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탕에서 온탕에 처음 들어갈 때는 낯선 열기를 크게 느끼지만 이내 그 온도에 적응하며 진부한 일상처럼 무감해진다. 처음부터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그 가정의 소중함을 잊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가정을 가지기 위해 처절한 자에게 그 가정은 얼마나 감사한 무엇이 되겠는가. 늘 새롭다는 것은 낯선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부한 일상에 무료하거나 나태해지지 않는 것이란 걸. 나는 10년 넘게 애기들을 안고 자면서도 늘 새롭고 처음인 듯 감사하다. 욕망을 채우며 행복한 게 쉬울까? 욕망을 버리며 행복해지는 것이 쉬울까? 우리들은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 불행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녀석들과 살면서 조금씩 내 외로움은 보름달이 그믐달로 변해가듯 깎여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끔 외로울 때면 녀석들 앞에 내 마음을 들킬까 조마조마했고 미안해졌다. 녀석들은 한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데 내가 부족하다고 여긴다면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아롱이다롱이와 만든 나의 가정. 나는 매일매일 눈물겹게 감사했다.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거미가 하루 종일 허공에 얽었던 정적을 꼬리로 거두며 내게 안기는 녀석들. 가계에 들러 녀석들의 간식을 사는 것은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녀석들이 가끔 이불에 실수해도 짜증 내지 않았다. 그건 물리적 현상이고 또 물리적으로 빨면 그만이었으니깐. 중요한 건 우리의 마음을 서로 다치게 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정신을 지배하는 자들은 절대 물질과 물리적 현상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10여 년 동안 이사를 5번이나 했다. 녀석들이 자라면서 인기척에 예민하게 짖는 소리가 커져서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고시원을 나와 처음 3년 정도 살았던 옥탑방은 다롱이가 물어뜯어 망가트린 벽 때문에 수리비를 보증금과 바꾸고 나왔다. 나는 그런 다롱이가 건강해서 도리어 감사했다. 수컷인 다롱이는 숙맥 같은 암컷 아롱이에 비해 영특했다. 녀석도 고집이 있어 싫은 건 거부했다. 지금도 신기한 건 두 녀석이 형제란 걸 아는 건지 교배를 하지 않는 거였다. 배달이라도 시켜 밥상을 펴면 다롱이는 언제나 턱을 괴고 음식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음식을 집어든 손이 자주 녀석들의 입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달픈 삶의 위로가 되고도 남았던 아롱이다롱이. 녀석들을 옆구리 끼고 잠이 들 때면 이대로 편안하게 잠들어 다음날 깨이지 않았으면 하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이 세상에 그런 죽음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