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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31' [.]생일

거짓말 같은 하루가 만우절로 넘어간다.

by DHeath

어릴 적 아빠를 따라 강에 피라미 낚시를 하러 가면 흐르는 강물을 건너야 했다. 처음에는 겁이 나기도 했었는데, 얼굴을 발갛게 그을리며 보낸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곤 흐르는 강물 한가운데 서 있는 게 좋아졌다.

강을 바라보면 내가 어디론가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은 강 밖에 있을 때에도 이어졌다. 움직이는 강이나 하늘을 보고 있으면 발 딛고 있는 땅이 꼭 배처럼 느껴졌고 나는 멀고 먼 유토피아를 향해 항해했다.

모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서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의 부피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지만, 1월 1일에는 다짐하고, 12월 31일에는 후회한다. 그렇게 다짐으로 시작해 후회하는 한 주기 속에 나는 생일은 힘껏 기뻐해야 하는 날이라 여긴다. 하루쯤은.

마침 봄이고, (올해는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때맞춰 꽃이 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축하와 선물을 받는다. 불가해한 세상에 보잘것없는 내가 주인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지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하를 건네듯) 그렇게 실컷 기쁘다가 생일이 다 지나갈 때가 되면 마음이 내심 서운해진다. 거짓말 같은 하루가 만우절로 넘어간다.

2024년 3월 31일. 반짝, 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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