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오다리로 살았습니다.

by 달려보자go

초등학교 때 교내 작은 연못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3학년 정도로 기억이 나는데 아버지가 사진을 찍어주셨다.

하얀색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막대사탕을 손에 쥐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귀여운 꼬마 사진이구나” 할만한 평범한 사진이다.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아이고, 다리가 많이 휘었네.” 할지도 모른다.

무릎과 무릎 사이가 어른 주먹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벌어졌다.

’ 에이, 크면 괜찮아지겠구먼, 뭘…‘ 하기에는 정도가 심하다.

내가 문제를 인지한 것은 중학생이 되어서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가 하굣길에 말했다.

“야, 너 다리가 항아리 같아, 크큭”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말했다.

“내 다리 모양이 이상해!”

“왜 이렇게 다리가 휜 거야?”

“네가 어렸을 때 너무 많이 울어서 항상 업고 다녀서 그래.”

”얼마나 시끄럽게 울었는지, 네 아빠는 너를 갖다 버리라고 했어!. “

나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왜 나만 다리가 이렇게 병신같이 생긴 거야!‘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다리가 멀쩡했다.

’도대체 왜 나만 이런 거야……..‘

그때부터 가슴속에 원망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세상은 불만으로 가득 차버렸고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우울한 날들이 많아졌다.

길을 걷다 바람이 훅 하고 불면 다리 라인이 흉하게 드러났다.

뒤에서 누가 웃으면 다리를 보고 놀리는 것 같았다.

신호등을 건널 때는 남들이 먼저 지나가면 그제야 뒤를 따라 걸었다.

많은 사람 앞에 서야 하는 일이 있을 때면 병원에 입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수난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찾아왔다.

별명이 생겼다.

“휜 다 리”

그것이 나의 유일한 별명이었다.

너무나 직관적이어서 다른 별명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누군가 교정 수술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지만 다리뼈를 조각조각 내고 다시 붙여야 한다고 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가 나에게 전해졌다.

잠을 잘 때 벨트로 무릎을 묶고 자면 다리가 붙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간 해봤지만 일어나 보면 벨트만 덩그러니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될 리가 없잖아! 바보 같은…‘

이후에도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시도를 했지만 당연히 소용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사진을 보면 죄다 옆으로 서있었다.

그때부터 콤플렉스라는 악령이 나를 매일 쫓아다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뿐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시간은 흘러 군대에 입대했다.

병무청은 오다리도 군인이 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조금 어려움은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빼먹은 채.

육군 15사단에 배치됐다.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마지막 행사인 퇴소식을 준비했다.

강당에 모여 며칠간 연습을 했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열에 맞춰 정렬해야 하는데 다리가 붙지 않으면 멀리서도 구멍이 보인다.

조교가 내 전투화를 발로 차며 소리쳤다.

”다리에 힘줘!! 무릎 붙여! “

식은땀이 흘렀다.

‘젠장, 이미 쥐가 날 정도로 힘을 주고 있다고!!’

지옥 같은 퇴소식 준비가 며칠간 이어졌다.

‘내일도 조교가 가만 안 있을 텐데….’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다음날 강당에 다시 모였다.

역시나 조교들이 돌아다니면서 지적을 하고 다녔다.

조교가 가까이 다가왔다.

나를 잠시 힐끔 쳐다보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후훗, 성공했다!’

비장의 카드가 통했다.

무릎 안쪽에 휴지뭉치를 넣고 붕대를 감았다.

움푹 파인 무릎 안쪽이 깜쪽 같이 일자로 보였다.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오다리로 산지도 40년이 흘렀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적당히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체념하고 살았다.

길에서 다리가 많이 휘어진 할머니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려나.’ 하는 생각을 가끔 했다.

다행히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2019년 가을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하루는 아기띠를 하고 한 발로 스쿼트를 하는 무모한 짓을 했다.

당시에 탁구에 심취했었는데 육아로 탁구장에 가기가 힘들었다.

집에서 근력 운동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외발 스쿼트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무지한 행동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왼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좌식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통증으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정형외과를 찾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다리를 일자로 피는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귀를 의심했다.

치료를 위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하고 일주일 간 입원하고 재활하면 된다고 했다.

의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자주 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평생 오다리로 살았던 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병원을 나서며 일자 다리로 걷는 모습을 상상했다.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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