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
인류가 독성에 대해 이해하고 후세에 전한 것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한다.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을 이어나간다. 에너지 원이나 영양소를 얻어 생명을 유지하며, 생명활동에 필요한 균형을 상실하게 하여 질병을 일으키거나 더 이상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없게 하기도 하고, 깨진 균형을 바로잡아 항상성을 유지해 생명활동을 이어나가게도 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류는 경험을 토대로 먹을 수 있는 것, 위험한 것을 파악해 후대에 전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호기심은 여러 먹을 수 있는 것 위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하였다. 먹거리를 넘어 질병에 대응하는 것, 위해한 것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있다. 물질이 생명체의 생명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물질 자체의 속성뿐만 아니라 양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명시적으로 이와 관련된 서술은 의사, 연금술사, 신학자, 철학자로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던 파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에 의해 이루어졌다. ‘dosis sola facit venenum (The dose makes the poison)'을 말함으로써, 독성학에 이러한 통찰을 제공하여 현대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최신 독성학은 어떤 물질이 독인지 아닌지는 양뿐만 아니라 노출된 개체가 결정하는 것으로 개념이 확대되고 있을지라도, 이 경구는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유효하다. 약이기만 한 물질도 독이기만 한 물질도 없으며, 상호작용이 한 가지이기만 한 물질도 없다. 독성학은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호작용이 생체의 항상성에 부정적인 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개인과 집단의 노출량을 통제하고 규제에 활용하거나, 특정 상황에서 부정적 작용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독성학은 독이 아니라,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있으며, 적용의 측면에서 부정적 작용을 줄이거나 없애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초기 독성학은 관찰 가능한 병리 조직학적 변화를 토대로 발전하였고, 탈리도마이드 사건 등 여러 독성학적 이슈들의 영향과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실험을 통한 측정이 가능해지고,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물질독성학의 역할과 개념이 확장되어 왔다. 독성학의 핵심이 물질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는 약학과의 관련성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The daughter Science of pharmacology에서 2000년대 들어서면서 The branch of pharmacology로 약학과의 연관성이 강화되었다(딸은 개별적 존재이지만 가지는 한 몸이다). 약학은 약에 대해서 독성학은 독에 관해서 연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두 학문 모두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라는 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도 구별하는 이유는 약학은 투여의 관점에서, 독성학은 노출의 관점에서 물질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투여는 의도성이 있으며, 의도성의 옳고 그름은 생명의 항상성 유지에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이익이 될 때, 또는 손해를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관점에서 물질의 상호작용을 바라본다. 노출은 의도하지 않은 또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을 바라본다. 투여가 의도된 작용을 얻기 위한 특정 물질을 일정한 양을 일정한 경로로 상정하여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는 반면, 노출은 다양한 투여경로에 다양한 양에 대해 의도적/비의도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을 다루기에 사용하는 원리는 같지만, 훨씬 복잡하며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독성학은 다양한 상황에서의 노출을 고려하기 때문에 환경 독성학, 직업 독성학, 산업 독성학, 수중 독성학, 톡신학, 규제독성학 등 다양한 상황에서 발전해 왔으며, 계속해서 응용 분야가 늘어가고 있다.
생명체는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정교한 균형계이다. 물질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자신을 구성하는 물질로 재조립하며,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하고 체계가 유지되도록 끊임없이 항상성을 유지하려 한다. 다세포 생물은 물질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움직임을 조절하고, 심지어 후대에 정보를 넘겨주기도 한다. 고등 생물에서는 운동뿐만 아니라, 감정, 정서, 생애주기, 생로병사에 관여한다. 에너지나 영양소 공급원으로서의 상호작용 이외에도, 물질을 통해 주변을 통제하고, 자신이나 후손을 보호하는 정보 전달자나 보호자로서의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우주에 다양한 원소들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물질들 사이에 상호작용으로 우주적 현상들이 일어나듯, 그 원소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물질들이 상호작용 통해 생명현상이 나타나고 생명이 갖는 물리력을 제외하더라도, 물질을 통해 에너지와 영양소뿐 아니라 정보를 개체 내, 개체 외로 전달하는 체계는 생명현상이 우주의 광대함에 비해 극히 작지만, 그 안의 역동성과 복잡성은 우주에 버금가는 존재이다. 우주 만물이 궁극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며 생명현상도 궁극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지만, 생명 활동은 일시적으로 엔트로피를 감소시켜 생명 유지에 활용하는 새로운 계로 탄생한 생명이 환경, 생명 간의 상호작용을 넘어 우주와 물질의 생성에 대해 자각해 나가는 존재로까지 진화한 것은 물질의 탄생만큼이나 경이롭다.
