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무/김준한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그녀의 입술에 관절 없는 첫 혀를 내디뎠다 목 기슭을 지날 때 잠깐
허공을 박차고 날아가는 놀란 새의 날개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그녀는 숨기려 밝은 표정을 드리울수록 가슴골 안에 더욱 짙어지는 그림자를 알까
언덕 아래서 잠깐 숨을 고른다
참 다행이다 바람처럼 거친 사람들의 말이 바위를 깎았을 텐데 이렇게 모나지 않고 둥글게 자란 봉우리라서
가파른 경사를 올라 내려다보았을 때 숨죽인 냇물이 그녀의 눈가를 흐르고 있었다
햇살이 옅은 겨드랑이 숲을 더듬자 그녀가 거미줄처럼 뽑아낸 신음이 허공에 얽혔다 굴곡진 마른땅에 젖은 사연을 털어놓자 저 멀리 번지는 그녀의 메아리 움푹 파인 입구에 닿자 드넓게 펼쳐진 풀밭 나는 그곳을 헤치고 깊은 동굴 속으로 사정없이 내 달렸다
어둠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녀의 숨결은 동굴 벽을 타고 천천히 되돌아왔다 나는 더 이상 달리지 않고 손끝 없는 혀로 그 내부의 결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났다 그녀의 몸은 아주 미세하게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그 파문 위에 가만히 귀를 대듯 머물렀다 돌아갈 길을 잃은 채 처음 출발했던 입술의 자리조차 희미해질 때쯤 그녀의 세계와 나의 감각이
서로의 경계를 천천히 지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