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김준한
안을 밖으로 내어주며 닳아서 작아진 내 모습
분노를 눌러쓰다가 부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스스로를 깎으며 어제 보다 더 작아져야 했다
미움을 끄적였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받침을 고쳐 용서라고 쓰곤 했다
이제는 더 짧아질 수도 없어
세상이 놓아버린 나를
한 번쯤 다시 쥐어 줄 사람이 있을까
가끔은 책상 서랍 구석에서
지워지지 않은 문장들 사이로
내가 남긴 숨결이 묻어 나와 스스로를 위로했다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
키 크고 화려하고 풍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내어 주지 않는다는 걸
되려 상대의 것을 앗아 제 속을 채우면 모를까
그래서 나는 초라해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사라진 자리마다 누군가의 하루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고 그 문장들이 모여 오래 남는다는 걸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