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9' [.]용량
낯을 헤아려 보면 알 수 있다
내 그릇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의 불행을 희망해도 되는 걸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불행만을 안겨줄 정도로 세상은 다정했던가.
사람은 저마다 그릇이 있어서 그 안에 희노애락애오욕 같은 정이나, 기억과 경험 행운 같은 보이지 않는 성취를 담고 산다. 고통과 슬픔, 분노와 불행 같은 탁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릇이 여럿인 사람이 있는 반면, 몇 안 되는 그릇에 적거나 많은 것들을 담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각각의 그릇은 용량이란 것이 있어서, 부족하면 허전하고 과하면 넘친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불행이라면 마땅히 감내하겠다고, 평안은커녕 품을 수 있는 고통의 크기에 대해 상상하던 때도 있었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겠지만 사람들은 그저 적정 용량의 불행을 안고, 품고, 녹여가며 살아갈 뿐이라고. 그리 생각하면 불가해한 세상을 살아가는 내가 혼자가 아닌 것만 같아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다.
창고에 항아리가 놓인 모양을 본떠 만든 갑골문자가 공교롭게도 눈코입이 달린 얼굴을 닮아서 '얼굴 용'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량容量이라는 단어는 '얼굴 용' 자에 '헤아릴 량' 자로 떼어진다.
녹록지 않은 세상을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 서로의 낯빛을 헤아려보면 저마다의 그릇이 부족한지, 넘쳐흐르는지 설핏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힘껏 바라봐야지. 그런 눈들이 모이면 세상은 조금 덜 불행한 것은 물론 꽤 따뜻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