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2' [/]밀양

이름값하는 외국

by DHeath

서울에서 반가운 손님이 왔다. 겨울에는 내가 그의 손님이었는데, 여름에는 그 반대가 된 거라고 했다. 그가 오기 며칠 전부터 하루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했다. 다행인 건 밀양에는 이틀 정도는 거뜬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있다는 점이었다.

삼문동 가야밀면

역으로 마중을 나가 그를 반겼다. 몇 달 만에 만났지만, 처음으로 다른 공간에서 만난 터라 생소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에 연신 놀라워하는 그와 함께 섬 동네 삼문동으로 향했고 대접해서 실패한 적이 없는 밀면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물 같은 비빔'이라는 메뉴가 있는 곳. 그는 밀면도 오, 만두도 오, 하면서 잘 먹었기에 마음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곤 밀양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손님을 모시고 가는 필수 코스인 영남루로 향했다.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삼문동)

장마가 예고된 주였지만,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쨍쨍했다. 그래도 영남루에는 대청마루와 그늘, 시원한 바람이 분다는 것. 풍경과 바람에 손님은 또 감탄사를 연발했다. 연회나 행사를 벌일만하다고, 자신이 이곳에 살았다면 매일 같이 이곳에 올라와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겠다고 했다. 커피는 반입이 안 돼, 라고 말하자 뱉은 말을 주워 담는 손님에게 3대 누각이니, 영남루의 역사와 독특한 형태를 설명했다. '외국에 온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나오는 길에는 마당에 물을 뿌리던 관리인께서 '시원한데 더 있다 가시지 않고'라고 말했지만 남은 일정이 많았기에 허허 웃곤 힘껏 움직였다.


다음으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는 터널을 통과해(애니메이션 OST를 함께 틀었더니 감동은 배가 되었다) 유럽이 생각나는 소품과 꽃들이 가득한 정원이 예쁜 카페로 가 커피를 마셨다.

트리 인 블루

커피를 마시며, 근황을 물었다. 쓰고 있는 글과 쓸, 쓰고 싶은 글들을 이야기하며 꽤 잘 살고 있다고,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했다. 계획을 여유롭게 한 건지, 서둘러 더 많은 곳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예상한 것보다 시간이 여유롭게 남아 옵션으로 생각해뒀던 곳들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낙동강이 보이는 절벽을 타고 삼랑진으로, 일본가옥촌을 지나 낙동강과 그 위로 3개의 철교(구 철교, 레일바이크가 다니는 폐철교, 현재 쓰이는 철교까지)가 보이는 카페에 가 사이폰 커피로 2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역 근처로 돌아왔다.

가곡동 계성국밥, 빈 뚝배기 사진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지난 사진으로 대체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했고, 곧 식사가 나왔다. 돼지국밥을 먹어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손님은 국물만 홀짝여서 처음엔 입에 맞지 않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바닥까지 거의 다 먹은 뚝배기를 보곤 걱정을 거뒀다. '여기 모든 사람들이 사투리를 써요. 신기해요.'라고 그는 말했고, 나는 당연했던 것들이 낯설고 우스워지곤 했다. 내가 <우리들의 블루스>를 볼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을까. 그러곤 우리 다음으로 들어온 학생 무리(여학생 1명 남학생 2명)가 이런 국밥을 먹으러 온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도 했다.


식사를 마치곤 남포마을 근처에서 강과 그 위로 부서지는 햇빛, 사이사이에 놓인 작은 섬들을 봤다. 그리고 곧 사라질 역사 앞에서 역사를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고, 그는 서울행 기차에 다시 몸을 싣었다. 나는 멀어지는 기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있는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여럿 사귀어 전국, 아니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꿈이 있다. 이름값이라도 하듯 햇빛이 가득했던 밀양, 여름의 초입. 많이 먹고 많이 다녔던 당일치기 집중투어. 가까운 미래, 여행을 선물하고 선물 받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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