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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23.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27)

치명적인 붉은 사슴뿔 버섯

 중독사는 범죄와 관련된 것도 있지만, 실수이거나 정황상 자살로 추정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사건 개요를 읽으며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보게 되고 특히나, 응급실에서 사망하는 경우 더더욱 안타깝다. 가끔, 병원 응급실에서 중독원인 물질과 관련된 의뢰가 가능한지 전화가 오기도 한다. 기관의 설립 목적상 형사사건이나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의뢰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면서 늘 마음이 무겁다. 그나마, 중독 원인 물질을 알고 있는 때에는 독성과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거나, 임상증상이 중독원인 물질의 독성에 부합하는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알려준다. 때때로 담금주, 나물류, 버섯류 등에 중독되는 경우 형태학적으로 구분 가능한 경우 주변 전문가들에게 자문하여 동정하고 관련 독성 정보를 주기도 하고, 미상의 중독원인 물질은 환자가 사망한 후라도 알려준다. 응급실 의사의 임상 경험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서다.

 한 대학 병원 응급실이라며 전화가 왔다. 버섯 담금주를 드신 사위, 장인, 장모를 포함한 6명이 범혈구감소증(Pancytopenia,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감소한 상태)을 보인다고 했다. 사진을 받아보니 영지버섯(Ganoderma lucidum)이었다. 그러나 영지버섯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증상이다. 유전적 특성으로 보기에는 유전적 연관성이 없는 사람이 셋이다. 분명 원인이 있을 것이다.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시료를 주시면 연구를 해보겠노라 하고 퇴근길에 병원에 들러 시료를 받았다. 이식물 종식별이 가능한 곳을 수소문한 끝에 생물자원관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물자원관의 결과 담금주에 들어 있는 것은 영지버섯이었다. 지인에게 담금주에 대한 세포독성 실험에서 pancytopenia가 재현되는지 간략하게라도 해달라 부탁했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pancytopenia는 좋지 않은 것이지만,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고 특이적으로 조혈기관의 기능만 억제할 수 있다면, 혈액암 치료제로는 좋은 특성이다. 국내에서 버섯으로 인한 식중독과 드물게 중독사도 발생하고 있어 관심은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 왔던 버섯 공부를 이때부터 틈틈이 하기 시작했다. 버섯 중에 붉은사슴뿔버섯(Podostroma cornu-damae)이 범혈구감소증(pancytopenia)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를 입증할 수단이 없었다. 중독원인 물질과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물질이 밝혀져 있지만, 시판되는 표준품이 없었고, 고해상도 질량분석기가 있으면 시도해 볼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갖추지 못했다. 7억 정도로 다른 질량분석기에 비해 2배에서 7배 비쌌다. 당장의 업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장비가 필요했고 예산은 늘 부족했다. 그렇게 수년이 흘러 영지버섯 담금주는 서서히 잊혀 갔다.

 필수 장비가 어느 정도 갖춰지고 고해상도 질량분석기 도입을 추진했다. 늘어나는 감정 업무에도 불구하고 인력 증원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장비 예산이 확보되어 내년 봄이면 표준품 확보가 어려운 독성 물질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리라. 각 지역 연구소에 미상 물질 중독이 있으면 보내달라 부탁했다. 3대 도입에 20억여 원이 투입되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용도를 증명해야 한다. 본원과 서울, 부산 연구소에 각각 1대씩 도입되었지만, 효용성을 증명하는 것은 도입을 주장한 사람의 몫이다. 두어 달이 지나도록 별 소식이 없었다. 미상 중독이면 대부분 천연물 중독인데 대부분 봄가을에 발생하니 한겨울에 있을 일이 없다. 장비가 설치되고 1주일쯤 지나 설치와 사용자 교육까지 완료되었다. 대전연구소 후배 연구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2mL도 남지 않은 담금주에 갈색 식물이 들어 있고, 이걸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분이 병원 도착 6시간 만에 전신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증거물 사진을 보내왔다. 증상에 부합하는 버섯이 있는데 사진으로는 잘 모르겠으니 보내라고 했다. 어쩌면 고해상도 질량분석기를 활용할 기회가 일찍 찾아온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도착한 시료를 잘 펼쳐보니 붉은색이 탈색되었지만, 붉은사슴뿔버섯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붉은 사슴뿔버섯 관련 논문을 찾아 지표 물질 리스트와 시성식, 분자구조를 정리하게 하고 가스크로마토그라피/질량분석기에서 검출 가능한 verracurol 확인을 위해 담금주 일부를 전처리했다. 

