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상서
사이다/김준한
냉장고 속 구속된 사이다를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어머니 모습
제 그늘 아래 흐트러졌던 청춘의 꽃잎은 어떻게 시들어갔을까요
애써 참았던 이 앙칼진 재채기 꾹꾹 눌러 쌓은 세월의 내벽 긁으며 나와 허공을 찢습니다
여름에는 개도 감기를 모른다는 말씀 이불 곁에 나란히 뉘이고 새벽녘 산 허리 캄캄한 어둠 비빈뒤 한병의 사이다를
제 머리맡에 가져놓으셨던 어머니
오늘처럼 비 오고 바람 세차게 부는 날이면 민둥산처럼 세월의 머리숱 뽑혀나가고 만신이 쑤시는 몸 이곳저곳 어디선가 비비고 계실지도 모를 어머니처럼
저 산 허리는 어머니가 멍들인 옛 상처가 되살아 나는지 경련을 일으켜 나무들을 세차게 흔들곤 한답니다
냉장고 속 사이다를 연이어 마셔도 도저히 식지 않는 이 열병은,
비단 그 맑은 새벽이슬 묻어나지 않는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