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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04.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8)

억울한 화학

    마법의 가루, 어머니 손맛의 비밀 감칠맛의 대명사인 MSG(monosodium glutamate)는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탐산의 나트륨염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아미노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특성은 단백질 섭취에 유리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여러 아미노산 중 글루탐산이 대표성을 가지는 것은 글루탐산이 단백질에서 비율이 가장 높은 아미노산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때, 화학조미료 또는 합성조미료라 불리며(사탕수수를 발효하여 얻어졌으므로 합성은 맞지만, 화학적 합성은 아니다) 한동안 위해성 논란이 있었다. 다른 아미노산이나 펩타이드도 강도는 다르지만, 일정 수준 감칠맛에 관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차이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깊은 맛과 관련 있을 수 있고, 영양 측면에서 버섯, 멸치 등의 사용이 좋을지 모르지만, 글루탐산 자체의 기원이 특별히 더 유해할 어떤 이유도 없다. 멸치나 버섯에서 우려낸 글루탐산과 발효한 글루탐산은 같은 글루탐산일 뿐이다. 다만, 글루탐산이 중추신경계에 흥분성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하기 때문에 혈중 농도의 상승이 혈액-뇌 장벽(BBB, Blood Brain Barrier)을 통과하는 양을 늘릴 만큼 과도하여 중추신경계의 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통상적인 양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그 위험성은 사용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기원과는 무관하다(물론, 고기를 많이 먹으면 난폭해진다는 속설이 글루타메이트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이런 오해는 합성 감미제인 사카린, 아스파탐 등의 위해성 논란과 함께 화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 왔다. 최근, 세계보건기구의 아스파탐 등 NSS(Non sugar sweetener, 비당류 감미제)이 장기적인 NSS의 섭취는 심혈관 질환과 당뇨와 관련 있을 수 있고 아스파탐은 발암성이 있을 수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NSS의 과도한 섭취가 심혈관 질환과 당뇨와의 관련성도 가능성이 있을 뿐이며, 아주 많이 먹으면 암 발생과 관련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발암성 자료도 명확한 근거는 없다. WHO 발표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NSS 섭취가 직접적으로 심혈관 질환과 당뇨와 연관성은 없지만, 과도한 감미제의 사용은 장기적으로 단맛에 둔감해져 당 섭취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도한 당 섭취는 혈당 조절에 문제를 일으켜, 대사증후군 고혈압, 당뇨, 암 등 만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NSS 섭취 자체가 암 유발 등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보다 훨씬 더 근거가 있다. 심지어 현재 40대 이하의 기대수명이 그 이전 세대보다 감소한다면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당섭취가 가장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합성되거나 화학 기술로 생산된 이런 물질들에 화학조미료, 화학감미제 등으로 불리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데는, 산업화 초기 새로운 물질이 합성되면서 독성학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용되며 문제를 일으켰던 몇몇 물질에 대한 경험과 사건과 모르는 것에 대한 위험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주요 원인으로 생각된다. 산업화를 거치며 수많은 화학공장은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었고, 화학무기, 농약, 의약품 등과 같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강력한 작용이 있는 물질을 만들어 낸 것과 난분해성 물질을 대량 생산하여 환경에 내보냄으로써 미세플라스틱, 난용성 PCB(polychorinated biphenyl) 등 환경문제를 일으켜 왔을지라도 현대 문명은 화학의 발전에 기여한 바 큰 것도 사실이다. 대량 생산, 대량소비를 통해 자연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였더라도 그 양이 적거나 불활성 상태나 저농도로 분포하여 항상성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던 물질의 농도를 높여 온 것은 화학 자체가 아니라, 인간 욕심과 이기심의 산물이다.

    독성학적 분류 체계 중 기원에 따른 분류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을 toxin(독소),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toxicant(독성물질)로 분류한다. 잘 알려진 toxin으로 복어 독으로 알려진 테트로도톡신, 보톡스로 널리 알려진 보툴리눔 독소, 진달래와 식물에 함유된 그레이아노톡신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부자의 독으로 알려진 아코니틴, 디기탈리스에 함유된 디곡신 등도 toxin의 범주에 들어간다. 폭넓게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은 모두 toxin의 범주에 들어간다. toxicant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은 물질을 인간이 합성한 것들로 농약, 약물, 플라스틱류 등이 포함된다. 이 분류 체계는 독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아무런 지표가 되지 않으며, 물질이 가지는 작용은 고유의 상호작용과 노출된 양, 개체의 특성에 따라 위해성이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며, 상황이나 평가하는 방법에 따라 유리하게 혹은 불리한 작용으로 평가될 뿐이다.

    생명체는 모두 하나의 화학공장이다. 그 공장들은 주변 환경, 다른 생명체와 상호작용하며 무수히 많은 화학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류는 그 물질의 종류를 다 알지 못하며, 인간과 어떤 상호작용을 가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는 오랜 세월 독성물질에 노출을 피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일정 수준의 노출에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 자연의 화학공장에서는 많은 종류의 물질이 만들어내며, 독성이 큰 물질이 있지만, 그 양이 적고 피할 수 있으며, 잘 분해되어 자연계 순환에 순응적이다. 반면, 인간이 만들어 낸 화학공장에서도 무수히 많은 물질이 만들어지고 있다. 대부분 어떤 물질인지 알고 있으며,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어떤 상호작용을 가졌는지 예측할 수 있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물질 특히, 분해가 잘 일어나지 않아 자연계와 생체에 지속적인 축적이 일어나는 물질을 만들어 자연으로 내보냄으로써, 새로운 상호작용으로 인해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에게도 실질적, 잠재적 위험이 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의 사용과 생산량을 통제하여 위험을 회피하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 낸 인간의 몫이다. 

    산업화 이전 인류는 자연이라는 화학공장에서 만들어진 물질과 상호작용을 통해 적응하고 순응하며 생존해 왔다. 산업화 이후 인류는 편의를 위해 화학공장을 만들어 왔으며, 화학은 자연의 원리일 뿐, 그것을 활용해서 문제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그러니 죄는 화학에 묻지 말고, 인류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산업, 약학, 의학, 생활 전반에 혜택과 편리함을 누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화학에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화학조미료, 화학 감미료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벗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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