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자, 인도 가장자리에 쌓인 눈이 어둠처럼 무거워 보였다. 이별의 자리처럼 인적의 발길이 끊겨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는 곳에 더욱 두껍게 쌓인 눈. 뜨겁게 불타오르던 한때의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간 뒤, 더 이상 햇볕 들지 않던 내 응달진 세월의 귀퉁이에도, 이처럼 녹지 못해 차가운 기억들이 수북이 쌓여 있을 것이다.
“김 군! 오늘은 한 잔 하지 않을 텐가?”
“아저씨도 참, 저 술 끊었다니까요.”
“이 사람아, 지금 첫눈 오시지 않는가.”
오늘 하루 용역에서 함께 나가 철근을 나른 권갑 아저씨는 금세 고단했던 하루를 잊은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관통해야 할 이 겨울, 결빙의 시간들이 두려웠다.
“그럼 아저씨가 쏘는 거죠?”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까짓것 내가 쏠게.”
권갑 아저씨는 어깨 위에 내려앉은 눈을 툭툭 털며 말했다. 근처의 고기 집을 찾아 들어간 시장 통 골목 위엔 우레탄으로 된 투명 지붕이 덮여있었다. 그곳에 닿은 눈은 쌓이지 못하고 금방 녹아 없어지고 있었다. 오늘치의 고단했던 노동의 대가가 내일을 위해 쌓이지 못하고 오늘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금방 녹아내려 그 형체를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었다. 저렇듯 찰나의 시간 우리도 세상에 머물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건만 우리는 왜,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것일까? 어째서 사랑과 미움이 하나일 수 있단 말인가? 골목과 골목 사이를 가로막은 그 지붕 때문이었을까. 시장 통 안으론 형광등의 사정거리 안에 들지 않는 바닥과 귀퉁이 구석진 곳에 기댄 어둠만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을 뿐, 순백의 눈은 시장 통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김 군 한 잔 하자고.”
“아직 고기가 익으려면 멀었는걸요.”
“아따 언제 기다리나. 얼른 한 잔 하자고.”
나는 불판 위의 고기를 뒤집었다. 중심은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금방 고기의 가장자리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중심에 안주하지 못하고 늘 변두리를 떠 돌아야 했던 내 삶 또한 이처럼 시커멓게 타버렸을 것이다. 타는 고통에 절규해야 했던 나날들, 어쩌면 그것은 빨리 익혀 맛보고 싶었던 내 뜨거운 욕망이 키운 조바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때를 기다리며 천천히 익혀야 한다는 걸 절대 모르진 않았다. 참을 수 없는 내 허기진 청춘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들. 핏기가 가시지 않아 설익어 비릿한 내 육즙 때문에 등 돌려 떠난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잘 익어가고 있을까? 알콜기가 오르자 불현듯 아버지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에도 아이들이 늘 그러했듯, 중학생이 되어서도 아이들은 방학이 가까워져 오면 변함없이 들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방학이란 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당장 달려가 원망의 화살을 난사하고 싶었다. 만약 방학을 만든 그가 죽고 없다면 무덤까지 달려갈 것이다. 시체마저 백골이 되었다면 나는 그 무덤을 고슴도치로 만들고 싶었다.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는 그 시간이 내가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기에 그 시간을 앗아가는 방학이 나는 싫었던 것이다. 일요일은 교회에 가는 것이 행복한 일이었는데 그마저도 아버지에게 들키고 나면 예수님의 그 십자가 형벌보다 더 가혹한 아버지의 매타작을 당해내야 했다. 특히나 겨울방학은 안 그래도 형벌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내게 가중처벌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일찍이 겨울바람 속에는 송곳니가 돋아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겨울이 오면 언제나 그 바람이 나를 통째로 깨물었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되면 나는 앞에서는 아버지, 뒤에서는 겨울바람, 그 협공을 견뎌내느라 더 힘들었던 것이다. 