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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03.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2)

강한 바람에는 힘이 있다

    Life of Pie를 보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에 매료되면서도 내 집중하지 못했다. 자막을 보며 영상과 음악을 그것도 3차원 입체로 봐야 하는 점도 있었지만, 바다에 조난된 상황에서 탈수 또는 바닷물을 마셔 생기는 소금 중독으로 나타나는 환각 현상일 것이라는 독성학자로서의 생각은 영화의 이해를 방해했다. 두 번을 더 보고서야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아는 것은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한 예단은 때로 방해가 되기도 한다. 영화 주인공에게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다. 현실 세계에서 조난하면 탈수나 바닷물 섭취로 근육 경련, 환각 등을 겪었을 것이다. 환상적인 영상도 몽환적인 음악과 이야기도 탈수나 소금 섭취로 인한 전해질 불균형으로 설명된다.

    소금 모양 결정이 가득한 위 내용물 전처리한 시료를 보여주며 이런 건 뭐부터 해봐야 하는지 묻는다. 사건 개요에 굿했다는 말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만약 굿했다면 소금인지 확인하고 맞으면, 나중에 안방수 전해질 결과 확인해 보고 이야기하자며 실험실을 나서는 뒤를 쫓아 나오며 웬 굿이고 소금이냐는 후배가 묻는다.

     소금은 모든 생명체에 꼭 필요한 물질이지만 심각한 소금 중독은 전신 장기 기능을 떨어뜨려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소금의 사람에 대한 급성독성 반수치사량은 약 12g/kg으로 알려져 있다. 급성 독성반수치사량은 통계적으로 반은 죽고 반은 산다는 의미이지만, 각 개인으로 보면, 신장이나 심장 기능 저하 등 건강 상태에 따라 이보다 적은 양으로도 사망할 수 있다. 나트륨 이온은 포타슘 이온과 함께 세포의 생명 활동뿐만 아니라 신경의 전기신호 전달에 관여한다. 신경세포에서 신경 전도가 일어나는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 모든 세포는 세포 밖은 나트륨 농도가 높고 세포 안은 포타슘 농도가 높다. 과도한 염분 섭취는 세포 밖의 나트륨 이온 농도가 높아지면 신경 전도의 이상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세포 내 나트륨 이온 농도를 높여 세포를 부풀게 해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이런 현상이 신경세포에도 영향을 주어 환각 상태에 이르거나, 근육 경련을 일으킨다. 짜게 먹는 것은 혈압 상승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연구는 나트륨 이온과 포타슘 이온의 비율이 중요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식물에는 포타슘 이온이 풍부해 상대적으로 초식동물은 나트륨 이온이 부족해지기 쉬워 때때로 암염을 먹는 모습이 관찰된다. 육식 동물은 포타슘 이온 부족에 빠지기 쉽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짜게 먹는 것보다 포타슘 부족이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포타슘 이온 부족을 피하려면, 채소를 많이 섭취하고 정제 소금보다 천일염을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바닷물은 나트륨 이온과 포타슘 이온의 비율이 28:1로 덜 정제된 천일염에 포타슘 농도가 높고 다른 미네랄 섭취에도 유리하다.

    제정일치 사회에 모든 권한은 제사장에게 있었다. 사회가 발달하며 제사장의 권한은 종교로, 정치로, 법률로, 의학으로, 약학으로 발전하며 인간의 염원을 달래는 것만이 무속인에게 남았다. 이제 무당은 과거 제사장처럼 현대에 마약이라 불리는 효과적인 식물을 사용하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도구는 소금이다. 소금은 전해질 불균형을 만들고, 세포 내의 수분을 밖으로 빼내어 세포 기능을 억제한다. 신경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면 환각을 일으킨다.

    80년대, 경제 개발이 한창이지만, 위안부를 피해 소학교 5학년을 다니다 말고, 시골로 시집을 온 노파의 삶은 힘겨웠다. 두 딸을 태어나자마자 잃었고, 가세가 기운 집안은 동란으로 더 어려워져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힘들었다. 족보만 보고 가난한 시골집으로 시집보낸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을 겪은 터라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아 내는 데 익숙했다. 그렇지만 자식 문제는 달랐다. 아들 부부가 별거하는 것인 자식을 제대로 뒷바라지해 주지 못해 벌어진 자신의 책임인 것만 같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일이 없자 날품을 팔아 모은 돈을 들고 마을에 유명한 점집을 향한다. 아들은 선하고 영민한데 위해주지 못해서 그렇다는 무녀의 말에 노파의 마음은 더 무겁다. 어려운 삶의 무게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인 것만 같다.

    자신의 미래도 물어봐 달라 졸라대던 철없는 손자는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린다. 100리 밖 먼 동네에서 내림굿을 받으러 올만큼 용한 무당이며, 돌아가신 시할머니를 만났고, 네 아비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너에게 해줄 것이니 어려서 고생하지만, 잘 될 것이고 손자의 자식도 잘될 것이고 무녀가 너의 대모가 되어주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잠들었던 손자에게 다음날 어떻게 돌아가신 시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는 손자에게 어제도 대를 잡으며 할머니는 소금물처럼 짠 물을 계속 마셨다고 답해주었다. 과도한 소금 섭취로 인한 환각은 무속인의 주술에 따라 돌아가신 시할머니를 영접할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대를 잡으며 마신 짠물 탓인지 속 쓰림이 더 했지만, 좋은 점괘와 손자가 머리맡에 놓아둔 소다(베이킹소다, 탄산나트륨)와 냉수는 큰 위안이 되었다.

    힘든 삶의 무게를 무속에 기대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소금물을 마시며 위안 삼은 할머니는 당신의 아들을 위해주지 못한 후회를 손자를 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중학교까지 만이라도 마치고 기술을 배워 먹고살 수 있게는 되기를 바라셨고, 그때까지만이라도 살면 여한이 없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손자에게 그런 할머니의 바람은 목숨과도 바꿔 이루고 싶은 강한 바람으로 느껴졌다. 전기신호와 화학적 신호로 감각은 뇌에 전달되고, 의지는 근육을 움직인다. 그런, 누군가의 바람은 어떤 매질도 없이 교감과 공감이라는 강력한 에너지로 세대와 시간을 넘어 전달된다.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을 들판 너머로 바라본다. 큰 산 아래 나지막한 산등성이 끝나는 곳에 큰 못이 있었다는 사실은 지명에만 남아 있고, 노파의 시할머니가 보았다는 호랑이는 벵골 호랑이가 파이의 기억에만 있듯 며느리의 손자 기억에만 남았다. 칠성당에서 수백 년 내려왔을 사방 100리 안에 가장 용하다던 무녀도 무녀가 모시던 신령은 바다 위에 떠 있던 비슈누처럼 어딘가를 떠돌고, 손자가 잘살아내기를 바랐던 할머니의 바람과 염원은 시간과 바뀌어버린 풍경을 뚫고 지금도 손자의 의식 어딘가를 떠돌며 지켜주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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