생명 활동은 끊임없이 항상성의 유지와 이를 파괴하려는 도전의 과정이다. 인간이 과학 발전으로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 왔지만, 이전부터 생명은 원자들의 다양한 배열을 통해 수십만 종의 물질을 만들어낸 물질의 종류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아직도 인류가 알지 못하는 물질은 너무나도 많으며, 알려진 물질이라도 그 개체, 종 혹은 다른 종에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모두 알지 못한다. 자연에서 만들어진 물질은 자정작용을 통해 균형을 이루지만, 인류의 탐욕은 물질들을 필요에 따라 생체에 대한 작용을 강화한 물질,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많은 물질을 환경에 노출 또는 노출 위험을 증가시키며 이로 인해 스스로 두려움을 갖는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가 되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로 항상성 유지에 위협을 느끼는 현생 인류는, 때때로 그 두려움이 본질보다 과도하기도 하지만, 후대에 Homo chemophobians로 불릴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많은 물질을 환경에 내보내고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고 두려움을 가지도록 강요받고 있다.
생체와 물질의 상호작용은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에 있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단세포 생물에서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체의 유지에 근간이 된다. 생명은 기본적인 물질을 일정 수준 공유하며 서로에게 소비되고 재활용되기도 하고, 특정 종에서만 만들어지는 물질이 다른 종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에너지 효율을 고려하면 생명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을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종의 생명 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물질들을 다른 종으로부터 보호받거나 공생을 위해 생산이 유지되는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이러한 현상은 극단적인 자기 복제만을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한 바이러스를 제외한 생명체 대부분에서 관찰된다. 생명이 만들어 낸 다양한 물질은 때로, 그 물질의 존재 이유와 상관없이 아주 우연히 다른 종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종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면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양한 생명체에서 만들어진 물질은 만든 개체나 종의 의지에 상관없이 그 물질에 노출된 다른 개체나 종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생명 유지에 유리할 수도 있는 불리할 수도 있고,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영향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 유불리는 양, 개체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효과를 즉각적으로 인지하고 확인할 수 있는 정신신경계에 작용하는 물질인 마약류를 사용한 역사는 깊다. 기원전 6,000년경 수메르 문명에서 양귀비를 사용했고, 기원전 3,000년 경 중국에서는 대마초를, 아스테카 문명에서는 마약 선인장으로 알려진 페이요트1)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인류가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침팬지 등 영장류도 평소에 먹지 않는 식물을 몸이 아프거나 할 때 찾아 먹고, 상처를 잘 아물게 하는 마데카식산이 발견된 병풀2)을 인도에서는 상처 입은 호랑이가 이 풀에 몸을 비빈다고 하여 ‘타이거 허브’라 부르는 것을 보면 고등 생물은 적극적으로 주변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을 오랜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활용해 왔음을 짐작게 한다. 인류가 생체와 물질의 상호작용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활용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화살촉에 묻혀 사용했던 Toxicon pharmacon(화살독)에서 화살을 뜻하는 toxicon에서 Toxic3)이 유래되었고, 독을 뜻하는 pharmacon4)이 약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알았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어휘의 발전은 약과 독의 개념이 현재에도 모호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흥미롭다.
대부분의 과학이 주로 일반적이고 공통된 원리를 탐색하지만, 법과학은 과학적 원리를 개별 사건에 적용하여 과학적 원리에 반하는 요인이 있는지, 입증될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찾는다. 때때로 확정보다 배제의 원리가 주로 작동하며 배제되지 않고 남는 증거를 택하기도 하며, 법독성학도 그러한 원리로 판단하기도 한다. 맹독성 농약으로 알려진 파라콰트가 위내용물과 혈액에서 검출되면 중독사 가능성이 인정된다. 부검에서 다발성 손상이 사망에 이를 만큼 발생해 있다. 다발성 손상사도 가능하다. 이러한 경우 순서가 중요하다. 분명 다발성 손상이 없더라도 파라콰트는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지만, 망자는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고, 그 모습이 고스란히 폐쇄회로 티브이에 찍혀있었다. 이런 경우 부검에서 다발성 손상사가 될 것이고, 손상이 사망 전에 일어난 것인지 사망 후 일어난 것인지에 대한 법의학적 소견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가적인 증거들로 사인이 결정된다. 파라콰트 음독은 고의로 달리는 차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보강하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사건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중독사는 결국 다른 외적인 요인이 제거되고 남을 때 채택된다.
