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장 보기/김준한
한때 매일 먹는 쌀밥과 김치가 물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죽음을 간접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죽음은
더는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는 것, 더 이상 아이들과 놀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명절이라 맛있는 것을 먹자가 아니라
명절 동안 버티기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귀찮은 몸을 움직였다
이빨이 아프면서부터 먹는 것이 부담이 되어 버린 나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끼니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남았던 걸까
진열된 반찬들을 보자 마음은 앞서는데 아픈 이빨이 서성거렸다
먹고 싶은 건 끝도 없는데, 먹을 것이 없어지면 얼마나 슬플까
다행히 물리지 않던 삶도 점점 진부해지는 것
헤아릴 수 없는 반찬들처럼 세상이 아무리 넓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도 그것들에 집착하지 않는 욕망이 하나 둘 사라져 간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픈 이빨 쇠락하는 미각, 이제는 맛에 집착지 않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먹는 끼니처럼 그저 오늘 하루도 살아남기 위해 사랑한다
절망은 이제 더는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는 것 그리하여 절망할 수 없는 것이 절망이다
더는 황홀하지 않아 그저 번거롭게 해결해야 할 끼니가 되어버린 사랑
어쩔 수 없다 오늘도 버텨야 하니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