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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22.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26)

위대한 조절자 칼슘

 일요일 아침 중고 흑백텔레비전인 데다 산골이라 전파도 약해 화질이 좋지 않지만, 은하철도 999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이면 텔레비전을 켠다. 유난히 화질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십중팔구 간밤에 심한 바람으로 방향이 틀어졌을 것이다.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안테나를 기억했던 방향으로 돌려놓고 들어왔다. 그만큼 은하철도 999 시청에 진심이었지만, 그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저 만화라는 것과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여자 주인공 메텔은 외설적이었다. 그래도 오랫동안,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 은하철도는 칼슘이 필요했지만, 그 행성에서 칼슘을 구할 수 없었고 철도 기장이 자신의 몸을 희생해 칼슘을 얻어 행성을 탈출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장의 희생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칼슘 때문이었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불리던 초등학교 시절, 실과 시간에 시금치와 칼슘이 많은 멸치는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이유가 궁금했던 탓이기도 했다. 성장에도 필요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칼슘을 못 먹느니 시금치를 안 먹는 편이 나을 텐데, 뽀빠이는 시금치를 먹어야 힘이 난다. 아무튼 칼슘과 시금치의 나쁜 조합은 그렇지 않아도 맛이 별로인 시금치를 잘 안 먹게 된 계기가 되었다.

  칼슘은 뼈의 구성성분으로서 뿐만 아니라 심장박동, 근육수축, 혈액 응고, 신경전달 및 세포 신호 전달 등 다양한 생리학적 생화학적 기능에 관여한다. 칼슘이 부족하면 근육 경련, 손가락의 마비 또는 이상감각, 비정상적인 심박수, 식욕 부진 등이 나타나고 과도하면 쇠약, 피로, 메스꺼움, 구토, 호흡 곤란, 흉통, 심박 이상, 두근거림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세포질의 칼슘 농도는 세포 밖보다 20,000~100,000배 낮으며, 소포체나 미토콘드리아도 칼슘 농도가 높다. 세포 내 저장소에서든 세포막에서든 특정 신호에 의한 칼슘 통로가 열리고 칼슘 농도가 높아지면 목적하는 신호가 발생한다. 발생 즉시 칼슘 통로는 닫히고 칼슘은 능동수송에 의해 세포 밖이나 세포 내 저장소로 흡수된다. 칼슘은 뼈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세포 수준에서의 신호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심장 박동에 있어서도 동방결절에서 발생한 신호를 증폭하는 과정에 칼슘이 관여한다. 고혈압 약물 중 칼슘통로 차단제(CCB, Calcium channel blocker)는 이 과정에서 칼슘의 흐름을 줄여 혈압을 낮춘다.

 세포질에 높은 수준의 칼슘은 세포사멸을 일으킨다. 세포의 조절 기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칼슘 농도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포의 기능이 상실되었다는 의미로 세포가 생명 활동을 영위하기에 적절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칼슘은 사후강직에도 관여한다. 젖산 증가에 따른 세포 파괴는 칼슘을 유리시키고 유리된 칼슘이 근육을 수축하게 해 사후강직이 일어난다.

