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한 역사적 교환의 산물, 담배
1970~80년대 무더위와 싸우며 수확해야 했던 담배는 가난한 농촌에 목돈을 안겨주는 요긴한 농작물이었다. 하지를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아 해가 길어질 대로 길어진 여름날이었지만, 이미 해가 져버린 어스름 속에서도 아낙의 손길은 분주하기만 했다. 새끼줄에 담뱃잎을 꿰는 손길 옆으로, 남정네들은 담뱃잎이 주렁주렁 달린 줄을 건조실 양쪽 벽에 서둘러 늘어뜨렸다. 손은 어느새 담배에서 나온 끈적한 점액질과 오물이 범벅되어 새까맣게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어느덧 수많은 담뱃잎이 새끼줄에 꿰여 건조실 벽을 가로지르며 빼곡히 매달린다. 찰흙에 잘게 썬 볏짚을 섞어 개어 문틈을 꼼꼼히 바르는 사이, 화구에서는 미리 준비해둔 무연탄에 장작불을 지펴 불을 붙였다. 그렇게 네다섯 차례 수확을 마친 담배는 겨우내 먼 동네 할머니들까지 동원되어 수일간 정리되어야 했다. 밤새 일정한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고, 부피를 줄이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담배를 밟아 포장하던 기억이 선하다. 별다른 창고가 없던 시절이라 수매할 때까지 담배 더미와 함께 잠을 자곤 했다. 훗날 젖은 담배를 오래 만지거나 피부 노출이 많으면 니코틴이 흡수되어 ‘담배농사병(Green Tobacco Sickness)’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유년 시절의 그 노출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어쩌면 막노동판에서 중년의 십장이 쥐어준 담배가 그리 역하지 않았던 것도, 이미 니코틴에 익숙해진 그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었으리라.
담배는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에게 선물 받으며 유럽에 처음 알려졌다. 원주민들에게 담배는 신성한 약초이자 제사장이나 부족장의 전유물이었으니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유럽에서도 처음에는 의학적 효능이 있는 ‘신성한 풀’로 소개되며 유행했고, 17~19세기에는 설탕, 커피와 함께 식민지 경제의 핵심 작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도 16세기 말 ‘남령초’라 불리며 들어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약초처럼 여겨지며 널리 퍼져나갔다.
물론 1950년대 들어 담배와 폐암의 연관성이 입증되며 공공 보건의 적으로 여겨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흡연자가 존재한다. 최근에는 궐련형이나 액상형 전자담배가 출시되며 위해성에 대한 새로운 논쟁이 일고 있다. 흔히 흡연이 폐암 유병률을 높인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이지만, 그 기전을 살펴보면 중독을 일으키는 원인과 폐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독은 니코틴에 의한 것으로, 니코틴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보상회로를 자극한다. 저용량에서는 각성이나 인지기능 향상 같은 효과를 보이기도 하지만, 고용량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을 고갈시켜 심정지까지 일으킬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하지만 담배가 대마초보다 끊기 어렵고 중독이 심하다는 것은 일종의 편견이다. 이는 단지 흡연 인구가 많고 니코틴의 효과가 빨리 사라져 자주 피우는 모습이 눈에 띄기 때문이지, 중독의 강도 때문만은 아니다. 담배는 마약과 달리 일상적인 생활이나 운전 같은 고도의 협응력에 지장을 주지 않으며 환각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는 이유만으로 담배를 마약의 범주에 넣는 것은 약리적으로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진짜 마약의 위험성을 담배 수준으로 낮게 보게 만드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사실 폐암의 직접적인 원인은 니코틴보다는 담배가 연소하며 발생하는 벤조피렌, 포름알데하이드 같은 70여 종의 발암물질과 중금속에 있다. 이는 궐련형이나 액상형 전자담배도 마찬가지다. 직접 연소하지 않아 일산화탄소는 줄어들지 몰라도, 니코틴 추출 과정에서 함유된 유해 물질과 열변성으로 생성되는 또 다른 독성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간접흡연 역시 중독을 일으킬 수준은 아니나 연기 속 독성물질에 노출된다는 점에서는 분명 유해하다. 다만 일상의 미세먼지나 요리할 때 발생하는 유증기 역시 폐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지나친 공포보다는 합리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담배가 술고 함께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것은 둘이 가지는 역사적 이유와 중독을 일으킨다는 공통된 특성 때문일 것이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의 담배를 구대륙에 퍼뜨려 사람들을 병들게 했다면, 구대륙의 지배자들은 신대륙 원주민들에게 증류 기술로 만든 독주를 퍼뜨려 그들의 사회를 무력화했다. 신대륙 원주민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사회가 붕괴되고 임산부의 음주에 의한 알코올 증후군으로 대를 이어 고통을 겪고 있고, 구대륙 사람들은 지금까지 담배로 인해 병들고 있다. 공중보건을 다루는 독성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신대륙과 구대륙 사이에서 이루어진 술과 담배의 교환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