법독성학은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평가하며,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독성학의 한 분야이다. 전통적으로 중독사 여부, 성폭행, 절도, 운전 등에서의 약물 사용, 마약 성분 함유 여부, 가축 폐사, 물고기 폐사, 농작물 폐사 등 자연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수사가 필요한 경우와 마약 오남용 의심자에 대한 소변, 모발 등에서 마약류 및 그 대사체 검출을 통한 노출 여부 평가를 수행한다. 특히, 마약 분야는 2,00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신종마약류가 증가하며 이의 대응을 위한 전문성 강화와 전문 인력 양성이 필요한 분야이다. 이와 더불어 복잡한 사회요구를 반영하여 약물을 이용한 병역면탈, 화학적거세자 및 약물 복용 의무가 부과된 가종료5)자에 대한 모니터링 등 법임상독성학 분야의 업무가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법독성학은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이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그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모든 독성학의 분야가 그러하듯, 법독성학도 독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체와 물질의 상호작용이 사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독성학의 작은 분야이다. 다른 법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전공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 입증할 실험 및 분석 능력과 함께 사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이 나타난 결과물이 사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평가는 때때로 그 의미가 축소되거나 확대되어 해석되기도 한다. 변사와 관련된 법독성학적 감정은 약물의 혈중농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을 기술할 뿐 자타살을 논하지 않는다. 마약 관련 감정에서 어떤 물질이 마약 성분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판단하고, 소변, 모발 등의 생체시료에서 노출의 흔적을 찾을 뿐 마약 오남용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타살이나 약물 오남용의 판단은 수사기관의 몫이며, 그 판단의 최종 결정은 사법부의 몫이다. 자타살이나 약물 오남용은 의도성을 판단해야 하는 것으로 과학이 입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변사사건에서 어떤 물질이 사망에 이를 만큼 검출되었다면 중독사로 판단하고, 부검 결과 이를 상회할 만한 질환이나, 외상 등이 없었다면 중독사로 평가된다. 독성물질의 노출이 사고인지, 스스로의 선택인지, 타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는 수사의 몫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생체시료에서 마약 성분과 그 대사체가 검출되었다는 것은 노출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고 이 노출이 약물 남용인지를 입증하는 것은 수사의 역할이며 최종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마약에 노출이 있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노출의 흔적은 사라지기 때문에, 생체시료에서 검출되지 않은 것은 마약에 노출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노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피의자의 생체시료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더라도 소지하였거나, 거래한 내역, 투약의 확실한 정황이 있다면 생체시료에서 검출되지 않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다.
독성학을 일상생활에서 접하기 어렵지만, 일상생활에 밀접한 관련 있으며, 정부 부처에서도 관련업무를 한다. 물질의 규제와 관련된 규제 독성학은 식품의약품 안전처에서, 환경과 관련된 독성학인 환경독성학은 환경부에서, 직업과 관련된 독성 문제는 산업자원부에서, 범죄와 관련된 독성학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수행한다. 세분하면 20개가 훌쩍 넘는 독성학의 분야 중에 법독성학을 하고 있는 필자는 일종의 직업병으로 어딜 가든 먹고 죽을 수 있는 것들, 범죄에 사용될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지만, 모든 독성학 분야와 같이 법독성학도 독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는다. 그저 물질과 생체의 상호작용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평가하고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다. 세상에 별 효용가치가 없는 물질과 효용가치가 있는 물질은 있어도 독이기만 한 물질도 약이기만 한 물질도 없다. 물질의 작용이 이익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는 용량과 개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결정될 뿐이기 때문이다.
1) 페이요트(pyeote)의 학명은 Lophophora williamsii)로 mescaline 등 펜에틸아민 계열의 환각성 알칼로이드를 함유하고 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약용이나 종교의식에 사용하였다.
2) 상처에 바르는 마데카솔은 병풀속 식물인 Centella asiatica로 이 식물에서 마데카식산, 아시아틱산, 아시아티코사이드, 마데카소사이드 등의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되는 활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3) Toxic은 독을 의미하게 되어 toxicant(독성물질), toxin(독소), toxicology(독성학) 등의 어원이 되었다.
4) pharmacon은 pharamcolgy(약리학), pharmacy(약학) pharmacueticals(제약학) 등의 어원이 되었다.
5) 가석방과 유사한 개념으로 심리 및 약물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재택을 통한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위원회를 통해 형을 임시로 종료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