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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30' [.]올해

제법 쓰다

by DHeath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어
고작 1년이라는 시간 안에 설탕처럼 녹아 사라지는 사건들
얼굴은 모두 잊어버릴 것만 같다
우울과 기쁨과 조급함과 배부름과 취기로 색을 낸
칵테일, 이름은 제법 거창하니까
선택과 부딪힘의 계단
섬에서 섬으로 이어진 선
같은 망상은 끝없이 이어졌다

누굴 미워하기보다 감사했던 시간이 많았겠지
이별보다 사랑에 쉬운 편이니까
364번째 단상과 시선이 머무른 순간까지 모두 불 붙이면
향으로 가득해지는
방, 에서 나는 꽤 오래 살았다
잠들기보다 미루느라 힘들었던 밤
사이를 헤집고 나오는 미몽
저곳을 바라보는 개와 이곳을 바라보는 고양이처럼
떠나오고 떠나왔던 정거장을 여럿 지나면서
손 흔들고 취했던 수다와 음악으로 범벅된 잔을 들고

바다를 갈망하던 지난날들과 가까이 두고도 외면하는 변덕 사이에서 휘청거리며
오래지 않아 적응해 버릴 상념 다른 손에 쥐고
이제 건배를 외칠까, 나랑 잔 부딪힐 사람
많이 감사했고, 자주 신세 졌습니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잘 닫자고요

조금 더 기쁘기보다 조금 덜 불행하길 바랐던
휘황찬란한 올해를 비운다
꽤 향긋하고, 제법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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