프로야구가 개막되면 늘 해태를 응원하던 아버지는 겨울이 오면 늘 내 옆에서 그 겨울바람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번 겨울, 다행히 단 하나 위안이 되었던 건, 올 겨울이 내가 아버지 손아귀 속에 머무는 마지막이 될 거란 거였다. 자그마치 16년, 그 형벌의 감옥에서 풀려나 자유를 만끽할 날이 바로 코앞에 와 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 물론 중학교 육성회비 한번 내줘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나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해가 뜨지 않는 새벽 일찍 산을 오를 때부터 송곳니가 내 살을 파고들었지만 나는 그 고통을 절대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만약 아버지 앞에서 조금이라도 추워하는 티를 내면 아버지의 그 돌 직구 같은 주먹이 사정없이 내 면상을 향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낙엽들은 뜨거웠던 시절을 바스락이는 흔적으로 각인 한 채 바닥 위에 빈틈없이 흩어져 있었다. 제 고향을 떠날 수 없어 밤나무 아래를 뒹굴던 속 빈 밤송이들은 가을날 제 것을 모조리 빼앗긴 분노의 가시를 아직도 뾰족이 세우고 있었다. 때문에 부러진 나무 가지를 주워 모으던 나는 자주 그 가시의 따가운 응징을 감내해야 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밤송이는 강했고, 아버지로부터 해방을 꿈꾸고 있던 나는 약했으므로 패배는 나의 몫이었다. 물론, 패잔병의 초라한 자태 또한 아버지 앞에 절대 보여선 안 되었다.
오전이 오후를 밀어내자 그 자리에 해가 올라왔지만 산등에 숨어서 고개만 살짝 내민 채 아버지의 눈치만 보던 그 약아빠진 해는 내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원래 나무는 불이 잘 타는 마른 것만 해야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마르지 않은 생나무를 다발 속에 넣으면 무게가 가중되어 지게를 메는 것이 힘겨워졌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마른나무들만 주워 모았다. 아버지 앞에서 또 지게를 힘 있게 메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나를 위해 예비해 두었던 주먹질과 발길질을 부담스러운 선물로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권갑아저씨와 헤어지고 정문 앞에 닿자 며칠 전 내어 놓은 쓰레기봉투를 뒤지고 있던 길고양이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빼빼 마른 녀석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아쉬운 듯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담벼락 너머로 사라졌다. 참 영리한 녀석인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뻔히, 내가 잡을 수 없는 것이란 걸,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얼마나 많은 탐욕 앞에서 서성거렸던가. 내가 저 길고양이 보다 못한 어리석은 인간이라 생각하자니, 시리던 눈가가 금방 뜨거워졌다. 방에 들어서자 아무것도 줄게 없는데, 녀석들이 껑충껑충 내 가슴을 향해 뛰어올랐다. 녀석들이 없었을 땐 켜켜이 쌓인 어둠만이 나를 기다려, 그 어둠을 물리치느라 힘겨웠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둠이 주인 없는 방에 도둑처럼 들지 않도록 녀석들이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덩치가 암컷보다 두 배나 큰 수컷이 내가 진정시켜도 계속해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뭐가 그리 반가운지, 매일 지겹게 보고 함께 뒤엉켜 잠도 자면서 뭐가 그리 절실한지, 녀석 둘을 진정시켜 보듬자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어떻게 된 게 나이 들수록 눈물이 더 많아졌다. 이제 녀석들과 내게 남은 이승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 세월이 얼마나 짧은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부싯돌이 한 번 번쩍하는 그 찰나의 순간, 우리가 세상에 머무는 시간 또한 그 찰나인 것을. 나 보다 일찍 떠날 녀석들이라 생각하자니 너무나 서러워졌다. 떠나는 녀석들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다시 홀로 버려질 그 참담한 내일이 너무나 두려웠다. 참으로 괘씸한 녀석들이 아닐 수 없었다. 녀석들은 그것을 아는지, 그래서 미안해서 그런 건지, 계속해서 꼬리 치며 내 눈물을 핥아 주었다. 뜨거워진 내 심장은 마치 활화산처럼 피를 솟구치며 폭발할 것만 같았다.
