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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Heath May 17. 2024

240516' [.]티나

제법 다양한 색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처럼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세상에서 숨어버리던 시절이 있다. 사뭇 진지하게 세상을 속여보려고 했으나 세상에 속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얼굴을 숨기고, 쉬운 말을 삼키고, 당장 해소 불가능한 욕망을 외면하면서 철들었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숨기지 못하는 기분이 있다. 덜컥 찾아오는 자괴감, 이유 없는 허무, 무턱대고 찾아오는 사랑 같은. 그런 기분은 선택하는 단어, 시선의 빈도, 움찔거리는 입꼬리, 눈빛의 깊이, 몸의 방향, 목소리를 찾는 귀, 말의 모양, 반응하는 거울신경세포 같은 것으로 드러난다.(하지만 그것 역시 곧잘 숨기고 있다고 믿고 산다.)

출근길에 구름 뒤에 숨은 해를 봤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제법 다양한 색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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