담금주에 들어 있던 붉은 사슴뿔버섯

또 일부는 유전자 분야에 종식별을 의뢰했다. 유전자 분석 결과 붉은사슴뿔버섯으로 확인되었고, verracurol을 포함해 문헌에 보고된 많은 붉은 사슴뿔 버섯 성분을 확인했다. 또 변사자의 혈액과 위내용물에서 붉은사슴뿔버섯에 존재하는 몇몇 성분을 검출하여 붉은사슴뿔버섯 중독사로 결론지었다. 오랫동안 해결이 어려웠던 버섯 중독을 모두는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판되고 있는 표준품을 확보하고 유전자 분야와 협업체계를 강화했다. 문제는 버섯 시료를 구하는 것이다. 곰팡이의 꽃인 버섯은 대부분 일주일~열흘 사이면 사라지고 특정 시기에만 나오는 데다 일부러 채집하러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구매도 어렵다. 수소문 끝에 농촌진흥청에 독버섯 전문가가 계신 것을 알아냈고 연락을 드렸다. 흔쾌히 채집해 놓은 독버섯을 분양해 주기로 하셨다. 이제 버섯 연구의 토대는 얼추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버섯을 분양받기 위해 방문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퇴직하실 것이고 이제 독버섯을 할 사람이 농진청에 없어서 아쉬웠는데 고맙다며 점심까지 대접해 주셨다. 도움받으러 가 밥까지 얻어먹고 오니 참으로 민망했다. 박사님은 미술을 전공하셔서 버섯 연구하시는 박사님 버섯 그림 그려주다가 버섯의 매력에 빠져 버섯 분야로 석박사를 하셨다고 했다. 약학을 전공하고 독버섯 연구를 하겠다고 하니 관련 없는 사람에게 독버섯 연구가 이어져 가는 것 같아 묘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은 스승으로 모시며 형태학적인 버섯 동정을 도와주시고 버섯 사진이나 채취 시료를 보내드리면 동정도 해주신다. 이런저런 독버섯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영지버섯과 붉은 사슴뿔 버섯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며 영지버섯의 갓이 피기 전에는 혼동하기 쉽다는 것이다. 사진으로는 쉽게 구별되는 것 같지만 실제 숲에서 발견하면 여러 행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중독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10여 년 전 영지버섯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았다. 아주 다르게 생겨서 그럴 일이 없고 유전자 분석 결과 영지버섯이어서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그 시료가 없어 증명할 길이 없지만, 영지버섯 담금주에 붉은사슴뿔버섯이 혼입 되었다면 그 당시 상황이 설명된다. 유전자를 통한 종식별은 유전자를 증폭하기 때문에 섞여 있을 때 유전자 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으니 붉은 사슴뿔버섯이 혼입 되어 있더라도 특별히 목적하지 않으면 검출하지 못할 수 있다. 이로써 그 수수께끼는 10여 년 만에 풀렸다. 이때부터 독버섯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형태와 생육환경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목질화되어 수년씩 자라는 버섯도 있지만, 많은 버섯은 좋아하는 온도와 습도에서 자라 올라와 열흘 이내에 사그라든다. 버섯이 본격적으로 올라오는 늦여름에서 가을 산의 바닥 풍경은 극적으로 바뀐다. 곰팡이의 꽃인 버섯은 때때로 화려한 것, 수수한 것, 기이한 생김새를 가진 것 등 다양하고, 그만큼 다양한 물질을 가지고 있다. 