 생체는 많은 금속이온을 포함한 많은 양이온 원소를 사용하며, 이들의 사용량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이온화된 양과 물리 화학적 특성에 의존한다. 자연계에 흔한 이온 중 하나이지만, 난용성 염이 거의 없는 나트륨이나 칼륨과 달리 칼슘은 지각에 5번째(질량 기준 약 4.15%)로 많은 알칼리 토금속으로 반응성이 커 자연계에서 순수한 형태로 작용하지 않지만, 많은 종류의 난용성 염을 형성한다. 그중에서도 흔한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탄산칼슘의 불용성염을 형성하기 때문에 수용성 염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탄산칼슘 침전을 형성한다(이 결과물이 석회암 종유석이다). 칼슘의 자연계에 풍부하지만, 난용성 염을 쉽게 형성하는 특징은 자연계에 풍부하지만, 자연 상태의 물에 높은 농도로 존재할 가능성을 낮춰 여러 금속이온 중 조절자 역할에 적합하다. 흔한 이온이 물에 높은 농도로 조절하면 정교한 조절이 어려우므로 정교한 생리학적 조절에 칼슘이 사용된 것은 생리학적 측면에서 유리하며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타당하다. 칼슘 흡수는 장점막을 통한 능동수송(세포 간)과 수동 확산(세포 주위) 때문에 이루어진다. 능동수송은 칼시트리올과 장내 비타민 D 수용체에 의존적으로 칼씨트리올에 의해 활성화되며 낮거나 중간 수준의 섭취 수준에서 칼슘 흡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능동수송에 의한 칼슘 흡수는 비타민 D 수용체의 농도가 가장 높게 발현되는 십이지장에서 주로 발생하며 높은 효율의 칼슘 흡수가 필요한 상태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 수동 확산 또는 세포 주위 흡수는 점막 세포 사이의 칼슘 이동을 포함하며 농도 차에 의존한다. 수동 확산은 칼슘 섭취량이 많을 때 더 쉽게 발생하며 장 전체에 걸쳐 발생할 수 있지만, 각 장부분의 투과성에 의해 수동 확산 속도를 결정된다. 수동 확산에 의한 칼슘 흡수는 남성과 임신하지 않은 여성의 평균 칼슘 흡수는 폭넓은 연령대에서 칼슘 흡수량의 약 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칼슘 섭취를 2,000 mg에서 300 mg으로 줄이면 건강한 여성의 칼슘 흡수 지표인 섭취된 칼슘의 전신 보유율이 27%에서 약 37%로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적응은 1~2주 이내에 발생하며 혈청 칼슘 농도의 감소, 혈청 부갑상선호르몬과 칼시트리올 농도 상승을 동반하며, 흡수되는 칼슘의 비율은 섭취량이 감소함에 따라 증가하며 적응하지만, 이 증가만으로 칼슘 섭취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흡수된 칼슘의 손실을 상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적정량의 칼슘 섭취가 필요한 이유이다.

 수동 확산에 의한 칼슘 흡수는 생애 주기에 따라 크게 변화한다. 유아기에는 약 60%로 높지만, 사춘기나, 임신 등의 변화를 제외하면 나이가 들수록 수동 흡수는 감소하고 칼시트리올 자극에 의한 능동 흡수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는 칼슘 농도의 통제력이 세포 활력과 관련 있음을 시사한다. 성장기에는 활발한 신진대사, 빠른 세포 증식으로 칼슘 농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지만,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정교한 칼슘 농도 조절이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조절 가능한 능동수송에 의존적으로 되는 것은 다양한 조절 기능을 가진 칼슘의 역할에 비추어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된다. 세포가 칼슘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면 자살 신호를 낸다. 이런 이유로 나이가 들수록 칼슘의 흡수에 인색해지는 것은 생명 유지에 유리할 측면으로 작용한다. 칼슘 흡수율은 40세 이후 매년 평균 0.21%씩 감소하는데, 폐경 등으로 인한 에스트로겐 감소는 개인에 따라 달라 골격의 칼슘 손실로 급격하게 심각한 골다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과거 골조직의 칼슘 감소로 인한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칼슘 섭취가 권장되었지만, 골다공증을 늦추는 효과보다 심혈관계 문제를 일으키며, 흡수량이 활용량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서 최근에는 권장되지 않는다. 