강아지들이 인간보다 그렇게 짧은 생을 살다 가는 건 이미 인간보다 많은 것을 깨달아 알고 있기 때문이고 지극히 선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너무나 어리석기에 배우고 또 배워야 하므로 신께서 공부를 더 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래 남겨 두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하루빨리 내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배우는 일에 힘쓰며, 더욱 선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그러면 신께선 나를 홀로 세상에 버려두지 않으실 거고 나와 함께 아기들을 거두어 가실 것이라고. 내 삶은, 홀로 던져진 망망한 시간 위를 노 저어 가야 했던 항해의 연속이었다. 끝 보이지 않는 저 수평선 너머, 그곳엔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던 섬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수평선을 너머 온 해풍에 기대어 물어보아도, 기다리던 소식 없이, 오직 침묵 하나로 일관된 내일은, 내 청춘의 노를 지치고 녹슬게만 했다.
술기운 탓이었을까. 나는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졌다. 아직도 살아 계신지, 그것도 궁금했다.
마치, 거대한 칼자루를 움켜 쥔 어둠이 내 살결을 베어 물던 그해 겨울밤, 홀딱 벗겨 놓은 내게 나무를 해오라던 아버지로부터 탈출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 일찍이 인생의 단꿈에서 깨여 부질없고, 허망한 것에 마음 두지 않았으나, 갈수록 가중되는 고단함 앞에서는 초연할 수 없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한들, 하룻밤 꿈인 건 마찬가지, 내가 버텨 낸 그 물거품의 순간에 비길 수 없는 그 어떤 잔인한 생을 살았던들, 이 거대하고 오묘한 자연 앞에, 하찮은 먼지에 불과한 내가 그 무엇을 억울하다 불평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한 번 살아 본 목숨, 그 목숨 애초에 아버지의 씨로 잉태된 것이라 생각하자니, 가슴 한쪽,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처럼 시렸다. 지금 내가 죽는다 해도, 생은 절대 손해 볼 수 없는 장사라 본전은 이미 보장되어 있었던 것을.
“여보세요.” 목소리는 늙지도 않았는지 예전의 그 혐오스럽던 톤 그대로였다.
“아버지 건강하시죠?”
몇 번의 신호음 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순간 나는 왜 그렇게 나를 못 죽여 안달이었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내 입에선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요즘도 약주 많이 하세요?” 내가 다시 물었으나 아버지는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그 많던 추억은 도화지 위에서 털려나간 모래처럼 가벼웠지만, 어찌하여 내 어린 날의 상처는 초등학교에서 내가 처음 그렸던 모래그림처럼 더욱 또렷해지는 것일까.
“아버지!”
침묵을 깨고 내가 다시 아버지를 크게 불렀으나, 아버지의 그 완강했던 하루들 또한 기계톱에 의해 잘려나가고 민둥산이 되어 버렸는지,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치의 허기를 아직도 채우지 못한 아까의 그 고양이가 다시 왔는지, 그 어떤 세월의 풍화도 범접치 못할 내 심연 깊숙한 곳에 쓰레기봉투를 뒤적이는 소리가 눈과 함께 쌓이고 있었다.
“아롱아! 다롱아!”
아기들을 부르며 이불을 걷어 올리자 녀석들이 기다렸다는 듯 내 목과 가슴을 마구 파고들었다. 창밖엔 여전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과 영원하게 해 달라고, 내게 그 무엇도 주지 않아도 좋으니 아니,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도 좋으니 제발 녀석들만은 앗아가지 말아달라고 그동안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하나님께 빌었다. 어느새 뜨거워진 내 눈가를 핥는 녀석들의 따뜻하고도 까칠한 혀의 촉감이 오래도록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