    버섯도 곰팡이의 일종으로 곰팡이독소(mycotoxin)라 부르며,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경우도 많다. 붉은사슴뿔버섯은 트리코테신(trichothecene)류의 곰팡이독소를 가지고 있다. 이 독소는 리보솜에서 단백질 합성을 억제한다. 세포의 단백질 합성은 끊임없이 일어나야 하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하지 못하게 된다. 손으로 만진 후 씻지 않으면 피부 박리가 일어날 수 있다. 섭취 시 분화가 빠른 세포부터 영향을 받으며, 섭취량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노출량이 적을 때는 주로 분화가 빠른 골수세포가 억제되어 범혈구감소증을 보여 적혈구, 혈소판 생성이 부족해지고, 백혈구가 감소하여 무균실 신세를 질 수 있다. 노출량이 많으면, 수 일후부터 탈모가 진행하고 머리가 다시 자라는데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더 많은 노출양에서는 전신 장기에 영향을 미쳐 사망하거나 회복하는데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붉은사슴뿔버섯 큰 주전자에 영지버섯과 손톱만큼의 붉은사슴뿔버섯이 혼입 된 상태로 끓여 차로 수일간 마신 후 범혈구감소증이 나타난 예가 있다. 2017년 교육방송(EBS)에서 영지버섯 달인 물에 붉은사슴뿔버섯이 혼입 되어 중독된 사례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도 했다. 붉은사슴뿔버섯으로 담금주를 담가 드신 분은 노출량이 많아, 모든 장기의 세포에서 단백질 합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전신 장기부전이 일어나고 사망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붉은사슴뿔버섯 중독사고는 영지버섯과 오인하거나 채취과정에서 혼입 되어 일어난다. 갓이 피는 영지버섯과 갓이 피지 않는 붉은사슴뿔버섯은 성체가 되어 갓이 피었을 때는 구별이 쉽지만, 갓이 피기 전의 영지버섯과 붉은사슴뿔버섯의 구별은 때로 쉽지 않다. 갓이 피지 않은 영지버섯의 경우 생장점이 노란색이거나 흰색에 가깝지만, 붉은사슴뿔버섯은 생장점도 몸체와 같이 붉다. 그렇지만 잘 아는 사람도 무의식 중에 채취할 수 있으니, 갓이 피지 않은 것은 채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말린 상태에서는 구별이 더더욱 어렵다. 가장 확실한 구별법은 부러뜨려 보는 것이다. 영지버섯은 부러지지 않지만, 붉은 사슴뿔 버섯은 부러진다. 

  트리초테센 화합물은 구소련에서 화학무기로 개발을 시도했을 만큼 맹독성 물질이다. 독이 때때로 약으로 쓰이는 것처럼, 붉은사슴뿔버섯을 약으로, 특히, 항암제로 개발하려는 초기 단계의 몇몇 시도들에 대한 논문이 있다. 물질 자체가 직접적으로 암을 유발하지는 않는 장점은 있지만, 암세포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모든 세포가 가지고 있는 리보솜에 작용해 리보솜이 변형된 암세포가 아니라면 특이성을 갖기 어려운데, 리보솜 자체가 변형이 일어나면 생존이 어려운 단백질로 암세포도 변형이 일어나기 어렵다. 항암제로서의 가능성은 낮다. 붉은 사슴뿔버섯의 큰 독성으로 인해 혈액암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멀어져 버렸지만, 버섯 중독사를 과학적으로 규명했고, 버섯 중독사를 연구할 기반을 마련했음을 위안 삼는다.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버섯도 다양한 독성 물질을 만든다. 우리나라에는 2천 종이 넘는 버섯이 보고되어 있고, 아직 미기록 종도 많다. 이 중 먹을 수 있는 버섯은 80여 종에 불과하고 붉은사슴뿔버섯처럼 아주 작은 양으로도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버섯도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그 안에는 커다란 위험도 함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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