 적절한 운동 없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칼슘 보충제를 먹는 것은 심혈관계의 문제를 일으켜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심각한 편식을 하지 않는다면 칼슘은 섭취량의 문제가 아니라 흡수와 관련된다. 흡수는 나이 들수록 수동 확산보다 능동적인 흡수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피부 미백도 좋지만, 적당한 햇볕을 쬐며 하는 운동은 골다공증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습관을 지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칼슘이 뽀빠이가 꼭 먹어야 하는 시금치와 상극으로 알려진 것은 시금치에 들어 있는 옥살산이 칼슘과 불용성염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반응이 혈액에서 일정 수준 이상 만들어지면, 침전물이 사구체를 막아 신부전이 발생하고 적절하게 처치하지 않으면 신장 이식해야 하는 비가역적 손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아마도 이로 인해 칼슘이 많은 멸치와 시금치는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으로 알려진 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금치를 데쳐 물을 짜낸 후 사용해 수용성이 큰 옥살산은 많은 부분이 제거된다. 설령 데치지 않고 먹더라도 시금치에 들어 있는 농도와 섭취량으로 문제가 되었다는 보고는 없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옥살산과 칼슘은 서로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이 감소할 수 있다. 또한,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먹더라도 혈중 칼슘 농도가 크게 변하지 않고, 옥살산의 흡수를 억제하니, 칼슘이 많은 식품과 옥살산을 많이 함유한 식품을 같이 먹는 것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칼슘 옥살레이트가 신장결석의 요인 중 하나이지만 빈도가 낮은 노출은 신장에서 사구체를 막을 만큼 결정을 형성할 가능성이 적고, 조금 생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녹아 없어진다. 다만, 신장결석의 과거병력이 있다면 옥살산 섭취량을 줄일 필요가 있다.

 옥살산은 사람을 포함한 생물의 대사 과정에서도 만들어진다. 식물은 칼슘 저장 수단으로 옥살산을 사용한다. 함유량은 식물마다 다르며, 옥살산 칼슘 결정을 만들 만큼 많은 양을 함유하기도 한다. 옥살산 함유량이 많은 식물의 섭취는 초식동물에서 신장결석의 원인이 되며, 반려동물도 사료에 식물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신장결석이나 요로 결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이런 식물의 섭취로 인해 급성 옥살산에 중독되기도 하는데, 주요 중독 물질인 대표적인 식물은 한약재로 쓰이는 반하와 천남성이다. 이들 식물은 칼슘과 결합하여 옥살산 칼슘 결정을 형성하며 이로 인한 자극, 과도한 옥살산 흡수로 인해 결석을 형성하고 급성 신장 기능 부전의 원인이 된다. 칼슘 옥살레이트는 난용성 염이지만 위산과 만나면 잘 용해되어 흡수된다. 흡수된 옥살산 결정이 신장 사구체에 쌓이면서 급성 신부전을 일으키게 된다. 반하와 천남성을 한약재로 사용할 때는 옥살산 칼슘을 줄이는 전통적인 조치를 한 후 사용한다. 옥살산을 많이 함유한 식물, 특히, 수용성으로 존재하는 식물보다, 칼슘과 침상 결정을 형성하는 식품의 섭취는 신장결석의 원인이 되며, 과도한 섭취는 급성 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이 아니더라도 옥살산은 칼슘 흡수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므로 채식주의자는 칼슘 섭취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칼슘의 지구상에 흔해 인산과 결합해 튼튼한 골격을 만드는 재료로, 난용성을 형성해 생명의 근원인 물에서의 칼슘 농도가 낮게 유지될 수 있어 다른 금속이온에 비해 외부 환경의 영향이 적어 다양한 조절 인자로서 활용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생명체에서 칼슘 농도는 세포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전신 순환에서의 농도를 생애 주기와 상태에 맞춰 긴 호흡으로 조절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외부 칼슘의 영향을 적게 받도록 뼈에 저장된 칼슘을 사용하도록 진화해 왔다. 기대 수명이 늘어나고 과거보다 운동량이 적어지면서 골다공증은 노년의 건강을 위협하는 한 요인이다. 이를 예방하는 방법은 적당히 햇볕을 쬐며 운동해 칼슘의 필요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이 칼슘보충제를 먹는 것보다 경제적이며 훨씬 덜 위험한 방법이다. 적절한 식사만으로도 필요한 칼슘은 공급되지만, 운동을 통해 수요를 만들지 않으면 흡수율이 낮아져 골다공증 발병률을 높인다. 또한 적절한 운동으로 근력이 강화되면 뼈를 자극해 뼈로의 칼슘 이동을 촉진해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수많은 생체 기능 조절에 관여하기 때문에 정교한 혈중 농도 유지가 생애 주기에 맞춰 조절되는 칼슘, 은하철도 999의 작가가 이런 사실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칼슘을 소재로 에피소드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명의 조절 기능에 칼슘을 다양하게 활용한 생명의 진화 과정만큼은 아닐지라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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