일 뿐이 아닌가? 그런 것을 깨우치자 천국과 지옥도, 선과 악도 없는 것이란 걸 알았다. 우리는 그저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바람이 불어 나무기둥을 부러트린다고 그것을 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 나라의 군대가 타국에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승리하여 돌아오면 그것을 선이라고 환호하는 그 웃긴 모습은 또 어떠한가? 야한 여자를 두 남자가 쳐다봤을 뿐인데 한 남자에게는 성추행이 된다. 그냥 물리적인 터치일 뿐인데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폭력이냐 애무냐가 결정된다. 결국 삶의 행복도 불행도 개인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 걸. 생존의 본질은 단순하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먹고 자고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사치일 뿐이다. 그러니 그 사치에 따라 마음 흔들려 스스로 불행하다 행복하다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죽음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음은 삶의 부정이 아니라 긍정인 것이다. 삶의 성숙은 바로 그 죽음을 제대로 알고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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